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중심의 행복한 삶 -사랑과 지혜, 자유와 섬김, 감사와 기쁨-2022.7.31.연중 제18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l 3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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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7.31.연중 제18주일                                          코헬1,2;2,21-23 콜로3,1-5.9-11 루카12,13-21

 

 

하느님 중심의 행복한 삶

-사랑과 지혜, 자유와 섬김, 감사와 기쁨-

 

 

“주님, 저희 날수를 헤아리도록 가르치소서. 

 저희 마음이 슬기를 얻으리이다.

 돌아오소서, 주님, 당신 종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시편90,12-13)

 

제 좋아하는 일이 자랑입니다. 하느님 자랑, 예수님 자랑, 성인 자랑, 형제 자랑, 시편 자랑입니다. 그래서 맨처음 화답송 시편을 인용했습니다. 몇가지 단상들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우선 프란치스코 교황님 자랑부터 시작합니다. 87세 고령이지만 정신은, 마음은 하느님을 닮아 영원한 청춘입니다. 지난 7.24일부터 어제 7.30일까지는 캐나다에서 참회의 순례여정을 가지셨습니다. 재임중 제37차 해외 사목방문여정중 56번째 나라가 바로 카나다입니다. 

 

교황님은 로마의 산타 마르타 집에서 살고 계신데 직원들이 말하는 교황님의 모습을 잠시 나누고 싶습니다. 이제부터 본격적 교황님 자랑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요? 우리 중 한 사람이죠! 이 말은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합창처럼 들리는 말입니다. 믿지 못할 거예요. 제가 진심으로 갖게된 그분에 관한 두 가지 생각이 있는데요. 하나는 매일 일하면서 그분을 20cn, 가까운 거리에서 뵐 수 있다는 기쁨이지요. 두 번째는, 우린 매일 이야기해요. 그분의 겸손에 대해서요. 어느날 손님의 예방을 받고 문으로 들어오는데 손님들이 다 들어온 다음 맨 나중에 들어오시더군요. 또 청소하고 있는 우리에게 다가와서 늘 인사를 건네시죠. 아 이제 적응될 만도 한데 제 경우는 매번 첫 감동처럼 여겨지네요.”(다림질방 파트리치아)

 

“저의 가장 큰 선물은 기쁨이에요. 산타 마르타의 집에 가득 퍼지는 그 밝고 활기찬 기운은 그분에게서 나오는 거예요. 만약 기쁨이라는 표현을 언어로 한다면 한계가 있을 거예요. ‘평온’(serenita). 네 맞을 거예요. 그분에게서 나오는 ‘평화(pace)로운’ 기운요. 요즘 개인적으로 몇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용기를 내어 돈 알프레드에게 조심스레 교황님의 축복을 구했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제 이야기를 듣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제게 오시는 게 아닙니까? 제 두손을 꼭 잡고 강복을 주셨어요. 그 순간 즉각적이고 절대적인 사랑 표현의 명백함을 강렬하게 느꼈죠.”(세탁 담당 삐나)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위한 요리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일 거예요. 그분은 제철 식재료로 조리된 간단하고 단순한 요리를 좋아하시죠. 접시에 올린 그 어떤 요리도 거부하지 않으십니다.”(요리사 가브리엘라)

 

곁에서 늘 지켜본 평범한 분들의 진솔한 고백입니다. 교황님의 일거수 일투족 삶자체가 감동과 기쁨을 선사하는 것같습니다. 자랑하기로 하면 예수님처럼, 하느님처럼 끝이 없어 보입니다. 어제 유명 정치인의 인터뷰 기사중 다음 말마디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대통령 영부인이 사생활이 어디 있습니까? 사생활이 어디 있습니까? 있어선 안됩니다.”

 

그러고 보니 교황님은 전혀 사생활이 없는 모두가 개방된, 자기를 텅 비운 참으로 투명한 삶임을 깨닫습니다. 겸손으로 텅 빈 자리에 가득한 사랑, 텅빈 사랑의 충만인 것입니다. 이래서 ‘신독’(愼獨) 이란 말마디입니다. 혼자 있을 때에도 도리道理에 어긋남이 없도록 언행을 삼가라는 것입니다.

 

요즘 찌는듯한 불볕더위가 계속되지만 가끔씩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다 어제 오후에는 선물처럼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갑작스런 소리에 무슨 소린가 물어봤더니 빗소리라 했습니다. 순간 “참 멋진 하느님이시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바람이 없는 답답한 곳이 지옥이랍니다. 바람은 희망에 대한 순수한 우리말입니다. 무더위에 때때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같고 가뭄에 단비같은 하느님을 닮은 성인들이요 우리 교황 프란치스코입니다.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삶이 오늘 말씀에 대한 답이 됩니다. 누구나 바라는 참 행복한 삶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행복한 삶을 이뤄주는 사랑과 지혜, 자유와 섬김, 감사와 기쁨의 전형적 모범을 보여주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입니다. 오늘 셋의 독서중 강렬하게 마음에 와 닿은 세 부분입니다.

 

첫째, 허무에 대한 답은 사랑뿐입니다.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그렇다,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그 모든 노고勞苦와 노심勞心으로, 인간에게 남는 것이 무엇인가? 그의 나날은 근심이요 그의 일은 걱정이며, 밤에도 그의 마음은 쉴 줄을 모르니, 이 또한 허무로다.”

 

오늘 제1독서 코헬렛처럼 허무로 시작하여 허무로 끝나는 인생도 많을 것입니다. 사실 정도의 차이일뿐 허무감. 허무의식은 누구나의 보편적 실존적 체험입니다. 영혼의 병과도 같은 허무감입니다. 바로 사랑과 생명의 하느님을 찾으라는 신호입니다.

 

삶의 목표, 삶의 방향, 삶의 중심, 삶의 의미인 사랑의 하느님을 잊었을 때, 허무의 늪, 허무의 어둠에 빠집니다. 새삼 허무에 대한 답은 회개와 더불어 사랑뿐임을, 하느님의 사랑뿐임을 깨닫습니다. 사랑의 빛이 사라졌을 때 어김없이 찾아드는 허무의 어둠입니다. 

 

둘째, 무지의 탐욕에 대한 답은 지혜뿐입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탐욕에 눈먼 오늘 복음의 어리석은 부자 또한 우리 인간의 보편적 모습입니다. 탐욕의 무지가 얼마나 뿌리 깊은 영혼의 병인지 깨닫습니다. 여기에서 자유로울자 몇이나 되겠는지요. 무조건적 욕심의 거부가 아니라 지나친 욕심, 잘못된 욕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잘 살고 싶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싶은 청정욕은 얼마든지 좋습니다. 

 

보십시오. 오늘 복음의 어리석은 부자는 탐욕에 눈이 멀어 사방이 완전히 닫힌, 모든 관계가 단절된, 흡사 자기 감옥에 갇힌 수인囚人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탐욕의 무지로 인해 위로 하느님과의 단절이요 옆으로는 이웃과의 단절이요 안의 참나와의 단절입니다. 바로 이런 모든 관계가 차단된 스스로 자초한 고립단절이 지옥입니다. 복음의 어리석은 부자에겐 소통의 하느님도 공동체도 없습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아야 하는데 온통 땅에다 보물을 쌓았습니다.

 

이런 탐욕의 무지에 대한 궁극의 답은 회개와 더불어 하느님의 지혜뿐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 지혜의 빛에 저절로 사라지는 무지의 어둠입니다. 탐욕의 치유에 최고의 처방약은 회개와 더불어 하느님의 지혜뿐임을 깨닫습니다.

 

셋째, 그리스도가 궁극의 답입니다. 허무와 무지의 탐욕에 대한 답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지혜뿐입니다. 부단히 그리스도 예수님의 자유와 섬김, 감사와 기쁨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날로 닮아가는 길이 허무와 무지의 치유를 위한 유일한 처방입니다. 바로 제2독서 콜로새서의 말씀이 구구절절 감동이요 공감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와의 일치가 날로 깊어지면서 충만한 생명, 충만한 행복, 참나의 실현임을 깨닫습니다. 땅에 몸담고 있지만 마음은 하늘에 있으니 참 초연하고 홀가분한 자유인의 삶이 바로 참된 그리스도인입니다. 땅이나 소유의 거부가 아닌, 이들의 종이 아닌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이상주의적 현실주의자들이 참된 그리스도인입니다. 참으로 이런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날로 깊어질 때 현세적인 것들, 곧 불륜, 더러움, 욕정, 나쁜 욕망, 탐욕, 우상숭배는 저절로 사라질 것입니다.

 

궁극의 답, 궁극의 과제는 새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갈 때  날로 새로워지는 새 인간입니다. 이번 서울 대교구 시노달리타스 종합 문서중 마음에 와닿은 “새롭게” 라는 말마디입니다. 친교를 새롭게, 참여를 새롭게, 사명을 새롭게, 관계를 새롭게,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늘 새로운 시작이 있을 뿐입니다.

 

허무에 대한 답은 사랑뿐이며 무지의 탐욕에 대한 답은 지혜뿐입니다. 바로 회개와 더불어 그리스도의 사랑, 그리스도의 지혜입니다. 회개와 더불어 그리스도와 일치가 깊어질수록 사랑과 지혜, 자유와 섬김, 감사와 기쁨의 삶입니다. 바로 새 인간이된 우리의 삶입니다. 다음 바오로 사도를 통한 주님의 말씀이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우리는 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 버리고, 새 인간을 입은 사람입니다. 새 인간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여기엔 모두가 아무런 차별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날로 그리스도 예수님을 닮아 참지식의 새 인간이 되어가는 우리들입니다. 시편 화답송 기도로 강론을 마칩니다.

 

“주님, 

아침에 당신 자애로 저희를 채워 주소서.

저희는 날마다 기뻐하리이다.

주 하느님의 어지심을 저희 위에 내리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시편90,14.1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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