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의 여정 -섬김의 모범이신 그리스도 예수님-2022.9.3.토요일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540-604) 축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Sep 0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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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9.3.토요일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540-604) 축일

2코린4,1-2.5-7 루카14,25-33

 

 

섬김의 여정

-섬김의 모범이신 그리스도 예수님-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한평생 은총과 복이 이 몸을 따르오니,

오래오래 주님의 집에서 사오리다.”(시편23;1.6)

 

어제 오전 내내 수녀님들의 고백성사를 드렸습니다. 이 역할 또한 섬김의 직무중 하나이겠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삶은 단 하나, ‘섬김’으로 요약됩니다. ‘봉사’란 한자보다 ‘섬김’이란 순수한 우리말이 훨씬 좋고 마음에 와 닿습니다. 원장 수녀님에게 고백성사를 드리며 감동했습니다. 그 섬김의 직무가 시작도 끝도 없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절감했습니다. 고백성사후 사죄경과 더불어 격려성 조언이 생각납니다.

 

“아, 순교자 성월 9월은 수녀님의 달입니다. 수녀님은 살아 있는 순교자의 삶입니다. 공동체에서 그리스도 예수님께 가장 가까이 있는 분입니다. 참으로 섬김의 여정, 섬김의 직무를 통해 날로 주님과 가까워질 것이며 날로 주님을 닮아가기 때문입니다. 

섬김의 중심 자리에 섬김의 모범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섬김의 사랑, 섬김의 겸손, 섬김의 직무, 섬김의 권위, 섬김의 여정, 섬김의 책임등 끝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영성이 있다면 단하나 파스카의 영성, 종servant과 섬김service의 영성이 있을 뿐이요, 우리 모두 섬김의 직무를 맡은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을 뿐입니다.”

 

요지의 말씀을 드렸는데 후에 만나 뵐 때, 환하고 밝은 모습에, ‘아, 수녀님은 원장이란 섬김의 직무를 기쁘게 수행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십대 초반, 삼십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한 수도원 초창기, 분원장 소임에 주방장 소임, 손님 담당에 전화 소임등 1인 몇역으로 전천후 다목적용으로 뛸 때 있었던 일입니다. 

 

이때는 자동응답기도 없어, 한밤중 자다 깨어나 피정신청 전화를 받았을 때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았다가 격렬한 항의를 받고 즉시 사과한 후 깨달은 바로 다음의 진리입니다.

 

“아, 나는 섬김의 직무인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구나! 교회는 수도원은 서비스업종이구나! 훌륭한 서비스업에 종사하려면 세 요소를 갖춰야 되겠다, 첫째 사람이 좋아 친절해야 하고, 둘째 실력이 좋아 유눙해야 하고, 셋째 내외적 환경이 좋아 쾌적快適해야 하겠구나. 서비스업인 음식점이나 병원, 학교를 보면 금방 들어나는 구나. 수도원의 우리 수사님들은 모두 섬김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셈이구나.”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섬김의 직무입니다. 성덕의 잣대는 섬김의 겸손, 섬김의 사랑, 섬김의 환대일 것입니다. 섬김의 직무에 온힘을 다하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보십시오. 온통 섬김의 삶으로 사생활이 없을 정도로 투명하게 비워졌습니다. 그대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을, 제1독서의 바오로 사도를 닮았습니다. 

 

어제 가톨릭 신문 1면에는 추기경에 서임된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 서임식에 대한 기사와 사진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교황은 서임식에서 유추기경에게 바레타를 씌워 주며 “우리 함께 나아가자”고 말했고, 유추기경은 “교회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돼 있다”고 화답했습니다. 유추기경은 미사 강론에서 “지난 5월29일 추기경에 임명됐을 때 순교자의 삶을 본받겠다고 다짐했다”며 “잘 죽는 삶을 살겠다”고 각오를 피력했습니다.

 

주님의 착한 목자로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섬기듯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는 일에 분골쇄신粉骨碎身,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군림하거나 지배하려는 생각을 말끔히 치워버리고 당신을 닮아 섬김의 직무에 충실하라는 우리 모두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실 우리의 소임등 모든 일은 “섬김의 일” 하나로 요약됩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처럼 되어야 하고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에 있다.”

 

섬김의 중심에서 만나는 살아 있는 그리스도 예수님이라는 확언입니다. 참으로 섬김의 여정에, 섬김의 직무에 항구하고 충실할수록 날로 주님과 가까워지며 주님을 닮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의 전형적 모범, 섬김의 사도가 바로 오늘 제1독서의 바오로입니다. 

 

“우리가 선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하고, 우리 자신은 예수님을 위한 여러분의 종으로 선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비추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빛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질그릇같은 우리 안에 선사된 하느님 영광의 빛이 섬김의 활동에 마르지 않는 원천이 됨을 깨닫습니다. 평주간 오늘 제1독서중 섬김의 사도, 바오로의 다음 말씀도 감동입니다.

 

“지금 이 시간까지도, 우리는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맞고 집없이 떠돌아다니고 우리 손으로 애써 일합니다. 사람들이 욕을 하면 축복해주고, 박해를 하면 견디어 내고, 중상을 하면 좋은 말로 응답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쓰레기처럼, 만민의 찌꺼기처럼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1코린4,11-13)

 

우리를 한없이 부끄럽게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사부, 성 베네딕도 역시 당신의 수도공동체를 주님을 섬기는 학원으로 정의합니다. 다음 유명한 성구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학원을 설립해야 하겠다. 우리는 이것을 설립하는데 거칠고 힘든 것은 것은 아무것도 제정하기를 결코 원치 않는다.”(성규, 머라45-46)

 

그러니 우리 믿는 이들은 모두 예외없이 평생 졸업이 없는 죽어야 졸업인, 주님을 섬기는 학원에 재학중이 평생학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도와 사랑의 여정에서처럼 우리 역시 섬김의 여정에서 영원한 초보자임을 깨닫습니다. 

 

예전 김수환 추기경님이 산행중 산사山寺에 들렸을 때 젊은 스님이, “추기경님은 고등학생같다”는 말에 “아니다. 나는 재수생이다”라 대답한 유머가 생각납니다. 주님을 섬기는 “섬김의 학교”에서 졸업이 없는 영원한 재수생인 우리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섬김의 베테랑을 소개합니다. 바로 성 예로니모, 성 아우구스티노, 성 암브로시오와 더불어 서방의 4대 교부에 속하는 오늘 축일을 지내는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입니다. “대(大)”자가 붙는 교황은 대 레오 교황과 둘뿐입니다. 생전에 동시대의 베네딕도 성인은 비록 못만났지만, 성인을 참으로 흠모하여 그 유명한 베네딕도 전기를 쓰신 분으로 누구보다 베네딕도 성인의 영성에 정통했던 교황님입니다.

 

어제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님에 관한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나무위키를 출력하니 장장 13쪽이었습니다. 1.생애초기, 2.수도생활, 3.교황사절, 4.교황시절, 5.선교, 6.전례개혁과 방대한 저술, 7.자선등 항목을 통해 파란만장한 삶에 그 위대한 업적이 정말 불가사의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그대로 중세기초 로마는 물론 유럽을 구한 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쩌면 이처럼 다방면에 천재일 수 있는지, 64년 한 생애에 보통 사람의 몇백배는 사신 분이요, 천재라는 말도 적합하지 않을 정도로 정말 불가사의한 인물입니다. 

 

교황님의 전 삶을 요약한다면 섬김에 전력투구했던 삶입니다. 성인의 그리스도 예수님께 대한 사랑, 교회에 대한 사랑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입니다. 교황에 대한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란 정의도 그레고리오 교황으로부터 유래합니다. 얼마나 신도들의 사랑을 받았는지 대중의 강력한 지지로 사후 즉시 성인으로 시성됩니다. 교황님의 어머니 역시 성녀로 “실비아”입니다. 교황은 604년 선종전 약5년간은 크나큰 병고를 겪습니다. 교황님의 일기에 나오는 고백입니다.

 

599년에는 “열한 달 동안 나는 거의 침대를 떠날 수 없게 되었다. 통풍과 고통스러운 근심들로 너무 괴로운 나머지, 매일 죽음의 안식을 기다린다.”고 적었으며, 600년에는 “근 2년 동안 나는 침상 위에 매여 있었다. 통증이 너무 괴로워서 축일에조차 세시간 동안 일어나 미사를 봉헌하기 버겁다. 나는 매일 죽음의 문턱에 서고, 매일 그 앞에서 내쳐진다. 

 

그리고 601년에는 ”오랫동안 침상을 떠나지 못했다. 나는 애타게 죽음을 기다린다.“ 교황님이 선종한 해는 604년이니 임종전 말년의 병고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대로 섬김의 직무에 전력투구했던 순교적 삶의 결과요, 참으로 휴식 이 없는 죽어야 휴식에 늘 고통이 따랐던 성인들의 생애임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고통의 와중에도 마음 깊이에는 찬미와 감사, 평화와 기쁨, 희망과 사랑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봅니다.

 

주님은 매일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각자 주어진 섬김의 직무에 충실하고 항구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아름다운 입당송이 대 그레고리오 교황의 관상가이자 신비가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 줍니다. 섬김의 원천은 바로 주님과의 관상적 일치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복된 그레고리오는 베드로 좌에 올라, 언제나 주님의 얼굴을 찾고, 주님 사랑의 신비를 기리며 살았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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