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6.8.연중 제10주간 수요일 1열왕18,20-39 마태5,17-19
주님의 전사
-“사랑밖엔 길이 없었네”-
“언제나 제가 주님을 모시어,
당신이 제 오른쪽에 계시니 저는 흔들리지 않으리이다.”(시편16,8)
“당신은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치시어,
당신 얼굴 뵈오며 기쁨에 넘치고,
당신 오른쪽에서 길이 평안하리이다.”(시편16,11)
바로 마음에 와닿은 시편 화답송 두 구절입니다. 이래야 주님의 전사로서 영적승리의 삶입니다. 수도생활 초창기부터 제가 강론시 가장 애용했던 말마디는 영적전쟁에 주님의 전사입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수도생활은 영적전쟁이고 우리 수도자들은 예외없이 주님의 전사라는 것입니다.
죽어야 제대인, 살아있는 그날까지 싸워야 하는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전사, 기도의 전사, 사랑의 전사, 평화의 전사입니다. 비단 수도자만이 아니라 믿는 이들 모두가 주님의 전사이고, 성서에 나오는 인물들이, 교회의 성인들이 주님의 전사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수도공동체 형제들의 전우애戰友愛와 학우애學友愛, 형제애兄弟愛의 조화와 균형을 강조해왔습니다.
바로 주님의 전사의 빛나는 모범이 오늘 제1독서 열왕기 상권에 나오는 그 유명한 엘리야 예언자로, 구약의 에녹, 모세와 더불어 승천한 인물로 꼽히는 분입니다. 오늘 카르멜 산에서 바알 예언자들과의 대결이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참으로 사느냐 죽느냐 절체절명絶體絶命의 대회전大會戰입니다.
주님의 전사이자 예언자인 엘리야 1명과 바알 예언자들 450명의 대결입니다. 1:450이니 분위기로 보면 바알 예언자들이 엘리야 예언자를 압도합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전혀 주눅든 기색이 없고 오히려 여유가 있어 보입니다. 그가 얼마나 하느님을 신뢰하고 사랑했는지 깨닫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택을 촉구하는 말씀은 그대로 오늘의 우리를 향한 말씀처럼 들립니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다리를 걸치고 절뚝거릴 작정입니까? 주님께서 하느님이시라면 그분을 따르고 바알이 하느님이라면 그를 따르시오.”
그러나 백성은 눈치를 보노라 묵묵부답, 엘리야에게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대로 세상과 하느님께 양다리를 걸치고 사는 참으로 약하나 영악하고 무지한 인간의 모습을 반영합니다. 온갖 노력을 다해도 바알의 반응이 없자 이들 바알 예언자들을 놀리는 여유만만의 엘리야입니다.
“큰 소리로 불러 보시오. 바알은 신이지 않소. 다른 볼일을 보고 있는지, 자리를 비우거나 여행을 떠났는지, 아니면 잠이 들어 깨워야 할지 모르지 않소?”
이어 등장하는 주님의 전사, 천하무적天下無敵의 엘리야 예언자입니다. 만반의 준비가 끝나자 엘리야의 목숨을 건 절박한 기도가 심금을 울립니다. 기도는 이렇게 진실하고 간절하고 절박해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주님, 당신께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고 제가 당신의 종이며, 당신의 말씀에 따라 제가 이 모든 일을 하였음을 오늘 저들이 알게 해 주십시오. 저에게 대답하여 주십시오. 주님! 저에게 대답하여 주십시오.”
정말 목숨을 건 절박한 기도입니다. 문득 목숨을 걸고 바둑을 둔다는 조치훈이, 목숨을 걸고 축구를 한다는 박지성이, 목숨을 걸고 책을 만든다는 박국용 미카엘 출판인의 고백이 생각납니다. 바로 그 출판인이 급기야 생각해낸 제 졸저 제목 “사랑밖엔 길이 없었네”였습니다. 하루하루 목숨을 걸고 온힘을 다해 영적전투에 임하는 주님의 전사들인 우리 수도자들입니다. 이래야 영육의 건강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마침내 하느님의 통쾌한 승리의 응답에 감복感服한 백성들의 고백입니다.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 물론 엘리야의 승리, 하느님의 승리로 끝난 전투였지만 계속 이어질 엘리야 예언자의 평생전투입니다. 역시 죽어야 끝나는 우리의 영적전쟁입니다.
엘리야에 버금가는, 아니 엘리야를 훌쩍 뛰어넘는 주님의 전사가, 하늘나라의 전사, 사랑의 전사가 바로 오늘 복음의 우리 예수님입니다. 예수님 역시 엘리야처럼 승천하심으로 빛나는 승리의 전사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사랑은 그대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반영입니다.
사실 모든 율법이 사랑의 정신이 배경이 되고 있기 때문에 정말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율법은 물론 계명과 말씀들을 사랑하고 지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마나 단호한 율법 사랑인지 예수님의 육성을 듣는 느낌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단호하고 엄중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대로 율법사랑을 통해 표현되는 하느님의 전사, 예수님의 하느님 사랑이 우리를 전율戰慄케 합니다. 참으로 어느 작은 계명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답입니다. 사랑밖엔 길이 없습니다. 참으로 하느님 사랑만이 어느 율법도 소홀함이 없이 지킬 수 있게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수록 율법의 정신에 정통함으로 모든 율법을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앞으로 전개될 마태복음의 여섯 대당명제를 통해 업그레이드된 주님의 사랑이 드러날 것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임을 입증할 것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입니다. 사랑할 때 율법의 사랑 정신이 한눈에 보이고, 분별의 지혜도 생겨 율법의 사랑 정신 따라 사랑을 살게 되니 말 그대로 율법의 완성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이 하는 일들은 모두가 무죄이며 율법에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바로 이런 경지를 드러낸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사랑하라, 그리고 그대가 원하는 것을 하라(Ama et fac quod vis)”는 명언이 생각납니다. 공자의 나이 70 종심從心에 이르렀을 때, “일흔 살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랐지만 법도에 넘지 않았다.” 라는 고백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우리 식으로 말해 나이 70을 넘으면 삶자체가 사랑이라 하는 모든 일이 사랑의 법도, 사랑의 율법, 사랑의 계명에 벗어나지 않았다는 대자유인의 고백인데, 70을 훌쩍 뛰어 넘은 제 자신을 부끄러이 뒤돌아 보게 하는 공자의 고백입니다.
사랑이 답입니다. 사랑밖엔 길이 없습니다. 주님의 전사는 사랑의 전사입니다. 삶은 사랑의 학교요 우리는 죽어야 졸업인 사랑의 학교에서 죽을 때까지 사랑을 배워야 하는 사랑에는 영원한 초보자인 학생일 뿐입니다. 그러니 사랑의 평생 전사, 사랑의 평생 학인입니다.
지난 성령 강림 대축일 미사때 교황님은 깊고 감동적인 강론을 해주셨는데 주제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성령의 학교에 앉읍시다(Let us sit at the school of the Holy Spirit)”, ‘성령의 학교’란 말마디가 참신했습니다. 새삼 사랑의 학교는 성령의 학교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시간 우리 모두 사랑의 학교, 성령의 학교에서 주님께 예수성심의 사랑을 배우고 성령을 충만히 받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주님, 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시고 당신의 진리로 저를 이끄소서.”(시편25,4.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