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3.28.사순 제4주간 월요일 이사65,17-21 요한4,43-54
하늘 나라를 꿈꾸는 사람들
-꿈의 현실화-
“지금 전쟁을 없애자, 전쟁이 역사로부터 인간성을 없애기 전에!”
“충분하다! 전쟁을 멈추라! 무기들을 침묵하게 하소서. 평화에 대해 진지하도록 하자!”
전쟁 종식의 평화를 꿈꾸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새벽 홈페이지에서 언뜻 눈에 스친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했습니다. 참으로 믿는 이들은 예외 없이 꿈꾸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창세기의 요셉은 꿈쟁이라 불렸고 옛 예언자들은 물론 예수님 역시 평생 하늘 나라를 꿈꾸며 부단히 꿈을 현실화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역시 꿈꾸는 분입니다. 꿈 역시 제 강론에 참 많이도 등장했던 제목입니다.
“꿈꾸는 정치인이 없었던 이상한 선거! 시끄럽고 시끄러웠던 20대 대선이 마침내 끝났다. 나는 몇 달 동안 한낮의 집필 시간을 빼서 정치인들의 소식과 그 관계자들의 말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들었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좀 이상했다. 어디에도 미래를 꿈꾸는 정치인이 없었다. 현실정치, 생활정치라고 하기에도 너무 옹색했다.”
일간지에서 모 소설가의 내용도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오늘날의 비극이자 불행은 꿈꾸는 사람들이 사라져 간다는 사실입니다. 희망 상실의 시대, 비전 상실의 시대입니다. 꿈꿔야 합니다. 꿈꿔야 삽니다. 꿈꿔야 비로소 사람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 꿈꾸지 죽은 사람은 꿈꾸지 못합니다.
불암산의 바위를 꿈꾸며 살아가는 저입니다. 수도형제의 재치있는 말마디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퇴임하여 팔공산에서 은수자로 살아가는 ‘팔공산의 곰’이라 불린다는 아빠스를 ‘팔공산의 아기곰’으로 지칭한 유우머에다 저를 지칭한 다음 대목입니다.
“마르틴 아빠스님이 ‘팔공산의 아기곰’이라면, 수사님은 ‘불암산의 바위’입니다.”
내심 만족했습니다. ‘불암산이 떠나면 떠났지 난 안 떠난다’는 결기는 여전합니다. 청마 유치환 역시 바위의 꿈을 노래했습니다. 불암산의 바위로 살아가는 정주의 수도자 제가 애송하는 시입니다.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노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내 죽으면 불암산의 바위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살아서 바위니 죽어서도 바위가 되겠지요. 하느님 역시 꿈꾸는 분입니다. 파릇파릇 대지에 피어나는 풀들이 하느님의 봄꿈이 현실화된 것처럼 보입니다.
“활짝 피어난 봄꽃들!
꼭 꿈꾸는 나무같네
꽃은 꿈인가
나무나 풀이 땅이 피어낸 꿈인가
꿈꾸는 사람이 아름답다
성인들
하느님이 피어낸 꽃이자 꿈이다
하느님의 꿈
꽃으로 피어나 성인들이다”-2001.3.21.
21년 이때쯤 써놨던 ‘꿈꾸는 사람이 아름답다’라는 자작시입니다. 하느님의 꿈은 오늘 복음의 예수님을 통해, 제1독서의 이사야를 통해 현실화됩니다. 날마다의 이 은혜로운 미사를 통해 하늘 나라의 꿈도 현실화됩니다. 이사야의 꿈이 얼마나 멋지고 가슴 설레는 감동인지요. 예언자이자 신비가, 시인이자 꿈쟁이인 이사야입니다.
사실 성서의 시편의 사람들은 한곁같이 하늘 나라의 꿈을 노래했고 하느님은 시편 노래를 기도로 바치는 이들에게 하늘 나라를 선물하셨으며 이는 오늘날도 여전한 진리입니다. 우리 모두 하늘 나라를 꿈꾸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이사야 예언자를 통한 주님의 강력한 권고입니다.
“보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 그러니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을. 대대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움’으로, 그 백성을 ‘기쁨’으로 창조하리라. 나는 예루살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나의 백성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라. 그 안에서 다시는 우는 소리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리라.”
얼마나 신바람 나는 하늘 나라의 꿈인지요. 여기서 3회 나오는 창조라는 말마디는 하느님의 고유 권한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이 창조하는 꿈의 현실화라는 것입니다. 꿈의 예언자 이사야처럼 꿈꾸는 사람은 지옥같은 현실에서도 하늘 나라의 꿈을, 천국을 삽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꿈꾸는 자들에게는 매일이 새 하늘과 새땅입니다. 하느님은 한 번의 창조가 아니라 끊임없이 창조와 구원을 통해 당신 꿈을 현실화하십니다.
바로 오늘 복음은 하느님 꿈이 실현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하늘 나라 꿈의 실현입니다. 하느님의 꿈이신 예수님을 만날 때 마다 하늘 나라의 실현이요 치유의 구원입니다. 문득 예전 ‘예수님 봄이다’라는 자작시가 반갑게 떠오릅니다.
“예수님은 봄이다
봄은 사랑이다
봄이 입맞춘 자리마다
환한 꽃들 피어나고
봄의 숨결 닿은 자리마다 푸른 싹 돋아난다
예수님은 봄이다
봄은 사랑이다.”-1999.3.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의 꿈은 예수님을 통해 그대로 실현되지 않습니까? 권능의 말씀을 통해 끊임없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심으로 하늘 나라의 꿈을 실현시키는 파스카의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복음의 왕실 관리와 같은 하느님을 향한 구원의 갈망과 믿음이요 하늘 나라의 꿈이 현실화된 예수님을 만나는 것뿐입니다.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왕실 관리는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났고, 바로 그 시간에 아들을 열이 떨어져 살아 났으며 이어 그와 그의 온 집안이 믿게 되었다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로 가시어 두 번째 표징을 일으키셨습니다만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참으로 당신을 믿고 꿈꾸는 희망의 사람들에게는 오늘도 표징을 일으키시니 바로 이 거룩한 미사가 결정적 증거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새 하늘과 새 땅과 더불어 치유의 구원을 선사하십니다.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네.”(시편34,6-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