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4.22.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사도4,1-12 요한21,1-14
부활하신 파스카 주님과의 만남
-구원의 삶-
“주님은 좋으신 분, 찬송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시편118,1)
참 아름다운 계절, 파스카의 봄입니다. 때로 초여름에 들어선 느낌이지만 나무는 모두 꽃나무같고 풀은 모두가 꽃풀같습니다. 이름없는 작은 풀꽃들이 참 예쁘고 청초합니다. 지상의 아름다움이 이러하면 천상의 아름다움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생각합니다. 어제 피정온 분에게 드린 말이 생각납니다.
“자매님은 가장 아름다운 계절에 가장 아름다운 곳에 가장 아름다운 분,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만나 파스카의 삶을 살아갈 때 그대로 참 행복한 구원의 삶입니다.”
면담성사차 방문한 이들마다 배즙 한잔씩 대접하며 환대하니 얼마나 기쁘던지요! 마침 어제 수도원 곳곳에 피어나기 시작한 파스카의 봄꽃 샛노란 민들레꽃들과 애기똥풀꽃들을 보며 쓴 글도 나누고 싶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들의 구원의 행복을 노래한 “꽃자리”란 시입니다.
“음지든 양지든 상관없다
자리 탓하지 않는다
어디든 뿌리 내리면 거기가 꽃자리다
하늘만 볼 수 있으면 된다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성전옆 북향
그늘진 외딴곳
늘 거기 그 자리
일년 꼬박 기다렸다가
때되어 피어난 샛노란 하늘 사랑 별무리
민들레꽃들
애기똥풀꽃들
외롭지 않다
눈물겹도록 고맙다
반갑다
살아있음이 찬미와 감사다
꽃처럼 폈다 꽃처럼지는
인생이고 싶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주님 안에서 영원한 삶이다”-
오늘 복음은 일곱 제자들의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을 전해주고 사도행전 제1독서는 부활하신 주님과 만난 제자들의 신바람 넘치는 맹활약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단연코 제자들의 중심에는 베드로가 있고, 베드로의 수제자다운 리더십이 잘 드러납니다. 살아 있는 그림처럼 펼쳐지는 복음 장면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발현전, 예수님 십자가의 죽음이후 제자들은 실의에 빠져 다시 예전 일상의 고기잡이 어부의 일터로 복귀합니다.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베드로의 말에 “우리도 함께 가겠소.” 화답하며 동행하는 여섯 제자들이니 모두 일곱이요, 일곱은 충만함을 뜻하며 부활이후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상징합니다. 이들이 고기잡이 하는 동안 밤새 내내 물끄러미 바라보며 기다리고 계셨을 예수님의 다음 아름다운 장면이 참 신선한 감동입니다.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뭍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얘들아, 무엇을 좀 잡았느냐?”
“못잡았습니다.”
참으로 삶의 허무만 가득 담긴 빈 그물에 제자들의 가슴은 좌절과 실망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주님없이는 별무소득의 인생임을 뼈져리게 체험했을 것입니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순종으로 응답하여 제자들은 그물을 던졌고,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애제자와 수제자 베드로의 반응이 전광석화, 곧장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봅니다.
“주님이십니다!”
애제자의 외침에 옷을 벗고 있던 수제자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에 뛰어듭니다. 오매불망 꿈에 그리던 사랑하던 주님의 발현에 너무 놀랍고 반가워 호수에 뛰어든 베드로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작은 배로 고기가 든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렸고, 그 안에는 153마리의 고기들로 가득했으나 그물은 찢어지지 않았습니다. 견고한 교회일치뿐 아니라 미구에 있을 풍요로운 선교활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니 말 그대로 이 거룩한 아침 미사식사와 흡사합니다. 참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장면이요,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할 때 풍성한 구원의 삶임을 속속들이 체험했을 제자들입니다. 마침내 오늘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은 놀라운 고기잡이 솜씨를 보여줍니다. 물론 파스카 주님의 은총입니다.
무려 사도들의 말을 듣고 많은 이들이 믿게 되었고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명이나 되었다니 153마리 물고기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성공적 선교활동입니다. 심지어 백성의 지도자들과 원로들 모두가 사도들의 그물에 걸린 모습입니다. 성령에 가득 찬 주님 부활의 증인 베드로의 원고도 없이 하는 즉흥적인 강론이 시공을 초월하여 참 감동적입니다. 길다싶지만 그 일부를 인용합니다.
“여러분 모두와 온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곧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바로 그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여러분 앞에 온전한 몸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너희 집짓는 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입니다.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무슨 군더더기 말을 보탤 수 있을런지요! 구약성경은 물론 시편에도 정통해 있는 렉시오 디비나, 성독의 대가인 베드로 사도임을 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오직 파스카의 예수님께 있고 우리가 구원받는데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참으로 영광스럽게도 이 거룩한 미사축제를 통해 그리스도 예수님을 모심으로 영원한 생명의 파스카의 신비를, 파스카의 기쁨을 살게 된 우리들입니다. 주님 부활을 예견한 다음 화답송 시편의 고백이 참 은혜롭습니다.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주님이 하신 일, 우리 눈에는 놀랍기만 하네.
이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자 춤들을 추자.”(시편118,22-2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