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4.18.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 사도2,14.22-23 마태28,8-15
주님 부활 증인의 삶
-체험, 선포, 공부-
“알렐루야 노래하자 기쁜때가 왔도다.
온세상에 기쁜 소식 용약하여 전하자
우리 예수 부활하사 우리 죽음 물리쳤네
알렐루야 주예수 기쁘고 즐겁다 영화로이 사셨네.”(성가129장)
어제 흥겹게 부른 부활 성가가 기쁨을 가득 선사했습니다. 2019년 공동전례후 코로나로 인해 만3년만의 공동전례로 활기가 넘친 분위기였습니다. 몇 년만에 최고로 많이 참여한 공동전례였고 2시간 30분 동안의 부활 성야 미사때도 조는 분, 하나 없이 모두가 또랑또랑, 초롱초롱 깨어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얼마나 힘차게 노래하는지 부활 대축일 낮미사 역시 참으로 살아있는 전례 분위기였습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알렐루야 주님 부활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꽃피자 꽃지고 또 계속 연이어 갖가지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고, 꽃보다 더 아름답고 신비로운 연초록 나뭇잎들이 온누리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참으로 신록의 기쁨 가득한 부활시기를 살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그러니 기쁘게 주님 부활을 증언하며 살아야 함은 우리의 마땅한 권리요 의무입니다. 파스카의 봄꽃들과 신록의 아름다움이 잘 조화된 주님의 부활시기, 과연 우리는 주님 부활의 증인의 삶을 살고 있는지 묻게 됩니다. 어떻게 빛과 생명, 기쁨과 희망, 찬미와 감사, 평화가 가득한 주님 부활 증인의 삶을 살 수 있을런지요?
주님 부활을 우리 몸소 체험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 후반부는 경비병들이 수석사제들에 매수된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당시 예수님의 빈무덤에 대해서는 두가지 소문이 회자되고 있음을 봅니다. 하나는 “예수님 부활하셨다”는 소문이고, 하나는 복음에서 보다시피 매수된 경비병들이 퍼뜨린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갔다”라는 소문입니다.
당시 유다인들로 볼 때는 어느쪽이 진실이고 어느쪽이 거짓인지 참 판단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당시 객관적으로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다는 소문을 더 믿지 않았겠나 싶습니다. 왜냐하면 부활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에 많은 사람들은 유언비어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다는 거짓이 진실인 것처럼 설득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분명 많은 이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유언비어로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완전히 진위眞僞가 바뀐 모습입니다. 후대의 우리들이야 전후 모든 일들을 일람一覽할 수 있기에 예수님 부활의 진실을 믿을 수 있겠습니다만 당시는 참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의 기쁨이며 희망이요 생명입니다. 참으로 우리를 살게 하는 주님 부활의 은총의 체험입니다. 참으로 우리를 내적으로 변화시키는 주님 부활의 체험입니다. 오늘 복음의 전반부는 예수님 부활을 전하며 몸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여자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주님 부활 체험은 순전히 은총의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이에 앞서 주님을 애타게 찾았던 주님 사랑이 전제되고 있음을 봅니다. 누구나 자명한 부활 체험이 아니라 주님을 참으로 찾는 이들에게 주어진 은총의 선물이었던 것입니다.
“평안하냐?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당신을 애타게 찾았던 여자들에게 나타나신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대로 생생한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예수님 부활이 유언비어가 아닌 생생한 현실임을 입증하는 사건입니다. 아마 여자들에게 이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의 체험은 평생 삶의 활력소가 되었을 것입니다.
참으로 은혜로운 말씀으로 귀한 진리가 계시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살아 계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야 할 자리는 오늘 지금 여기의 갈릴래아라는 것입니다. 갈릴래아가 상징하는 바, 우리 믿는 이들 각자의 삶의 자리 오늘 지금 여기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당신 제자들인 우리를 ‘내 형제들’이라 명명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 각자 부활하신 주님의 형제답게 오늘 지금 여기 내 삶의 자리 갈릴래아에서 주님과 함께 주님 부활을 증언하는 증인이 되어 주님 부활을 선포하며 사는 것입니다. 말로서가 아니라 복음적 삶 전체로 말입니다.
그 빛나는 모범이 사도행전의 베드로 사도입니다. 오늘부터 부활시기 제1독서는 사도행전의 주님 부활을 체험한 이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류를 이룰 것입니다. 이젠 예전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하던 베드로가 아닙니다. 베드로 사도의 열화같은 오순절 설교를 통한 주님 부활의 선포로 매수된 경비병들이 전한 가짜 뉴스, 유언비어가 거짓임이 탄로되는 통쾌한 순간입니다. 참으로 진정한 내적변화로 참나를 살게 하는 주님 부활 체험임을 깨닫습니다.
“여러분은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음에 사로잡혀 계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
베드로의 확신에 넘친 용감한 고백은 그대로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자신이 몸소 체험한 사실에 대한 선포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주님 부활을 선포하며 주님 부활을 증언하는 주님 부활의 위대한 증인 베드로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렉시오 디비나 성독의 공부가 얼마나 깊은지 배웁니다. 주님 부활의 체험에 앞서 필히 전제되는 바 렉시오 디비나, 성경공부임을 깨닫습니다.
아름다운 시편 16,8-11절의 다윗의 고백을 통해 이미 주님 부활의 예언되고 있음을 깨달은 베드로입니다. 전문이 참으로 깊고 은혜로워 그대로 인용합니다.
“주님을 언제나 내 앞에 모시어,
그분께서 내 오른편에 계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기에 내 마음은 기뻐하고, 내 혀는 즐거워하였다.
내 육신마저 희망 속에 살리라.
당신께서 제 영혼을 저승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거룩한 이에게 죽음의 나라를 아니 보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신 분,
당신 면전에서 저를 기쁨으로 가득 채워 주실 것입니다.”(사도2.25-28;시편16,8-11)
다윗의 고백이자 부활하신 주님의 고백이요, 또 베드로 자신의 고백으로 사용한 시편입니다. 아니 주님과 함께 주님 부활의 증인이 되어 사는 우리의 고백으로 사용해도 참 은혜로울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렉시오 디비나의 고마움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주님 부활을 선포하며 영원한 삶을 살게 하는 렉시오 디비나 성경공부의 은총입니다. 그러니 주님 부활의 증인의 삶에 주님 부활의 체험과 선포, 성경공부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깨닫게 됩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한결같이 충실히 주님 부활의 증인의 삶을, 날마다 주님 부활 축일을 살게 하십니다. 한 주간 내내 계속되는 알렐루야 복음 환호송이 참 좋습니다. 날마다의 이날이 부활 축일입니다.
“이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시편118.2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