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성서聖書의 렉시오 디비나 -우리는 예수님과 하느님을 배경한 형제들이다-2022.5.12.부활 제4주간 목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May 12, 202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22.5.12.부활 제4주간 목요일                                                          사도13,13-25 요한13,16-20

 

 

 

공동체 성서聖書의 렉시오 디비나

-우리는 예수님과 하느님을 배경한 형제들이다-

 

 

 

“주님, 당신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시편89,2ㄱ)

 

정말 화답송 후렴처럼 살고 싶습니다. 제 지론은 신구약 성서뿐 아니라 자연성서와 믿는 이들의 우리 삶의 역사 또한 성서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렉시오 디비나의 대상은 신구약성서는 물론 자연성서, 우리 각자 삶의 성서라 말합니다. 강론을 준비할 때도 이 세 측면의 성서를 전부 활용합니다. 물론 기본 텍스트는 신구약 성서구요. 저는 여기에다 하나를 더 첨가합니다. 믿는 이들의 교회 공동체 역시 하나의 살아있는 미완의 성서라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바르나바와 바오로가 선교사로 파견되어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유다인 회당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대상으로 한 바오로의 설교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율법과 예언서가 봉독된 후 회당장의 요청으로 바오로의 유려한 설교가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내 말을 들어보십시오.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께서는 우리 조상들을 선택하시고---” 로부터 시작하여,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보내셨습니다.” 이어 요한의 사명으로 설교를 마칩니다.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의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로 설교를 끝맺습니다.

 

그대로 이스라엘 구세사에 대한 바오로의 렉시오 디비나입니다. 문장의 주어는 오직 하느님뿐입니다. 하느님이 주인공이 되어 섭리하시는 구약은 예수님의 출현으로 끝나고 이어 신약의 예수님의 교회를 시작으로 하느님의 구원 역사는 지금까지 2000여년동안 계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세상 끝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삶이 미완의 성서이듯이 교회 공동체 역시 미완의 성서라는 것입니다. 

 

제가 주목하는 것은 각자 몸담고 살아가는 믿는 이들의 공동체 성서입니다. 교회공동체 성서, 수도공동체 성서, 가정공동체 성서등 다양합니다. 이런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 역시 하나의 성서라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중심인 살아 계신 하느님께서 주인공이 되시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은총과 죄가 점철되어 가면서 구비구비 펼쳐져가는 구원역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에 잘 협력하면서 미완의 공동체 성서를 날마다 한쪽씩 정성을 다해 써내려 가는 것입니다.

 

성서 공동체를 이루는 성원들은 모두 예수님과 하느님을 배경한 한 몸의 지체들로 형제들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이 주님의 제자들이자 형제들인 성서 공동체 회원들의 신원을 잘 밝혀 줍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우리의 주제를 파악하여 겸손하라는 것이며 주님의 종으로서, 주님께 파견된 자로서 언제나 주님께 귀를 기울이며 경청과 순종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래야 바람직한 성서 공동체의 형성입니다. 이어지는 두 번째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바로 심오한 환대의 진리를 보여 줍니다. 형제에 대한 환대는 바로 그를 파견한 예수님의 환대, 하느님의 환대에 직결됨을 봅니다. 형제들 하나하나 모두의 2중 배경이 되어 주시는 예수님이자 하느님이요, 우리는 예수님의 형제들이 되고 동시에 하느님의 자녀들이 됩니다. 그러니 하나하나 공동체 형제들이 얼마나 존엄한 품위의 사람인지 깨닫습니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형제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하느님을 만나니 이보다 건강하고 건전한 신비주의도 없습니다. 이런 자각이 각자 자신의 존엄과 위엄을 지키게 하며, 하느님의 선물인 공동체 하나하나의 형제들을 참으로 귀하게, 존중과 배려, 경청의 자세로 대하게 할 것입니다. 

 

각자가 미완의 성서이듯이 각자 몸담고 살아가는 공동체 역시 미완의 성서입니다. 여기 요셉 수도공동체 역시 35년 역사를 지닌 살아있는 공동체 성서입니다. 제가 수도원 설립 25주년을 맞이하여 렉시오 디비나하며 나눴던 내용 넷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1.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다.

2.모든 것이 다 필요했다.

3.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4.오늘 지금 여기를 살아라.

 

어제 우리 요셉공동체 형제들은 1명만 수도원에 남고 10명 수도형제들과 수도원에 잠시 거주하는 두분 형제와 함께 12명이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에 소풍차 다녀왔습니다. 어제는 제가 19084보(12.8km 3시간 3분)를 걸었으니 요 몇년간 최고의 기록입니다. 참으로 어제는 미완의 요셉수도공동체 성서 한쪽이 특별히 기록된 날입니다. 

 

함께 10명의 수도형제들이 3월중 코로나를 겪으며 한몸 공동체를 체험했고, 어제는 코로나로 인해 만2년만에 갖는 함께 공동체 소풍이었으니 참으로 뜻 깊은 날이었습니다. 혼자라면 무의미하고 엄두도 못낼 소풍을 함께 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아마 혼자 소풍온 사람은 하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천국입장은 혼자가 아니라 단체입장임을 은연중 깨닫습니다. 

 

새삼 함께 할 때 삶의 의미지 고립단절의 혼자의 삶이라면 참으로 삶의 의미를 찾기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혼자 무슨 의미로, 무슨 재미로 여기 소금산의 출렁다리를 찾겠는지요! 함께 하니 기쁨의 체험이지 혼자라면 무슨 기쁨이 있겠는지요!

 

얼마전 공동체 시노드 1차 모임시 “기도와 전례 거행”이라는 주제로 대화시 깨달음처럼 확인한 진리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우리 수도자들에게 기도와 전례 거행을 빼면 무엇이 남겠는가? 아무것도 없다!”는 고백이 절로 나왔습니다. 바꿔말해 우리 인생에서 하느님 빼버리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기도와 전례는 수도자들의 존재이유이자 모두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참으로 믿는 이들에게도 기도가, 하느님이 빠진 삶이라면 참으로 공허할 것입니다.

 

어제 원주 간현 관광지 소풍때 새삼스런 깨달음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먹을 것 빼면 아무것도 없네!” 정말 관광지 주변에 즐비한 대부분의 가게들이 먹을 것뿐이었습니다. “먹는 재미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사나? 먹자고 하는 일인데.” 언젠가 들은 말도 생각납니다. 새삼 기도하고 먹고 일하고 놀고, 넷은 참된 인간 삶의 기본적 필수 요소임을 깨닫습니다. 어제 공동체 소풍때는 적절히 먹으며 간략한 공동체 시간경을 꼭 바쳤습니다. 그러니 기도와 놀이와 식사가 균형잡힌 일과로 참으로 미완의 공동체 성서 한쪽을 뜻깊게 완성한 하루였습니다.

 

마지막 폐역인 간현역에서 약1시간에 걸친 레일파크 체험도 잊지 못합니다. 젊은 수도 형제들 덕분에 가능했던 체험이었습니다. 폐역廢驛, 폐교廢校, 폐가廢家, 폐사지廢寺址를 대할 때는 웬지 모를 슬픔, 아픔과 더불어 아련한 추억에 잠기게 됩니다. 예전 폐역되기 전에 이런 간현역같은 목가적인 역에 역장은 참 낭만적이었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간현역에서 대략 30분 정도 관광기차를 탔고, 돌아올 때 30분 정도는 레일위를 4인1조의 관광 기관차를 타고, 4개 달린 바퀴에 페달을 밟으면서 속도를 조절하면서 주위 풍경도 감상했습니다. 지날 때마다 바뀌는 다양한 풍경들이 살아 온 인생 여정을 상징하는 듯 했습니다. 다시는 오지 못할 지나간 날들, 각자 살아 온 나날들의 풍경도 참 다양했을 것입니다. 반대로 거꾸로 지난 날들을 향해 살라면 못살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희망 때문에 주님께 궁극의 희망을 두고있기에 우리 인생 열차는 죽는 그날 까지 계속 달릴 수 있을 것입니다.

 

계속 흘러가는 세월이요, 인생 차창의 풍경도 시시각각 바뀔 것입니다. 앞으로 겪게될 하루하루의 풍경을 잘 감상하면서 주님과 함께 미완의 공동체 성서, 미완의 내 자신의 삶의 성서 한쪽 한쪽을 잘 쓰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개인 삶의 성서를, 공동체 성서를 잘 렉시오 디비나 하면서 잘 써가도록 도와 주실 것입니다. 죽는 그날까지 하루하루 주님과 함께 써내려 가야 할 각자 삶의 성서, 공동체 성서입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알렐루야.”(마태28,20). 아멘.

 

 

 

 

 

 


Articles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