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삶은 선물膳物이자 과제課題이다-2022.4.12.성주간 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pr 1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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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4.12.성주간 화요일                                                          이사49,1-6 요한13,21ㄴ-33.36-38

 

 

 

나는 누구인가?

-삶은 선물膳物이자 과제課題이다-

 

 

 

“주 하느님, 당신은 저의 희망, 

어릴 적부터 당신만을 믿었나이다. 

저는 태중에서부터 당신께 의지해 왔나이다. 

어미 뱃속에서부터 당신은 저의 보호자시옵니다.“(시편71,5-6ㄱㄴ)

 

‘나는 누구인가? 삶은 선물이자 과제이다.’ 어제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써놓은 제목입니다. 참 중요한 물음이 ‘나는 누구인가?’ 내 정체성을 묻는 물음입니다. 어제 어느 수녀와의 면담성사 시 드린 충고도 생각납니다.

 

“삶은 한폭의 그림같기도 하고 한권의 성경책 같기도 합니다. 언젠가 갑자기 성공적인 우연한 인생은 없습니다. 아무리 삶의 그림 잘 그려가다 막판에 망치면 좋은 그림 완성은 불가능합니다. 내 삶의 고유한 성경책도 그러합니다. 마지막 까지 하루하루 정성껏 써내려 가야 할 아직은 미완의 내 삶의 고유한 성경책입니다.

 

인생 노년에 공든 탑이 무너지듯 결정적 실수로 신뢰를 상실하면 회복하기도 불가능합니다. 인생 과제의 완성을 향해 살아갈수록 깨어 하루하루 분투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몸이 영혼을 끌고 가선 안되고 끝까지 영혼이 주인이 되어 육신을 끌고 가야 합니다. 하느님은 내 삶의 목표이자 방향이요, 내 삶의 중심이자 의미입니다.”

 

이래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라는 제 좌우명 시의 첫연을 좋아합니다. 2012년에 수도원 설립 25주년 기념 잔치에서 발표했으니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날마다 읽어보는 또 참 많이 인용했던 7연에 걸친 긴 좌우명 시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하늘 향한 나무처럼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덥든 춥든, 

봄, 여름, 가을, 겨울

늘 하느님 불러 주신 이 자리에서

하느님만 찾고 바라보며 

정주의 나무가 되어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살다보니 작은 나무가 

이제 울창한 아름드리 하느님의 나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받으소서.”

 

각기 고유의 나무들이 흡사 믿는 이들의 삶을 닮았습니다. 하늘을 향하지만 각자 제 자리에서 고유의 기품있는 제 모습으로 커가는 나무들입니다. 나무는 모두가 ‘꽃나무’이고 사람 역시 모두가 끊임없이 사랑의 꽃들 피어내며 살아가는 ‘꽃사람’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끊임없이 물어가며 하루하루 내 인생을 아름답게 완성해가야 합니다. 삶은 하느님 은총의 선물이자 평생 과제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써놨던 ‘오직 한 권뿐인 내 인생성경’이란 글입니다.

 

“알고 보면 사람은 누구나 

지극히 소중한 살아있는 성경 하느님의 책이다

모두 나름대로 순례자되어

하느님 바다 향해 굽이굽이 은총 반짝이며

때로는 고요히 또 때로는 힘차게

쉼없이 흐르는 강같은 

죽어야 끝나는 오직 한 권뿐인 살아있는 인생성경이다.

그러니 그 누구도 하느님을 대하듯 

존경과 사랑으로 그 인생 성경을 대할 일이다.

때때로 내 인생 성경책을 렉시오 디비나 성독聖讀하며

하느님의 뜻을 찾을 일이다.”-2006.4

 

16년전 고백의 시인데 이렇게 오늘 강론에 인용될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으니 하느님의 섭리가 참 오묘합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일어나는 일이 모두 하느님의 뜻은 아닐지라도 하느님의 허락없이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치에 희생된 옥중서간의 저자 독일의 신학자 본 훼퍼의 말입니다. 만약 이랬더라면 하는 가정법 물음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하느님은 어쨌든 오늘 지금 여기까지 우리 하나하나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화답송 후렴이 적절합니다.

 

 

“주님, 제 입은 당신 구원의 행적을 이야기하리이다.”(시편71,15ㄴㄷ)

 

회개하여 시작하면 언제든 늦지 않습니다. 심기일전 하여 내 삶의 성경책을 렉시오 디비나 하며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하루하루 정성을 다해 써내려 가며 날마다 새롭게 시작해야 할 새날의 선물들입니다. 왜 이런 묵상입니까? 오늘 복음의 배반자 유다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이런 실패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변절, 배신했을 때의 누구나의 가능성이 바로 유다입니다. 다음 대목의 묘사가 충격적입니다.

 

‘유다가 그 빵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유다는 빵을 받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때는 밤이었다.’ 

 

예수님을 배반함으로 결국 어둠에 심연에 떨어진 실패인생으로 끝난 유다입니다. 어제 복음의 주인공,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리던 마리아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오늘 복음의 부정적 주인공 유다입니다. 운명으로 돌리기에는 유다의 책임도 큽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결단과 분별의 자유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책임입니다. 아마도 유다는 평소 기도생활의 소홀로 주님과의 관계도 소원했던 듯 합니다. 유다의 배반 역시 하느님 섭리의 맥락에서 읽는 렉시오 디비나의 대가 예수님입니다. 유다가 나가자 즉시 이어지는 예수님의 고백입니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영광스럽게 되셨다.”

 

설상가상으로 유다의 배반에 이어 베드로까지 배반이 예언됩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베드로를 향한 마지막 말마디도 충격적입니다. 예수님의 심중은 얼마나 착잡했겠는지요!

 

“나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이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유다와 베드로의 결정적 차이는 베드로는 신속히 회개하여 다시 새롭게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어제 복음의 마리아와 오늘 복음의 유다와 베드로는 우리를 비춰주는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됩니다. 우연한 존재는 없습니다. 모두가 유일무이한 하느님의 사람들인 존재들입니다. 결코 함부로 방치하며 되는 대로 자포자기의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에 나오는 ‘주님의 종’의 둘째 노래가 예수님은 물론 우리 믿는 이들의 신원을 알려 줍니다.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그러나 나는 말하였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 그러나 내 권리는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네가 나의 종이 되어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이스라엘이 지칭하는 바 예수님이자,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 하나하나입니다. 얼마나 활짝 열린 하느님의 광대한 시야요 지평인지요! 성주간 예수님을 지칭한 예언이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새 이스라엘인 우리의 자랑스런 신원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의 하루, 내 고유의 성경책 한 패이지를 잘 써가시길 바랍니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선물의 하루이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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