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의 여정 -하느님을 닮읍시다-2022.4.24.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pr 2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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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4.24.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주일) 

사도5,12-16 묵시1,9-11ㄴ.12-13.17-19 요한20,19-31

 

 

자비의 여정

-하느님을 닮읍시다-

 

 

오늘은 부활 제2주일이자 하느님의 자비주일입니다. 방금 부른 자비하신 하느님을 노래한,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좋으신 분을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여.” 화답송 후렴은 얼마나 흥겨웠는지요! 더불어 언젠가 신나게 불렀던, “하느님의 사랑을 영원토록 노래하리라”라는 화답송 후렴도 생각납니다. 이런 짧은 성구를 끊임없이 노래함도 기도의 생활화에 참 좋은 수행이 됩니다.

 

오늘 하느님의 자비주일 미사에 참석한 여러분은 참으로 가장 행복한 분들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봄꽃 만발한, 신록 눈부신 파스카의 계절에, 가장 아름다운 주님의 집 수도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사전례중, 가장 아름다운 파스카의 주님을 만나,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되겠기 때문입니다.

 

자비하신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의 소원이자 기쁨은 우리 모두 당신을 닮아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비하신 하느님의 모상대로 지음 받은 복된 우리의 존재들입니다. 애당초 자비를 선물로 받은 우리들입니다. 그러니 이 자비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비를 사랑함이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비를 훈련하는 것입니다. ‘자비의 훈련', 얼마나 멋진 말마디입니까! 깨닫고 보면 영성생활에서 모든 수행은 은총의 선물임과 동시에 훈련입니다. 운동선수의 훈련과 흡사한 우리의 영성훈련입니다. 그러니 우리 믿는 이들의 삶은 ’자비의 여정’이고 우리의 신원은 주님 ‘자비의 전사’이며, 우리의 유일한 삶의 목표는 자비하신 하느님을 닮는 일입니다. 과연 날로 하느님을 닮아 자비로워지는 자비의 여정, 하닮의 여정인지 자문하게 됩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하느님 아버지는 대자대비하신 분입니다. 이런 대자대비하신 하느님을 그대로 닮은 분이 바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입니다. 아버지를 닮아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라 평생과정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자비하신 주님을 닮아갈 때 참행복도 참기쁨도 있습니다. 자비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모습은 파스카의 예수님을 통해 결정적으로 우리 모두에게 계시되었습니다. 예수님 부활을 의심하던 토마에게 주님께서 발현하셨을 때 토마 사도의 고백입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예수님을 통해 환히 계시된 자비하신 하느님을 체험한 토마스의 고백에 대한 주님의 응답 말씀이 우리 자신을 되돌아 보게 합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정말 우리 모두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는 믿음의 은총을 청하도록 합시다. 토마 사도만이 아니라 오늘 제1독서 묵시록의 요한 사도도 파스카 예수님을 통한 하느님 체험을 고백합니다. 그대로 파스카의 주님은 동시에 하느님이 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이고 살아 있는 자다. 나는 죽었었지만, 보라,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다. 나는 죽음과 저승의 열쇠를 쥐고 있다.”

 

바로 우리가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는 파스카 예수님의 신원입니다. 이런 파스카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 자비하신 하느님을 닮게 합니다. 삶은 은총의 선물이자 평생숙제입니다. 주님께 받은 선물들을 하루하루 최대한 활용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모두가 파스카의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문득 행복기도 한 대목이 생각납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 나라 천국이옵니다.

지상에서 이미 천국을 사는 우리들입니다.

곳곳에서 발견하는 평화, 기쁨, 감사, 행복이옵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임을 깨닫나이다.”

 

저는 요즘 가끔 이런 묵상을 합니다. 지상에서의 파스카 봄철의 꽃들과 신록이 이렇듯 아름다우면 우리가 장차 갈 천상의 천국에서의 아름다움은 어떻겠는가, 천상의 아름다움에 비하면 지상의 아름다움은 희미한 그림자에 불과할 것입니다. 파스카 주님의 그 많은 선물중 참 좋은 선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시간 우리에게 주어지는 무상의 참 좋은 선물들입니다.

 

첫째, 평화와 기쁨입니다.

파스카의 주님께서 주시는 최고의 선물이자 명약이 평화와 기쁨입니다. 평화와 기쁨을 지닌 이들이 정말 부자요 행복한 사람이요 건강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세상 재물 다 지녔어도 평화와 기쁨이 없다면 삶의 허무와 무의미, 무지의 어둠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파스카의 주님께서 임재하실 때 두려움의 벽은 사라져 평화의 문이 됩니다.

 

보십시오.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닫아 놓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를 선물하십니다. 얼마나 놀랍고 반가운지요! 두려움의 벽이 평화의 문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바로 똑같은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서시며 평화를 선물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마침 어제 면담 고백 성사를 보고 간 분께 다음 ‘말씀 처방전’에, “웃어요!” 스탬프를 찍어 드렸더니 싱글벙글 웃으며 가던 모습도 생각납니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엄베드로는 행복하다. 엄베드로는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마태5,9).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주님은 나타나실 때 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평화를 선물하십니다. 우리의 평화가 주님께는 기쁨이 됩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세상에 주님의 평화를 선물하라 파견되는 우리들입니다. 얼마나 갈망하는 평화의 선물인지요. 주님의 평화의 선물 역시 하느님 자비의 표현입니다. 일주일후 세 번째 토마스와 제자들에게 나타났을 때도 “평화가 너희와 함께!” 우선 당신의 평화를 선물하신 파스카의 예수님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몹시 기뻐했다 합니다. 바로 두려움의 벽을 평화의 문으로 바꾸시는 주님이요 평화의 문을 통해 선사되는 기쁨임을 깨닫습니다. 아무리 거금을 주고 살 수도, 빼앗아 올 수도 없는, 또 누구도 앗아 갈수도 없는 자비하신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이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어지는 평화와 기쁨의 선물입니다. 

 

평화도 기쁨도 훈련입니다. 의식적으로 깨어 부단히 평화롭게 기쁘게 살 수 있도록 영성훈련이 필요합니다. 바로 우리가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공동전례기도 시간 역시 평화와 기쁨의 영성훈련시간입니다.

 

둘째, 성령과 용서입니다.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이 성령입니다. 하나의 선물을 선택하라면 저는 두말할 것 없이 성령을 선택하겠습니다. 성령안에는 온갖 선물이 다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선물을 받는 것은 까다롭지 않습니다. 성령을 갈망하며 마음을 활짝 열 때 주님은 아낌없이 성령을 주십니다. 평화와 기쁨의 선물에 이어 성령과 용서를 선물하시는 파스카의 주님이십니다.

 

파스카의 주님은 숨을 불어넣으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창세기에서 진흙으로 사람을 지으신후 숨을 불어 생명을 넣어 살게 하시는 모습과 흡사합니다. 똑같은 주님께서 시공을 초월하여 성령의 선물로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시는 이 은혜로운 미사시간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성령의 선물과 더불어 용서의 선물입니다. 성령의 은총으로 이웃을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용서는 신적 사랑입니다. 참으로 성령을 통해 용서 받을 때 비로소 용서할 수 있습니다. 새삼 용서는 은총이지만 또 훈련이기도 합니다. 용서의 훈련입니다. 하루하루 성령의 도움에 힘입어 용서의 훈련에 지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용서의 은총과 훈련과 더불어 날로 자비하신 주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셋째, 믿음과 치유입니다.

믿음도 치유도 파스카 주님의 참 좋은 은총의 선물입니다. 오늘 제1독서 사도행전이 신바람 가득한 분위기입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주님은 사도들의 손을 통해 무수한 표징과 이적을 일으키십니다. 백성은 사도들을 존경하여 주님을 믿는 남녀 신자들의 무리가 더욱더 늘어납니다.

 

파스카 주님을 통한 믿음의 선물입니다. 믿음이 부족합니까? 부족한 믿음을 도와 주십사 간청하십시오. 이런 믿음의 선물에 따른 치유의 선물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병자들을 한길까지 데려다가 침상이나 들것에 눕혀 놓고, 베드로가 지나갈 때 그의 그림자만이라도 누구에겐가 드리워지길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은 병자들과 더러운 영에 시달리는 이들을 데리고 몰려 들었고 그들은 모두 치유되었다 합니다.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똑같은 파스카의 주님께서 시공을 초월하여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를 치유하십니다. 치유보다는 요즘 회자되는 영어 힐링이란 말이 실감나게 와닿습니다. 파스카의 주님은 물론 우리 천주교야 말로 힐링의 원조입니다. 힐링을 찾아 엉뚱한 곳을 찾지 마십시오. 믿음을 지니고 참 좋은 힐링 센타인 교회나 수도원을 찾는 것이 치유의 첩경입니다. 무엇보다 미사전례보다 영육의 힐링에 좋은 처방은 없습니다.

 

오늘은 부활 제2주일이자 하느님의 자비의 주일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가장 행복한 분들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꽃들과 신록의 파스카 봄날에, 가장 아름다운 하느님의 집 수도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사전례를 통해, 가장 아름다운 분 파스카의 예수님을 만나, 치유되어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세상에 하느님의 은총 선물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존재하는 모두가 자비하신 하느님의 무상의 선물입니다. 그러니 이런 자비하신 하느님의 선물에 대한 자발적 사랑의 응답이 끊임없는 한결같은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삶이요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자비하신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평화와 기쁨, 성령과 용서, 믿음과 치유를 선물하시어 날로 자비하신 주님을 닮아가게 합니다.

 

“주님은 좋으신 분, 찬송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시편1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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