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4.30.부활 제2주간 토요일 사도6,1-7 요한6,16-21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공동체 일치의 중심이신 주 예수님-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오늘 복음중 항해여정중 큰 폭풍으로 인해 곤경에 처한 제자 공동체를 향해 물위를 걸어오시는 주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물위를 걸어오시는 것은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기적입니다. 들을 때 마다 늘 새롭고 반갑고 고맙고 위로가 되는 말씀으로 바로 수도원 십자로 중앙 바위판에 새겨진 성구이기도 합니다.
너나할 것 없이 두려움과 불안에 포위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성서에는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마디가 365회 나오니, 주님은 1년 365일 하루하루 날마다 우리 모두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제자들을 태운 배는 항해 순례 여정중의 공동체를 상징합니다. 너나할 것 없이 공동체란 배에 몸담고 인생 항해 여정중인 우리들입니다. 곳곳에서 발견되는 인생 항해 여정중 조난당하거나 파손되거나 난파된 공동체란 배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그러고 보니 요셉 수도원이란 수도공동체란 배도 1987년 개원후 35년채 항해 여정중입니다. 그동안 이런저런 위기도 많았지만 주 예수님께서 선장이 되어 주셨기에 오늘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계속 항해 여정중 주 예수님께서 잘 인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오늘 복음에 앞서 어제는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후에 주 예수님은 열광하는 군중들을 피해 공성이불거(功成而弗居), 분별력의 지혜로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나시어 하느님곁 제자리에서 머물러 계시다 바로 위기에 처한 항해 여정중의 제자공동체를 구출해 주십니다. 주 예수님 부재시 내외적 어둠과 혼란에 빠져드는 공동체가 얼마나 허약하고 불완전한지 제자들은 뼈저리게 체험했을 것입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주 예수님이야 말로 공동체 일치의 중심이요 어둠과 혼란을 몰아내시고 빛과 안정을 주심을 깨닫습니다. 파스카의 주님께서 임재하시어 우리 삶의 중심에 자리잡을 때 어둠은 빛으로, 절망은 희망으로, 죽음은 생명으로 전환됨을 체험합니다.
“나다(I AM)”, 바로 탈출기에서 모세에게 계시된 하느님 이름입니다. 바로 주 예수님의 신적 신원이 계시되는 순간입니다. 구체적으로 “나는 너희와 함께 있다(I AM with you)”. “나는 너희를 위해 있다(I AM for you)”로 참으로 은혜롭게 계시되는 늘 우리와 함께, 우리를 위해 현존하시는 주님이심을 깨닫습니다. 문득 사막의 교부, 안토니오 압바의 두 일화가 생각납니다.
-성 안토니오 압바는 말합니다.“나는 더 이상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니,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사랑만이 두려움을 몰아낼 수 있다.”-
-니트라의 아몬 압바가 안토니오 압바를 찾아 묻습니다. “나는 당신 보다 더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당신 이름이 나보다 큰 명성을 얻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안토니오 압바의 대답입니다. “내가 당신보다 더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이 답입니다. 사랑밖엔 길이 없습니다. 참으로 우리 삶의 중심에 파스카의 주 예수님을 선장으로 모시고 한결같이 사랑하며 살아갈 때 성공적 인생 항해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참 재미있고 심오한 것이 오늘 복음 후반부의 간략한 다음 설명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배 안으로 모셔 들이려고 하는데, 배는 어느새 그들이 가려던 곳이 가닿았다.’
당장은 몰라도 오랜 시간이 지난후 삶의 뒤안길을 돌아다 볼 때 우리들이 체험하는 진리입니다. 긴 듯 하지만 순식간에 흘러간 지난 시간들이요 늦게서야 주 예수님께서 함께 해 주셨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니 현재와 미래의 삶을 위해 과거 삶을 렉시오 디비나 묵상하면서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 생각됩니다.
흡사 이상적인 공동체는 주님과 함께 항해 여정중의 공동체이자 세상에 활짝 열려 있는 환대의 쉼터, 섬같은 공동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 나눈 유머가 생각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름은 ‘그래도’라는 섬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항상 기쁘게, 늘 기도하며, 어떤 처지에서도 감사하며 사는 곳, ‘그래도’가 가장 아름다운 섬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란 섬에 또 하나의 아름다운 섬 '거기도'를 찾아냈습니다. 어느 자매가 보내준 탁월한 사진 작품에 제가 보낸 덕담에 답신입니다.
-“아, 거기도 애기똥풀꽃밭 천국이네요! 가장 아름다운 섬이름, ‘거기도’(?) 같습니다. 자매님의 사진 솜씨를 보니 탁월한 미적 감각을 지니신 듯 합니다.”
“과찬의 말씀으로 행복합니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섬 이름은 ‘그래도’에 ‘거기도’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런 세상에 활짝 열려 있는 섬같은 공동체에 항해 순례 여정중의 모범적 공동체가 오늘 제1독서 사도행전에 나오는 열두 사도와 제자들이 함께 한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공동체가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정작 무섭고 두려운 것은 외환에 앞서 안에서의 분열입니다. 사실 망한 나라나 공동체를 보면 거의가 외적의 침입보다는 내부의 부패와 분열에 기인함을 봅니다. 아무리 작아도 정의롭고 공정한, 일치단결된 공동체는 그 어떤 외부의 적도 손대지 못합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제자들의 공동체란 배가 파선될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해있음을 봅니다. 바로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히브리계 유다인들에게 불평을 터뜨리니 그들의 과부들이 매일 배급을 받을 때에 홀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차별과 분열의 위기에서 빛을 발하는 사도들의 분별력의 지혜입니다. 순전히 공동체 일치의 중심인 파스카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선물하신 지혜임이 분명합니다. 사도의 분별력의 지혜가 참 명쾌하고 통쾌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식탁 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서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십시오. 그들에게 이 직무를 맡기고,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
사도들의 지혜로운 처방의 역할 분담으로 다시 주님 중심의 일치를 회복하여 항해 여정에 오른 제자들의 공동체였습니다. 주님을 중심으로 일치를 이룬 세상에 활짝 열려있는 '그래도', '거기도' 같은 섬같은 공동체, 하느님 목적지를 향한 끊임없이 순례 항해 여정중인 공동체, 참으로 아름다운 공동체이며 우리 요셉 수도원이 꿈꾸는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바로 날마다의 미사은총이 이런 공동체 형성에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끝으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 성령께 바치는 기도문중 일부를 인용함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주 성령님.
주님만이 저희를 이끄시어 저희와 함께 하시고
저희 마음에 머무르소서.
저희가 나아갈 길을 보여 주시고,
해야 할 길을 가르치소서.
나약한 죄인인 저희가 정의를 외면하여
혼란을 일으키지 않게 하시고
무지의 오류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또한 아무도 차별하지 않게 하소서.
저희가 주님 안에서 하나되어
영원한 생명의 길을 함께 걸어가게 하시고
저희가 언제나 진리를 따르며
의로움을 찾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