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중심의 온전한 삶 -회개와 믿음-2022.7.12.연중 제15주간 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l 12, 202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22.7.12.연중 제15주간 화요일                                                                이사7,1-9 마태11,20-24

 

 

 

하느님 중심의 온전한 삶

-회개와 믿음-

 

 

 

곳곳에서 위중하다는 소식이, 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그동안 사제서품후 만 33년 동안 면담성사를 봤던 분들중 참 많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삶이야 어떻듯 참 덧없는 삶, 불쌍한 죽음이란 생각이, 또 하느님께 다 용서받았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나름대로 대부분 힘겨운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황금, 소금, 지금이란 3금에 대한 유머를 듣고 웃었습니다. 지금 만나는 사람이, 지금 하는 일이, 지금 사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오늘 여기서 “지금” 깨어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이 아름답습니다. 부단한 회개와 믿음을 통해 날로 견고해지는 하느님 중심의 온전한 삶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죽음 준비도 없을 것입니다.

 

어제 매달 면담성사를 보는 어느 수녀님을 통해 주님 안에서의 아름다운 형제애兄弟愛에 감동했습니다. 그 수녀회는 함께 사는 분원 수녀들에 대해 장점 5가지를 써서 총원에 보내라 했고 함께 사는 수녀와 함께 그 수녀님도 보냈다 했습니다. 나중에 서로 다 알게 된 내용이라 그 내용을 알고 싶어 적어 달라했더니 그 단순하고 총명한 수녀님은 그대로 적어 주었습니다. 

 

1.기도와 소임에 충실하다.

2.부지런하다.

3.늘 공부하고 연구하며 주변을 성장시키는데 주력한다.

4.배려심이 깊다.

5.함께 사는 수녀를 사랑으로 대한다.

 

참 긍정적이고 좋은 내용이라 저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함께 사는 수녀의 자기에 대한 장점이며 이어 자기가 적은 상대방의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1.공동생활(공동기도)을 잘 따라 한다.

2.모든 일에 소통이 잘 된다.

3.밝고 명랑하며 소임에 열의와 사랑이 있다.

4.수도생활 잘 하려고 노력하는 점이 보인다.

5.때로 문제가 있을 때 대꾸하지 않고 지혜롭게 처신한다.

 

참 보기 드문 아름다운 형제애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서로의 장점을 발견하고 감사하며 서로 좋은 관계로 사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부단한 회개와 믿음을 통한 참 아름다운 하느님 중심의 온전한 삶을 반영합니다.

 

또 하나의 체험도 잊지 못합니다. 겉 표지도, 종이의 질도, 활자의 크기도, 삽화도 좋은 완벽한 두터운 평전 성격의 책이었는데 대충 다 읽었고 별로 남는 것이 없었습니다. 읽기전 겉으로는 참 좋아 보였는데 막상 읽어보니 참 내용contents도 줄거리story도 빈약했습니다. 중요한 내용은 읽으며 줄을 치는데 거의 줄을 칠 내용이 없는 평범한 내용들이었습니다. 

 

반면 겉모습과 관계 없이 흥미진진한 수없이 밑줄치며 감동에 젖어 읽는 평전들도 많습니다. 참 깊고 아름다운 내용에 줄거리들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한권의 책같은 인생인데 그 내용과 줄거리는 참 다양하겠다는 깨달음이 깊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고전古典같은, ‘늘 옛스러우면서도 늘 새로운(ever old, ever new)’ 깊고 아름다운 책같은 인생도 있겠지만 하잘 것 없는 내용의 책같은 인생도 많겠다 싶었습니다. 생각없이, 영혼없이 자기 중심적 무지無知의 삶을 살다보면 참 내용도 줄거리도 부실한 삶이겠구나 하는 큰 깨우침이었습니다. 이래서 하루하루 회개와 믿음의 하느님 중심의 삶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말씀의 이해도 확연해 집니다.

 

오늘 복음은 회개하지 않는 세 고을들에 대한 예수님의 가차없는 질타에 불행선언입니다. 내 몸담고 있는 고장은 여기에 해당되지는 않을런지요.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재를 뒤집어 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날에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그렇게 많은 기적에다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는 배은망덕한 고을에 대한 예수님의 깊은 아픔과 의노義怒를 반영합니다. 바로 먼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 세대를 향한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바로 예수님의 단호함이, 예수님의 깊은 상처의 아픔이 마음에 그대로 전달되는 느낌입니다.

 

인간의 고질병인 무지의 악, 무지의 죄, 무지의 병에 대한 유일한 근본 처방은 회개뿐입니다. 한두번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끊임없는 회개의 여정이어야 할 것입니다. 밥먹듯, 숨쉬듯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회개와 더불어 믿음이요, 하느님 중심의 온전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앞에서의 회개 없이는 믿음도, 자기를 아는 겸손과 지혜도 없습니다. 거칠고 삭막한 광야인생, 평생 무지의 괴물怪物같은 삶을 살다가 죽을 수도 있고 세상것들에 중독되어 폐인廢人같은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부단한 회개와 믿음을 통한 하느님 중심의 삶일 때 비로소 온전하고 거룩한 성인聖人의 삶을 살 수도 있겠습니다. 이것이 우리 믿는 이들 삶의 궁극 목표일 것입니다. 이런 이들의 인생 책은 내용도 줄거리도 참 깊고 아름답고 풍부할 것입니다.

 

자기 중심의 무지와 탐욕의 삶일 때 두려움과 불안은 날로 증폭되기 마련입니다. 이런 두려움과 불안에 대한 세상 처방은 없습니다. 회개와 믿음을 통한 하느님 중심의 삶의 회복만이 유일한 처방입니다.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는 하느님께서 이사야를 통한 아하즈에게 내린 첫 번째 경고입니다. 르침과 아람, 페카의 동맹군의 침공 소식이 다윗 왕실에 전해지자 숲의 나무들이 바람 앞에 떨 듯 임금과 그 백성의 마음이 떨 때 이사야의 등장입니다.

 

“진정하고 안심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 이들이 격분을 터뜨린다 하여도 이 둘은 타다 남아 연기만 나는 장작 끄트머리에 지나지 않으니, 네 마음이 약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그대로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두려워하는 우리들에게 주는 말씀 같습니다. 바로 회개를 통해 믿음을 회복하여 하느님 중심의 온전한 삶을 살라는 것이며 이래야 비로소 두려움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말마디가 오늘 강론을 요약합니다.

 

“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서있지 못하리라

(Unless your faith is firm

you shall not be firm).”(이사7,9ㄴ)

 

불신불립不信不立입니다. 믿지 않으면 서있지 못합니다. 하느님 중심의 믿음이 무너지면 삶역시 속절없이 무너집니다. 믿어서 서있을 때 두려움과 불안도 사라집니다. 히브리어로 ‘믿다’와 ‘서있다’는 한 어근에서 파생한 두가지 변화용으로, 어근은 ‘견고하다’, ‘확고하다’의 뜻을 지니며 ‘아멘’도 같은 어원에서 나옵니다. 

 

참으로 끊임없는 회개를 통해 믿게 되고 서있게 됨으로 비로소 하느님 중심의 온전한 삶이겠습니다. 회개-믿음-서있음-두려움이 사라짐-하느님 중심의 온전한 삶이 하나로 연결됨을 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부단한 회개와 믿음을 통해 우리 모두 하느님 중심의 온전한 삶으로 이끌어 줍니다. 아멘.

 

 


Articles

8 9 10 11 12 13 14 15 1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