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5.17.부활 제5주간 화요일 사도14,19-28 요한14,27-31ㄱ
떠남의 여정
-늘 새로운 시작-
어제는 어려운 환경중에도 하루하루 힘껏 노년을 살아가는 분의 편지를 보면서, 또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떠남의 여정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살아갈수록 힘든 나이들임이 분명합니다. 참으로 늘 좋고 새롭고 아름답게 살다가, 넉넉하고 초연한 단풍 아름다운 가을같은 노년을 맞이한다면, 또 일출日出같은 찬란한 젊음을 살다가 일몰日沒같은 고요하고 평화로운 노년에 죽음을 맞이한다면 얼마나 멋지겠는지요!
그러나 사실은 이와 반대로 펼쳐지는 인생들입니다. 노욕老慾, 노추老醜란 말도 있듯이 대부분 힘들게 살다보면 가난과 걱정, 치매, 병고로 인해 초라하고 존재감 없는 노년이 되기 십중팔구입니다. 얼마전 손주를 돌보는 자매의 ‘아이는 늘 봐도 예쁘고 귀엽고 향기롭다’는 말을 듣고 ‘왜 사람은 세월 흘러 늙어 가면서 아이처럼 예쁘고 귀엽고 향기롭지 못할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떠남의 여정중에도 늘 새로운 시작에, 늘 새롭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우리는 사계절의 변화를 통해 참 이상적인 떠남의 모습을 배웁니다. 봄이 떠나면 여름이요 여름이 떠나면 가을이요 가을이 떠나면 겨울이요,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늘 좋고 새롭고 아름답습니다.
사계절의 흐름처럼 우리 인생 역시 세월의 흐름중에도 늘 좋고 새롭고 아름다울 수 없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예전에 써놨던 ‘산은 나이도 먹지 않나 보다’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이런 산같은 정주의 수도생활이라면 참 멋지겠다 싶었습니다.
“산은 나이도 먹지 않나 보다
아무리 세월흘러도
봄마다 신록의 생명, 신록의 기쁨
가득한 산, 꿈꾸는 산
산은 나이도 먹지 않나 보다
세월도 비켜가나 보다
늘 봐도
새롭고 좋고 놀랍고 아름다운 산이다“”-2006.5
시를 썼던 16년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한결같이 좋고 새로운 정주의 불암산입니다. 과연 어떻게 산처럼 날마다 떠남의 여정중에도 늘 새롭고 좋고 놀랍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육신에 끌려가는 영혼이 아니라, 영혼이 육신을 끌고가는 아름다운 떠남의 여정을 살 수 있을까요. 참으로 중요한 인생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제 읽은 사람에 관한 평이 재미있었습니다. 인물과 속물과 괴물로 나누어 살펴본 삶이었습니다. 참으로 세파속에도 품위를 잃지 않고 고고히 살아가는 인물人物이 있는가 하면, 대부분은 세속에 때묻어 오염된 속물俗物들이요, 부끄러움도 모르는 후안무치, 적반하장의 괴물怪物들도 많다는 것입니다. 괴물에서 더 추락하면 좀비같은 폐인일 것입니다.
예전에 자주 썼던 말마디도 생각납니다. 거칠고 험한 인생 광야 여정, “제대로 미치면 성인聖人이요 잘못 미쳐 중독되면 폐인廢人이다.” 했던 말입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자녀답게, 참 좋은 인물로 살 수 있을까요. 답은 하나 하루하루의 떠남의 여정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늘 새로운 시작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마지막 떠남인 죽음 역시 새로운 시작일 수 있습니다. 지상에서 이렇듯 눈부신 신록의 아름다움이라면 죽음후 천국문이 열렸을 때의 아름다움은 정말 놀라울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과 사도행전의 바르나바와 바오로 사도가 떠남의 여정에 좋은 모범을 보여줍니다. 참 좋은 평화의 선물을 남기고 떠나는 참 아름다운 예수님이요, 부활후 발현했을 때 제자들에게 주신 선물 역시 평화였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똑같은 주님께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이런 참 평화를 선물하십니다. 고통이 없는 평화가 아니라 고통중에도 누릴 수 있는 참 평화입니다.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참 좋은 선물이 주님의 평화입니다.
예수님처럼 이런 평화의 선물을 남기고 떠나는 죽음이라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축제같은 죽음이겠는지요! 사실 유산 문제로 인해 자손들에게 불화와 분열을 남기고 떠나는 죽음도 많지만 간혹 드물게 신앙 유산 덕분에 일치와 평화를 남기고 떠나는 아름다운 죽음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정말 하루하루 떠남의 여정에 충실하며 잘 살았는지는 축제같은 죽음을 통해 환히 드러납니다.
사도행전의 바르나바와 바오로 사도의 제1차 선교여행의 마무리도 참 성공적이요 아름답습니다. 사도행전 13장부터 오늘 14장까지, 떠남의 여정에 충실했던 두 사도의 아름다운 선교여행을 보여줍니다. 떠날 때 마다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고 믿음에 충실하라 격려하면서 교회마다 원로들을 임명하고 단식과 기도한 뒤에 이들이 믿게 된 주님께 의탁합니다. 마지막으로 안티오키아 교회에 도착하여 성공적 선교여행을 보고하니 말그대로 해피엔딩입니다.
떠나야 할 때, 잘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참 좋은 선물이 됩니다. 요즘 수도원 경내에는 아카시아 꽃향기가 그윽합니다. 사실 아픈 상처의 추억만 있는 게 아니라, 향기로운 사랑의 추억도 있습니다. 향기맡고 뒤돌아 바라보는 아카시아 꽃향기처럼, 향기로운 사랑으로 남아있는 떠남의 추억이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예수님처럼, 두 사도처럼 늘 새롭고 좋고 아름다운 떠남의 여정을 살 수 있을까요. 주님의 제자로서 주님의 선교사로서 하루하루의 삶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영원한 주님이자 스승이요 도반이신 파스카 예수님과의 우정입니다. 참으로 날로 주님과의 깊어가는 우정이. 영원한 하느님께 대한 희망이 늘 새로운 시작의 가슴 설레는 떠남의 여정을 살게 합니다.
이것은 제가 2014년 산티아고 순례 때도 체험한 진리입니다. 산티아고 순례시 가장 좋았던 시간은 새벽 미사후 배낭을 메고 설레는 마음으로 새벽길을 떠날 때 였습니다. 정말 어디서나 하루만 지나면 곧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참 신비하게도 목적지 산티아고에 가까워질수록 발걸음도 가볍고 빨라졌던 추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이때 가장 많이 끊임없는 기도로 바쳤던 성구는 약식성무일도서 3시경 후렴, “주님의 집에 가자 할 제, 나는 몹시 기뻤노라”(시편122,1) 였습니다.
참으로 가슴 설레는 늘 새로운 시작의 떠남의 여정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것이 주님과 사랑과 신뢰의 관계입니다. 주님과 사랑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육신은 저절로 영혼에 순종하여 영혼을 따라가게 됩니다. 바로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주님과 우정을 날로 깊이 해 주면서 우리 모두 성공적 떠남의 여정을 살게 해 주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