2022.3.15.사순 제2주간 화요일 이사1,10.16-20 마태23,1-12
구원은 선택이다
-섬김의 선택, 섬김의 훈련-
우리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종과 섬김의 영성이라 강조했던 적이 새롭게 떠오릅니다. ‘종servant’과 ‘섬김service’은 영어에서 보다시피 같은 어원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리스도인들은 우선적으로 섬김의 직무, 즉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여기 요셉 수도원 초창기 30년전 수도사제생활 초창기에 있었던 벼락같은, 참 부끄러웠던 깨달음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여러 차례 강론에 인용했던 일화입니다. 이때는 제가 40대 초반 수도원 원장으로서 주방장, 손님접대, 피정집관리, 일체의 면담과 고백성사 등 1인5역으로 참 분주할 때였습니다.
한밤중 늦게 피정 신청 전화를 받았고 잠에서 깨어난 저는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았던 듯 합니다. “수도원에 사시는 분이 왜 그렇게 불친절하느냐?”는 격렬한 항의를 받았고, 즉시 사과를 했습니다. 바로 이때의 즉각적인 깨달음이 서비스업의 3대 요소입니다.
‘아, 나는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구나. 서비스업, 즉 섬김의 직무를 지닌 이들은 세 필수요소를 명심해야 하겠구나. 첫째, 사람이 좋아야 하고, 둘째, 실력이 있어 유능해야 하고, 셋째, 내외적 환경이 좋아야 하겠구나!’하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식당이나 병원, 학교에 종사하는 이들의 경우만 봐도 분명히 드러납니다. 식당이 잘되려면 주인이 친절하고 좋아야 하며 유능하여 음식 솜씨가 좋고 식당 환경이 편안하고 청결해야 할 것입니다. 병원의 경우라면 의사 역시 친절하고 실력이 있어 유능하여 잘 치료해야 하며 병원의 환경도 편안하고 쾌적해야 할 것입니다. 교사의 경우 역시 친절하고 실력이 있어 유능하여 잘 가르쳐야 하고 교실내의 환경도 편안하고 아늑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나 수도원의 경우도 똑같습니다. 주님의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 피정집을 운영하는 수도원의 수도자들이라면 모름지기 사람이 좋아 친절하고 영적 실력이 뛰어나 유능해야 하며 수도원 피정집의 환경도 고요하고 편안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좋은 사람, 좋은 실력, 좋은 환경이 서비스업의 3대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요셉수도원은 이 세 조건을 전부 갖추었나 깊이 자성했습니다. 정주와 환대의 영성을 살아가야 하는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의 필수요소라 할 수 있겠습니다. 베네딕도 성인 역시 당신 수도원을 주님의 섬기는 학원이라 명명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학원을 설립해야 하겠다. 우리는 이것을 설립하는 데 거칠고 힘든 것은 아무것도 제정하기를 결코 원치 않는 바이다.”(성규 머리말;46)
베네딕도 성인의 참 멋지고 매력적인 섬김의 영성입니다. 수도원은 바로 주님을 섬기는 배움터인 학원으로 졸업이 없이 평생 주님을 섬기는 법을 배우는 학교라는 것입니다. 섬김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의 핵심적 덕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섬김의 직무, 섬김의 권위, 섬김의 리더쉽, 섬김의 사랑, 섬김의 겸손, 섬김의 영성등 끝이 없습니다. 참으로 섬김과 종의 영성이야 말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본질적 영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오늘 복음 말씀은 만인이 형제들이고 모두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선언이자 모든 우상들을 타파하는 참 멋진 선언입니다. 스승이자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며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하느님 한분뿐이라는 것입니다. 이어 겸손한 섬기는 종이 될 것을 당부하는 주님이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바로 겸손의 섬김으로 낮아질 때 높아지고 교만으로 높아질 때 낮아진다는 역설적 영적 진리를 보여줍니다. 바로 예수님이 이의 결정적 모범입니다. 예수님은 섬김의 겸손으로 자신을 완전히 낮추시고 비우시어 하늘 높이 올라가시어 아버지곁에 영원히 살아 자리 잡으시니 바로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이런 섬김의 영원한 모범인 예수님이 우리 삶의 중심에 자리 잡고 계십니다. 이런 진리를 깊이 깨달은 바오로 사도는 자신을 그리스도를 섬기는 그리스도의 종이라 정의했고,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자신을 가리켜 ‘세계 총대주교’라고 칭하자, 이에 반발하여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즉시 교황의 신원을 ‘하느님의 종들의 종(servus servorum Dei)’이라 정의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 시몬베드로 아빠스님이 취임시 자신을 하느님의 심부름꾼이라 명명했던 기억이 새롭게 떠오릅니다. 그렇습니다. 비단 그리스도인들뿐 아니라 모든 이들이 명심해야 할 진리입니다. 국가든 사회든 가정이든 수도원이든 책임자는 물론 모두가 주님의 심부름꾼이자 종으로 생각하여 섬김의 직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된 권위도 섬김의 권위 하나뿐이요, 참된 리더쉽도 섬김의 리더쉽 하나뿐입니다. 세속적 지배와 통치의 권위가 아니라 섬김의 권위가 참권위라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교회의 지도자들은 물론 일국의 좋은 대통령이라면 지배와 통치의 “왕王”이 아니라 참으로 모두를 충실히 섬기는 종, 공복公僕이요 충복忠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경우를 예로 들면서 그리스도인들의 올바른 처신, 즉 겸손한 섬김의 사랑에 대해 강조하십니다. 이사야 예언자 역시 소돔의 지도자들은 물로 백성들에게 경청과 섬김의 구체적 실천 내용을 강조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우리 하느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자신을 깨끗이 하여라.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악행을 멈추고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의 교회 지도자들은 물론 모든 국가, 사회 지도자들이 명심해야 할 참 멋지고 적절한 가르침입니다. 새삼 섬김과 종의 영성과 자세야 말로 복음의 핵심이자, 온인류의 보편적 본질적 영성이자 자세임을 깨닫습니다.
겸손한 섬김은 바로 참 영성의 잣대입니다. 섬김의 한가운데 섬김의 모범이신 주님이 계십니다. 구원은 멀리 있지 않으며 거창하지도 않습니다. 구원은 선택이며 훈련입니다. 바로 평범한 일상 가까운데서부터 주님을 닮아 부단히 섬김의 삶을 선택하여 훈련하여 습관화 할 때 구원이요 하늘 나라의 실현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을 닮아 섬김과 종의 영성을 충실히 살게 하십니다.
“올바른 길을 걷는 이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시편50,23ㄴ).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