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카의 꽃같은 삶 -“오늘 지금 여기”-2022.7.13.연중 제15주간 수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l 1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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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7.13.연중 제15주간 수요일                                                  이사10,5-7.13-16 마태11,25-27

 

 

파스카의 꽃같은 삶

-“오늘 지금 여기”-

 

 

“저는 의로움으로 당신 얼굴을 뵈오리다.

 깨어나 당신을 뵈옴으로 흡족하오리다.”(시편17,15)

 

약2주간에 걸친 배봉지 싸는 일이 엊그제 7.11일로 끝났습니다. 다섯분의 자매가 아마 15만 봉지쯤 쌌을 것입니다. 거의가 배봉지 싸기 30년은 됐을 것입니다. 30대 중반의 어머니들이었는데 지금은 다 6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고 손주를 둔 할머니가 되었지만 여전히 어머니란 호칭이 더 어울립니다. 끝나는 날 ‘하늘에 별을 다는 어머니들’이라는 시를 선물했습니다.

 

“하늘에 사랑의 별을 다는구나

사다리 부지런히 오르내리며

배나무 가지 배열매 봉지를 쌀 때 마다

 

하늘에 떠오르는 하얀 별들

낮에도 환히 떠오른 별들

하늘에 사랑의 별을 다는 어머니들이다

 

몸은 고단해도

얼굴은, 눈은, 음성은 별처럼 빛나는

하늘에 별을 다는 ‘주님의 전사戰士’ 어머니들이다”

 

벌써 세 번째 인용하는 시詩이지만 늘 새롭고 기분이 좋습니다. 말 그대로 파스카의 어머니, 파스카의 꽃같은 삶을 사는 분들입니다. 두 어머니의 답신입니다.

 

“신부님, 시 너무 감동했어요. 너무나 감사합니다.”

“신부님, 만드신 시가 제 마음에 와 닿네요. 너무 감사합니다.”

 

다음은 어제 써놨던 ‘파스카의 꽃같은 삶’이라는 시입니다. 정주의 삶을 살다보면 계절이 지나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무수히 폈다지는 한 때의 꽃이지만 사람은, 참으로 믿는 사람은 죽는 그날까지 날마다 폈다지는 파스카의 꽃같은 삶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쓴 시입니다.

 

-“꽃들은 때되면 폈다 지지만

사람은 

참으로 믿는 사람은

끊임없이 

죽는 그날까지

살아 있는 그날까지

날마다 

새롭게 폈다 지는 파스카의 꽃같은 삶이다”-

 

그래서 어제 정했던 “자아초월의 여정-참나가 되기” 강론 제목을 “파스카의 꽃같은 삶-오늘 지금 여기”로 바꿨습니다. 파스카의 꽃같은 삶의 원조는 우리 파스카의 예수님이십니다. 참으로 온전히 자기를 비운 겸손하신 하느님 중심의 파스카의 예수님입니다. 

 

늘 맑게 흐르는 강같은 삶이 바로 파스카의 삶입니다.

늘 맑은 물 샘솟는 우물이 되어 사는 삶이 바로 파스카의 삶입니다.

늘 주님의 배움터에서, 샘터에서, 쉼터에서 머무는 삶이 바로 파스카의 삶입니다. 바로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의 배움터에, 샘터에, 쉼터에 머물러 주님을 공부하며, 맛보며, 심신을, 영육을 새롭게 충전하는 시간입니다.

 

파스카의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스승이자 주님이신 예수님을 닮아 순수하고 겸손한 철부지들입니다. 세상 지식이나 지혜는 부족했을지 몰라도 삶의 지혜, 천상적 지혜를 지닌 분들입니다. 감격에 벅찬 예수님의 감사기도, 찬양기도는 시공을 초월하여 그대로 당대의 제자들은 물론 파스카의 꽃같은 삶을 살고 있는 우리를 두고 드리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감사기도인지요! 참기쁨은 참행복은 주님의 철부지들이 되어, 겸손과 순수의 사람이 되어 주님의 기쁨에, 행복에 참여하는데 있음을 깨닫습니다. 날로 하느님 중심의 삶에 파스카의 예수님을 닮아갈수록 참기쁨, 참행복의 삶입니다. 참으로 아버지와의 유일무이한 관계를 고백하는 예수님입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 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새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파스카의 예수님과 일치의 은혜가 깊어지면서 아버지를 알게 되는 복된 우리들임을 깨닫습니다. 무지와 허무에 유일한 답은 파스카의 예수님과 일치되어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느님 중심의 파스카의 꽃같은 삶을 살아가는데 있음을 봅니다. 

 

나이들어 노년에 접어들수록 최고의 관심사는 건강일 것입니다. 옛 친구들에게서 오는 메시지도 온통 건강에 관한 것들입니다. 매력자본을 갖춘 멋쟁이 노년을 위한 다섯가지 지침이란 메시지입니다.

 

1.얼굴에서 웃는 모습이 떠나지 않아야 한다.

2.항상 마음에 여유를 가져라.

3.품격을 지켜라.

4.자신의 마음 마당을 항상 사랑으로 가득 채우라.

5.오늘 하루를 만끽하며 살아라.

 

놀라운 사실은 하느님이 쏙 빠졌다는 것이며 순전히 자기 중심적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온 마음으로 섬길 때 위의 것들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인데 이런 하느님을 까맣게 잊고 있는 무지의 사람들입니다. 

 

정말 영육靈肉의 식食이자 약藥은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인 기쁨, 평화, 감사, 희망입니다. 이런 주님의 선물로 영혼이 튼튼하면 참기쁨에, 참행복이요 육신은 저절로 영혼에 순종합니다. 무엇보다 하느님 중심의 삶으로 영혼이 육신에 끌려가지 말고 건강한 영혼이 되어 육신을 이끌어야 할 것입니다. 

 

복음의 ‘하느님 중심’의 예수님과 그리고 철부지 제자들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제1독서 이사야서의 ‘자기 중심’의 오만과 무지와 독선의 아시리아 임금입니다. 자신이 하느님의 도구임을 까맣게 잊고 있는 아시리라 임금입니다. 하느님의 가차없는 심판이 예고됩니다만 이런 심판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기도 합니다.

 

“불행하여라, 내 진노의 막대인 아시리아! 너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 손의 힘으로 이것을 이루었다. 나는 현명한 사람이기에 내 지혜로 이루었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주님께서는 그 비대한 자들에게 질병을 보내어 야위게 하시리라. 마치 불로 태우듯 그 영화를 불꽃으로 태워버리리라.”

 

비대함은 건강과 힘의 표징입니다. 하느님 빠진 건강과 재산의 우상은 얼마나 덧없고 위태한지요!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一紅 權不十年),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아무리 막강한 권력이라 해도 10년을 넘기지 못합니다. 예전 듣던 노래도 생각납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

얼씨구 절씨구 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아마도 자기 중심의 아시리아 임금이 이랬을 것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믿는 이라면 첫절은 “섬기세, 섬기세, 젊어서 주님을 섬기세, 늙어지면 못 섬기나니” 이렇게 바꿔 노래할 것입니다. 예전 피정지도때 자주 드린 말씀도 생각납니다. 노년은 물론 인간 품위 유지를 위한 3대 조건, “1.하느님 믿음, 2. 건강, 3.돈”이며, 절대로 이 우선순위가 바뀌어선 안된다고 강조합니다. 

 

살만한 세상입니다. 대부분의 불행은 스스로 자초한 것입니다. 참으로 자기 중심이 아닌 예수님을 닮은 하느님의 중심의 파스카의 꽃같은 삶만이 참기쁨, 참행복의 길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겸손과 순수의 철부지 같은 우리 모두를 당신의 신망애信望愛와 지혜의 천상 선물로 가득 채워 주십니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찬미받으소서. 아버지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 우리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마태11,2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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