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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8.12.연중 제19주간 금요일                                                        에제16,1-15.60.63 마태19,3-12

 

 

 

하느님 중심의 공동체 삶

-혼인, 이혼, 독신-

 

 

“보라, 하느님은 나의 구원,

신뢰하기에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주님은 나의 힘, 나의 굳셈.

나에게 구원이 되어 주셨다.”(이사12,2).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시험하려는 바리사이들의 질문은 불순했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답변을 통해 새삼 혼인의 기원을 깨닫게 됩니다. 우연한 혼인이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안에 혼인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의 질문 의도는 비겁했지만 예수님은 당당하게 창세기에 근거하여 정공법으로 답변하십니다. 일부를 인용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다.”

 

결론하여 하느님이 맺어주신 한몸이 된 부부관계이기에 이혼불가라는 것입니다. 불륜의 경우는 이혼을 허용한다 하더라도 부득이한 조치이지 하느님의 뜻은 살기를 바랄 것입니다. 참 쉽지 않은, 답이 없는 부부공동체 삶입니다. 

 

이혼후 홀로 사는 분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심지어 졸혼이라는 말마디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결손 가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은 얼마나 많으며 함께 살아도 남남으로 무관하게 살아가는 이들도 참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잘 살고 못 살고를 떠나 혼자든, 함께든 평생 끝까지 “믿음으로” 살았다는 자체로 구원이라고, 성인聖人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혹자는 부부생활을 살아있는 순교의 삶이라 지칭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칼릴 지브란의 “결혼에 대하여”라는 잠언성의 시는 언제 읽어도 감동입니다.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배려와 존중이 얼마나 결혼 생활에 중요한지 깨닫게 됩니다.

 

“그대들은 함께 태어났으니 

영원히 함께 하리라.

죽음의 흰 날개가 그대들의 삶을 흩어 놓을 때에도

그대들은 함께 하리라.

그리고 신의 고요한 기억속에서도 영원히 함께 하리라.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리하여 하늘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그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그대들 영혼의 나라 속에서

출렁이는 바다가 되게 하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잔만으로

마시지 말라.

서로의 음식을 주되 한쪽의 음식에 치우치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때로는 홀로 있기도 하라.

비록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서로의 마음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마음속에 묶어두지는 말라.

오직 생명의 손길만이 그대들의 마음을 간직할 수 있으니

 

함께 서 있어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 있는 것처럼

참나무와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으니”-

 

비단 부부생활은 물론이고 공동생활의 원리도 보여줍니다. 하느님을 삶의 중심으로 하여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정성을 다해 각자의 책임을 다하는 길만이 성공적인 공동생활로 이끌 것입니다. 그대로 오늘 제1독서 에제키엘서의 하느님을 본받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역사를 부정한 아내의 역사로 견줘 설명하는 에제키엘 예언자입니다.

 

“사람의 아들아, 예루살렘에게 자기가 저지른 역겨운 짓들을 알려주어라.--- 나는 너에게 맹세하고 너와 계약을 맺었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그리하여 너는 나의 사람이 되었다. 내가 너에게 베푼 영화로 네 아름다움이 완전하였던 것이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그런데 너는 네 아름다움을 믿고, 네 명성에 힘입어 불륜을 저질렀다. 그러나 나는 네가 어린 시절에 너와 맺은 내 계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계약을 세우겠다.”

 

그대로 일방적인, 무한한 인내의 하느님 사랑을 배우는 것이요, 깨닫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에 항구할 때 이런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인내를 닮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부부생활이나 공동생활에서의 일치는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과의 관계를, 서로간의 관계를 깊이할 때 가능함을 깨닫습니다. 물론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한 하느님과의 관계요 일치입니다.

 

“아내에 대한 남편의 처지가 그러하다면 혼인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는 제자들의 물음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모든 사람이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없다. 허락된 이들만 받아들일 수 있다. 사실 모태에서부터 고자로 태어난 이들도 있고, 사람들 손에 고자된 이들도 있고, 하늘 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된 이들도 있다. 받아 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여라.”

 

여러 유형의 독신을 말합니다. 세상에는 어떤 까닭으로든 혼자 사는 독신이 참 많습니다. 하늘 나라를 위한 동정자나 수도자의 독신이든, 애당초 혼인하지 않은 독신이나 이혼으로 헤어져 혼자 사는 독신이든 참 혼자 사는 이들이 많은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날로 늘어나는 1인 가구 추세입니다. 모두 각자 하느님과 그만이 아는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독신으로 혼자 살든, 함께 살든 목표는 사람답게, 참 사람답게, 하느님의 자녀답게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니 하느님 중심의 공동체 삶에 속하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그 넓은 품이 되어야 할 것이고 독신의 믿는 이들은 교회공동체의 품을 찾아 그에 속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공동체 삶의 중심인 주님을 영원한 도반으로 삼고 서로는 주님의 전사로, 주님의 학인으로, 주님의 형제로 사는 것입니다. 제 좌우명 기도시 “하루하루살았습니다” 여섯째 연은 홀로 살든 함께 살든 믿는 이들 모두에 해당됩니다. 여기 주님의 집은 믿는 이들 모두를 망라한 교회 공동체로 봐도 무방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주님의 집인 수도원에서

주님의 전사로, 주님의 학인으로, 주님의 형제로 살았습니다.

끊임없이 이기적인 나와 싸우는 주님의 전사로,

끊임없이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는 주님의 학인으로,

끊임없이 수도가정에서 주님의 형제로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받으소서.”

 

하느님께서는 모두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주님을 중심으로 주님의 전사로, 주님의 학인으로, 주님의 형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는 이들 모두에 해당되는 삼중三重 신원입니다. 그러니 서로 전우애를, 학우애를, 형제애를 북돋우며 교회가정공동체의 넓은 품 안에서 서로 연대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만나는 누구든 주님 안에서 형제자매로 친절하고 따뜻이 맞이하는 것입니다. 이래야 비로소 외로움에서 벗어나 건강한 정신으로 살 수 있습니다. 저희 요셉 수도원은 보이는 수도공동체를 넘어 참 많은 이들의 주님 가정의 품이 되고 있습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전우애, 학우애, 형제애를 북돋아 주십니다. 

 

“너희는 기뻐하며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이사12,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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