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삶의 여정 -만남, 회개, 발견, 추종-2022.9.1.연중 제22주간 목요일(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by 프란치스코 posted Sep 01, 202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22.9.1.연중 제22주간 목요일(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1코린3,18-23 루카5,1-11

 

 

참 삶의 여정

-만남, 회개, 발견, 추종-

 

 

“주님,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 위해 

간직하신 그 선하심, 얼마나 크시옵니까!”(시편31,20)

 

오늘은 순교자 성월 9월의 첫날이자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입니다. 참 오늘의 느낌이 각별합니다. 자연보호가 얼마나 절체절명의 현 인류의 선결적 과제인지 통감하는 오늘입니다. 기후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전 인류 공동체의 생태적 회개가 얼마나 절박한지 절감하는 요즈음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지난 2015년 8월10일 제정한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은 올해로 여덟 번째입니다. 벌써 “찬미받으소서” 회칙이 발표된지 만 7년이 됩니다. 21세기 혜성같이 등장한 현대판 예언자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선구자적 역할은 정말 눈부십니다. 교황님에 관한 문헌 13권 전부를 수도형제가 구입해줘서 읽기 시작했는데 어제는 주로 공동의 집인 지구에 관한 책 3권을 정독하기 시작했습니다. 책 뒷면의 소개글이 아름다워 소개합니다.

 

1.“저의 주님, 찬미받으소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이 아름다운 찬가에서 우리의 공동의 집이 우리와 함께 삶을 나누는 누이며 두 팔 벌려 우리를 품어 주는 아름다운 어머니와 같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찬미받으소서’ 책의 소개글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요, 저 역시 프란치스코 수도명입니다. 애초부터 매료된 성인으로 세례명에 이어 수도명도 똑같습니다. 원장수사도 프란치스코 세례명에, 아브라함 수사의 세례명 역시 프란치스코 똑같아 웬지 친족감親族感을 느낍니다.

 

2.“오, 자비의 하느님, 저희를 용서하시어 저희가 우리 공동의 집에 당신 자비를 온전히 전하게 하소서. 찬미받으소서. 아멘”-‘우리의 어머니인 지구’ 책의 소개글입니다.

 

3.“사랑하는 꽃과 강물, 아마존을 가로지르는 큰 강 아마존 숲속에서 약동하는 모든 생명, 이 모든 것이 지닌 아름다움 안에서 모든 피조물의 어머니로 나타나시어 이 찬란한 아름다움을 사랑으로 보호하소서.”-‘사랑하는 아마존’ 책의 소개글입니다.

 

그리고 오늘 8회째 맞이하는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문입니다. 정말 모두를 담고 있는 구구절절 공감이 가는 명문名文의 앞부분만 소개합니다. 

 

4.“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피조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는 올해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이 주제이자 초대입니다. 교회 일치적 기념의 시기는 9월1일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로 시작하여 10월4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에 끝납니다. 이 시기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우리 공동의 집을 돌보고자 함께 기도하고 생태적 회개를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는 특별한 때입니다.”-교황 성하의 담화문.

 

모두가 공동의 집인 지구를 돌보라는 절박한 호소의 책들에 담화문입니다. 아, 이제 사랑의 2중 계명은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 지구의 자연 사랑’의 3중 계명으로 바뀌어야 할 절체 절명의 시기같습니다. 제 렉시오 디비나의 지론도 생각납니다. 성독의 대상은 ‘신구약 성서’에 이어 ‘자연성서’, 그리고 우리 ‘삶의 성서’에 까지 확장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요셉 수도원의 축복은 봄-여름-가을-겨울, 일년 사계절과의 살아 있는 ‘자연성서’와의 만남일 것입니다. 어제 수도원 자비의 집 숙소 앞뜰에 샛노랗게 피어난 달맞이꽃을 보며, 쓴 “하루하루가 축제다”라는 고백시를 나눕니다. 자연성서를 렉시오 디비나한 결과의 산물이겠습니다.

 

“자리탓하지 않는다,

환경탓하지 않는다, 

여기가 꽃자리, 천국이다.

 

어둔 아침 환히 밝히며

날마다

축제로 시작되는 하루

 

청초한 사랑

샛노란

달맞이꽃들 별무리같다

 

비오는 날도

여전히

아침마다 감동을 선사하는구나

 

절망은 없다

하루하루가 축제다.

희망과 사랑, 찬미와 감사, 평화와 기쁨의 축제다.”

 

만남중의 만남이 우리 사랑하는 파스카의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우리는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기 위해 이 거룩한 주님의 미사축제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비단 성서聖書와 성사聖事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자연성서를 통해서도 이처럼 주님을 만납니다. 주님을 만났기에 “하루하루가 축제다”라는 시도 탄생된 것입니다.

 

우리 삶의 여정은 만남, 회개, 발견, 추종의 여정입니다. 오늘 강론 제목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주님과의 만남에 회개요, 참나의 발견이요, 평생 주님을 따르는 추종의 여정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만날 때 비로소 무지와 허무, 무의미의 영적 어둠에서 탈출합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제자들이 불림 받기 전이 그러합니다. 오늘 복음의 주도권은 주님께 있습니다. 주님은 은총처럼 제자들에게 다가오셨고 시몬과의 대화가 시작됩니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주님이 없는 캄캄한 무지와 허무, 무의미의 밤같은 삶을 살아온 시몬의 고백처럼 들립니다. 주일 미사후 낮기도 대신 바치는 시편 126장 앞부분의 고백을 연상케 합니다.

 

“주께서 집을 아니 지어 주시면, 그 짓는 자들 수고가 헛되리로다.

주께서 도성을 아니 지켜 주시면, 그 지키는 자들 파수가 헛되리로다.

이른 새벽 일어나 늦게 자리에 드는 것도, 

수고의 빵을 먹는 것도 너희에게 헛되리니,

주님은 사랑하시는 자에게, 그 잘 때에도 은혜를 베푸심이로다.”

 

잘 때에도 주님의 은혜를 충분히 받았기에 새벽 일찍 일어나 쓰는 강론입니다. 이어지는 시몬의 주님과의 참만남이 극적입니다. 주님과의 만남으로 회개와 동시에 자기를 발견한 시몬입니다. 주님과 만남의 여정은 결국 참 자기와의 만남의 여정과 일치함을 깨닫습니다. 살아계신 주님은 참나를 비춰주는 거울과 같습니다. ‘스승님’ 호칭에서 ‘주님’으로 바뀝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흡사 주님 앞에서 고백성사를 보는 시몬같습니다. 주님의 거울에 환히 드러나는 죄 많은 자신의 얼굴을, 참자기를 발견한 시몬이요 이어 이뤄질 정화와 성화의 은총입니다.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주님을 만남으로 죄인으로서의 참나의 얼굴을 발견하고 이어 정화와 성화로 이어져 주님을 닮은 참나의 모습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주님과의 만남과 회개, 참나의 발견에 이어 주님을 따르는 추종입니다. 평생 계속되어야 할, 만남-회개-발견-추종의 여정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시몬에게 주신 말씀에 이어, 시몬의 일행은 배를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어 예수님을 따르는 추종의 여정에 오릅니다. 얼마나 감격적인 획기적 전환점의 구원 사건인지요!-

 

부질없는 질문이지만 이들이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우리가 주님께 불림받아 요셉수도원에 오지 않았다면, 또 미사에 참석하신 분들 역시 주님께 불림 받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유다인 랍비, 신비가 여호슈아 헷쉘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우리는 주님께 불림 받았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가 아니라, 주님께 불림 받음으로 존재감 충만한 참나를 살게되었다는 고백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만나 대각大覺함으로 참 자기를 발견했기에 바오로 사도의 감동적인 고백입니다. 저는 여기에 지구와 자연을 넣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인간을 두고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바오로도, 아폴로도, 케파도, 세상도, 지구도, 자연도, 생명도, 현재도 미래도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우리의 것인 지구요 자연인듯 하나, 그리스도의 것이요 하느님의 것이기에 지구도, 자연도 형제로 여겨 존경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삼 사랑의 이중 계명에서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 지구의 자연 사랑”의 사랑의 삼중 계명 시대에 돌입했음을 깨닫는, 구체적 생태적 회개의 실천이 급박한 절체절명의 절박한 작금의 시대입니다. 

 

주님은 미사은총으로 당신을 닮아 새로워진 우리 모두를 지구와 자연의 ‘보호자’와 ‘지킴이’로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오늘 화답송 시편 후렴도 자연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새롭게 합니다.

 

“주님의 것이라네, 온 땅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 온 누리와 그 안에 사는 자들. 그분이 물 위에 세우시고, 강 위에 굳히셨네.”(시편24,1-2). 아멘.

 

 

 

 

 

 

 

 

 

 


Articles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