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계신 ‘참보물’인 주님 -발견의 기쁨, 발견의 은총, 발견의 행복-2022.7.27.연중 제17주간 수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l 2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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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7.27.연중 제17주간 수요일                                                  예레15,10.16-21 마태13,44-46

 

 

 

살아 계신 ‘참보물’인 주님

-발견의 기쁨, 발견의 은총, 발견의 행복-

 

 

 

“하느님, 

저는 당신의 힘을 노래하오리다. 

아침이면 당신 자애에 환호하오리다.”(시편59,18ㄱ).

 

옛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참 풍요롭습니다. 오십 년대 육십 년대는 모두가 가난했으나 마음은 참 부자였고 행복했습니다. 공해나 오염이 없는 곳곳의 자연터가 다 놀이터였습니다. 무엇보다 지금은 20-30명으로 줄어든 시골의 모교가 당시는 800명 전체 학생수 였고 동네마다 아이들도 참 많았습니다. 

 

아마 초등학교 시절 잊지 못할 추억 둘은 소풍과 가을 운동회일 것입니다. 봄소풍, 가을소풍시 끝날 때쯤 있었던 보물찾기 행사가 생각납니다. 숨겨진 보물쪽지를 찾았을 때의 기쁨, 그리고 찾지 못해 빈손일 때의 허전함은 누구나의 공통적 느낌일 것입니다. 보물 내용이야 별수 없지만 보물쪽지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 정말 큰 것입니다.

 

바로 발견의 기쁨입니다. 발견의 은총, 발견의 감사, 발견의 행복입니다. 그대로 보물찾기는 인생을 상징한다 싶습니다. 보물찾기 인생이라는 것이지요. 과연 여러분은 보물을, 참보물을 발견했는지요. 여전히 찾고 있는지요. 아니 아예 보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냥 살고 있지는 않은지요. 보물찾기를 포기하지는 않았는지요.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여기 보물과 진주는 모두가 참보물을 상징합니다. 보물이라 다 보물이 아닙니다. 보물인 듯 하나 가짜 보물도 무수합니다. 당장은 기뻐하지만 얼마 못가 시들해지는 세상 보물입니다. 세상 모든 것을 상대화 시켜 시시하게 만드는 참보물입니다. 참으로 참보물을 발견했을 때 세상것들에 집착하지 않고 초연한 이탈의 자유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참보물 앞에서 세상것들은 다 빛을 잃기 때문입니다.

 

오늘 보물의 비유와 진주 상인의 비유, 모두가 하늘 나라의 비유입니다. 하늘 나라를 살 수 있는 비밀을 알려 주는 비유입니다. 참으로 보물을, 진주를 발견했을 때 비로소 하늘 나라의 기쁨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자는 우연한 보물의 발견이요, 후자는 찾았을 때의 진주의 발견입니다. 새삼 발견의 기쁨이자 발견의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우연한 듯 하지만 우연이 아니라 은총입니다. 평소 찾는 마음으로 살았기에 은총으로 발견한 보물이자 진주입니다. 과연 이런 참보물은 찾았는지요. 참으로 이런 참보물을 발견했을 때 비로소 충만한 기쁨, 충만한 행복을 살 수 있습니다. 더 이상 보물을 찾아 나서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오늘 지금 여기가 참보물밭이자 내마음이 참보물이 숨겨져 있는 보물밭입니다. 다음 행복기도중 선물은 보물로 바꿔도 그대로 통합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 나라 천국이옵니다.”

 

원보물, 참보물은 주님이요 하늘 나라입니다. 참으로 주님이란 영원한 보물, 참보물을 발견했을 때 참기쁨, 참감사, 참행복입니다. 이런 참보물의 발견은 은총입니다. 참으로 간절히 항구히 찾았을 때 선사되는 참보물입니다. 참으로 이런 참보물인 주님을 찾았을 때, 만났을 때 참부자요 참행복이요 참자유인입니다.

 

이런 참보물을 찾았기에 수도생활을 참으로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 어리석어, 무지에 눈이 멀어 여기 참보물을 놔두고 밖에서 찾는 사람들입니다. ‘수도자의 성소聖召’라는 얼마전의 고백시가 생각납니다.

 

“참 좋다, 참 사랑스럽고 아름답다

그러나 웬지 답답하다 

연인의 모습들, 부부의 모습들

추호도 부러움은 없다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일 거다

결혼은 아무나 하는게 아닌가 보다

이래서

결혼성소의 참보물인가 보다

수도성소의 참보물인가 보다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2022.7.16.

 

다음 어제 써놓은 ‘배경이 되어’란 고백시도 생각납니다. 참으로 참보물인 주님을 발견했을 때, 늘 참보물인 주님과 함께 살아갈 때 모두를 비운, 겸손하고 초연한 무욕의 배경의 삶이 가능할 것입니다. 침묵은 사랑입니다. 배경은 사랑입니다. 참으로 모두의 깊은 침묵의 배경이 되어 살고 싶은 것이 제 소망所望이기도 합니다. 

 

“불암산 배경의 하늘이 되라고

수도원 배경의 불암산이 되라고

묵묵히 한결같이 

수도공동체의 배경이 되라고

하늘과 산의 배경이 되라고

그리고 낮의 배경인 밤이 되라고

온갖 초목들의 배경인 흙이 되라고

침묵의 배경이 되어 살라고 주님은 말씀하시네”-2022.7.26.

 

참보물 찾기는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찾아 발견해야 하는 살아 계신 참보물인 주님이요 이래야 늘 새하늘 새땅의 삶입니다. 참으로 이런 참보물인 주님을 날마다 새롭게 찾아 발견할 때 비로소 안주安住가 아닌 정주定住의 삶입니다. 늘 거기 그 자리에서 늘 샘솟는 기쁨의 우물로, 늘 맑게 흐르는 기쁨의 강으로 살 수 있습니다. 

 

바로 이의 모범이 예수님을 비롯한 무수한 성인들이요, 오늘 제1독서의 주인공,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입니다. 어제에 이어 극도의 불행을 겪고 있는 서두의 묘사부터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 밤낮으로 그치지 않는다. 아, 불행한 이 몸! 어쩌자고 날 낳으셨나요? 모두 나를 저주합니다.”

 

그러나 즉시 예레미야는 참보물인 주님을 확인하고 환호합니다. 참으로 치열한 내적 갈등중에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 예레미야입니다. 이처럼 현실의 고통이 크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참보물을 발견한 예레미야의 고백입니다.

 

“당신 말씀을 발견하고 그것을 받아 먹었더니, 그 말씀이 제게 기쁨이 되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주 만군의 하느님, 제가 당신의 것이라 불리기 때문입니다.”

 

이런 참보물의 발견에 기뻐하던 예레미야는 돌변하여 신세를 한탄합니다. 얼마나 내적 치열한 갈등중인지 마음에 아프게 와닿습니다.

 

“어찌하여 제 고통은 끝이 없고, 제 상처는 치유를 마다하고 깊어만 갑니까? 당신께서는 저에게 가짜 시냇물처럼, 믿을 수 없는 물처럼 되었습니다.”

 

이런 겉잡을 수 없는 회의의 늪에,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는 예레미야를 살려 내시는 살아 계신 참보물 주님이십니다.

 

“내가 너를 요새의 청동 벽으로 만들어 주리라. 그들이 너를 대적하여 싸움을 걸겠지만. 너를 이겨내지 못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하고 건져 낼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얼마나 가슴 벅찬 살아 있는 참보물 주님인지요! 날마다 이런 참보물을 발견하는 기쁨으로, 맛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바로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영원히 살아 계신 참보물인 주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늘 나라의 기쁨과 행복을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시편103,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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