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6.7.연중 제10주간 화요일 1열왕17,7-16 마태5,13-16
꽃자리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
"주님만 바라고 선을 하라,
네 땅에 살면서 태평을 누리리라.
네 즐거움일랑 주님께 두라,
네 마음이 구하는 바를 당신이 들어주시리라.
네 앞길 주께 맡기고 그를 믿어라,
몸소 당신이 해 주시리라.”(시편37,3-5)
"당신이 내리신 빛과 진리가 나를 이끌게 하시고,
당신의 거룩한 산 장막으로 나를 들게 하소서."(시편43,3)
아침 시편성무일도시 마음에 와닿은 구절입니다. 이렇게 살 때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이 되어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믿는 이들의 신원은, 정체는, 존재이유는,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분명한 답을 주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얼마나 고무적인지요. 예외없이, 차별없이 누구나 세상의 소금이자 세상의 빛이라는 것입니다. 세상과 격리된 소금이 아니라 세상속의 소금이라는 것입니다. 세상과 격리된 빛이 아니라 세상속의 빛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빛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을 떠난 소금이라면, 세상을 떠난 빛이라면 존재이유의 상실입니다.
각자 고유의 삶의 자리입니다. 내 삶의 자리가 바로 세상의 중심입니다. 그러니 각자 삶의 제자리에서 세상의 소금으로, 세상의 빛으로 사는 것입니다. 나하기에 달렸습니다. 아무도 나를 방해할 수 없습니다. 누구도 탓할 수 없습니다.
삶은 선물이자 과제입니다. 제 좋아하는 말마디입니다. 누구나 세상의 소금이자 세상의 빛이라는 선물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선물이 끝까지 선물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끊임없는 노력을 통한 과제의 수행이 뒤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변질되지 않고 빛 바래지 않고 늘 선물로 살 수 있습니다.
똑같이 세상의 소금이자 세상의 빛으로 선물처럼 주어진 삶이지만 이런 과제 수행의 노력이 없으면 소금은 변질되어 맛을 잃게 되고, 빛도 서서히 잃어가기 마련입니다.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살 수 있습니다. 크게 비범한 일이 아닌 아주 평범한 일입니다. 세상의 중심인 바로 각자 삶의 자리에서 꽃자리로 사는 것입니다. 각자 꽃자리로 살 때 언제나 세상의 소금으로, 세상의 빛으로 살 수 있습니다.
어제 주고 받은 반가운 메시지를 소개합니다. 어린 6남매를 데리고 자주 수도원에 피정을 오는 40대 중반의 시몬 아버지와 주고 받은 메시지입니다.
“오늘 저희 집 장녀 박예현 라파엘라(초등 5학년)가 ‘사랑밖엔 길이 없었네’를 읽고 쓴 독서일기’입니다” 라는 메시지와 더불어 다음 같은 짧은 독서일기입니다.
“2022.6월5일(일)
<사랑밖엔 길이 없었네> 293쪽-317쪽
오늘 ‘사랑밖엔 길이 없었네’를 다 읽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이수철 신부님은 매일 같은 시간에 기도하고 일하시면서 자작시도 지으시고 책을 쓰셨다는게 대단하시다. 강론도 쓰시고 여러 가지 일을 하실텐데 시간을 알뜰하게 쓰시나보다. 나도 그런 모습을 본받아야겠다.”
초등학교 5학년생이 제 졸저 “사랑밖엔 길이 없었네”를 독파하며 이렇게 독서일기를 썼다니 놀랍고 감동적이라 즉시 답신을 보냈습니다.
“맏딸! 정말 잘 두셨네요! 축하드립니다. 여러분들과 형제님 여덟 식구의 가족 사진도 글도 나누니 모두 즐거워하더군요. 정말 좋은 아빠와 엄마에 자녀들이라구요!”
바로 이런 화기애애한 성가정이 그대로 세상의 소금이자 세상의 빛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바로 평생 시종여일始終如一, 세상의 소금으로, 세상의 빛으로 사셨습니다. 개인은 물론이고 공동체적으로 세상의 소금으로, 세상의 빛으로 살면 예수님은 더 기뻐하실 것이며 효과도 클 것입니다.
사실 오늘 복음도 개인에 대한 말씀이라기 보다는 공동체적이자 개인적입니다. 제자공동체를 향해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예로든 여덟 식구의 성가정은 물론 우리 열두명의 성베네딕도회 요셉수도공동체가 바로 세상의 소금이자 세상의 빛입니다. 세상의 중심이자 세상의 오아시스, 세상의 천국인 여기 요셉 수도공동체입니다.
음식의 부패를 막아주고 맛나게 하는 소금입니다. 이런 소금이 맛을 잃으면 존재이유의 상실입니다. “맛이 갔다!” 음식이 맛이가면 버리겠지만 사람이 변질되어 맛이가면 참 대책이 없습니다. 주변을 밝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변을 어둡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을 밝혀야 할 존재가 빛을 잃어도 참 문제입니다.
어떻게 평생 맛을 잃지 않는 소금으로, 빛을 잃지 않는 빛으로 살 수 있을까요? 세상의 소금이자 세상의 빛이신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유일한 단 하나의 방법입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 열왕기 상권에 나오는 엘리야 예언자가 그 모범입니다. 주님과 일치된 삶을 살았기에 사렙다 과부 가족을 살리고 자기도 삶으로 명실공히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엘리야 예언자입니다.
그러니 각자 삶의 꽃자리에서 나날이 주님을 닮아가는 꽃자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희 요셉 수도 공동체가 주님을 닮아 꽃자리 공동체가 되어 세상의 소금같은 존재로, 세상의 빛같은 존재로 살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날마다 평생 끊임없이 규칙적으로 수도원의 중심인 성전에서 바치는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시편 성무일도와 미사라는 공동전례기도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빛이 되어 살 때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끊임없이 많은 이들이 빛을 찾아 수도원에 올 것입니다. 말 그대로 존재론적 복음 선포의 삶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오해없으시길 바랍니다. 세상의 빛인 우리는 스스로 빛을 발하는 발광체發光體가 아니라 발광체 주님의 빛을 반사하는 반사체反射體라는 것입니다. 마치 태양빛을 반사하는 달빛처럼 말입니다.
참으로 우리의 착한 행실을 통해 주님을 닮아갈수록 빛나는 반사체, 세상의 빛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 결론같은 주님의 말씀이 이를 명쾌하게 정리해 줍니다.
“이와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오늘 지금 여기가 주님이 함께 하시는 우리의 거룩한 꽃자리, 하늘 나라입니다. 바로 여기가 구원의 꽃자리, 진리의 꽃자리, 생명과 빛의 꽃자리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수도공동체를 날로 주님을 닮은 꽃자리 공동체로, 세상의 중심, 세상의 소금으로, 세상의 빛인 꽃자리 공동체로 살게 하십니다. 끝으로 지난 4월 21일 부활시기 썼던 꽃자리란 제 자작시로 강론을 끝맺습니다.
“음지도 양지든 자리 탓하지 않는다
그 어디든 하늘만 볼 수 있으면 된다
어디든 뿌리 내리면 거기가 꽃자리이다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성전옆 북향 그늘진 외딴곳
늘 거기 그 자리
1년 꼬박 기다렸다가 때되어 피어난
샛노란 하늘 사랑 별무리 애기똥풀꽃들 공동체다
외롭지 않다
눈물겹도록 고맙고 반갑고 기쁘다
살아있음이 경이驚異요 찬미와 감사다
꽃처럼 폈다 꽃처럼 지는 인생이고 싶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 예수님 안에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