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9.9.연중 제23주간 금요일 1코린9,16-19. 22ㄴ-27 루카6,39-42
주님의 전사
-영적 훈련, 영적 전쟁-
“만군의 주님, 당신 계신 곳 사랑하나이다!
행복하옵니다, 당신 집에 사는 우리들!
우리는 영원토록 당신을 찬양하리이다.
행복하옵니다, 마음속으로 순례의 길 떠날 때,
당신께 힘을 얻는 우리들!”(시편84;2,5-6)
9월1일부터 10월4일까지는 교회에서 정한 창조시기로 매일 끝기도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를 바칩니다. 창조시기와 맞물려 하느님의 피조물인 까치와 까마귀의 배피해가 심각합니다. 공동식사시간 배밭 농장 수사님과 나눈 대화입니다.
“배밭 까마귀, 까치 피해가 어느 정도입니까? 10% 정도 됩니까? 10%정도면 1/10, 하느님의 피조물들의 피해이니 십일조 정도로 알고 하느님께 봉헌한다고 생각해야 될 것 같네요. 피조물과 더불어 살라는 것 같습니다. 창조시기,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문을 바치기에 참 묘하게 됐습니다.”
“10%가 아니라 30%쯤 아니, 더 늘어날 것 같습니다. 맛있는 황금배들은 얼마 남지 않고 거의 다 쪼아 먹었습니다. 수사님, 까마귀, 까치들에게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강론좀 해 주세요.”
대화를 나누며 웃었습니다. 배피해가 참 심각한데도 배농장 수사님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 듯 태평스러웠고, 나머지 수사님들 역시 크게 걱정하지 않는 듯했습니다. 이 또한 끊임없는 공동전례기도를 통한 믿음의 훈련 덕분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 덕분에 그리 크게 동요되지 않는 것이지요.
사랑뿐 아니라, 희망도 믿음도 영적훈련에 속합니다. 제가 의도적으로 문자 메시지로 편지를 나눌 때도 가능한 마음을 담아, 이름 앞에 ‘사랑하는’이란 말마디를 붙이고 시작하는 것도, 일종의 사랑의 훈련입니다. 이렇게 용기있게 ‘사랑하는’ 말마디를 쓰다보면 상대방은 물론 제 마음도 알게 모르게 정화되고 성화되어 사랑의 사람이 되리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수사님들이 일상생활에서 한결같이 살아가는 것도 믿음의 훈련이 잘 된 덕분입니다.
삶은 영적훈련이요 영적전쟁입니다. 영적훈련이자 동시에 영적전쟁입니다. 수도자들은 물론이고 참으로 믿는 이들이라면 모두가 이에 해당됩니다. 제대가 없는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들인 우리들입니다. 이것은 제가 수도생활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참 많이 강조해온 주제이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하여 제가 내심 자주 소망을 표현하곤 합니다.
“나는 주님의 전사다. 사랑의 전사, 믿음의 전사, 희망의 전사, 평화의 전사이다. 영적전쟁중 싸우다 전사했으면 좋겠다. 사고사, 객사, 교통사, 병사가 아닌 주님의 전사戰士로서 영적전쟁중, 즉 기도하다, 일하다, 공부하다 전사戰死했으면 좋겠다.”
구도적 열정과 순수의 주님의 전사인 수도자들 누구나의 공통적 소원일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치열한 영적전투의 삶을 살다가 주님의 전사로 생애를 마감했으면 하는 소원입니다. 바로 우리 교회의 순교자들이 영적전쟁의 삶을 살다가 전사한 분들입니다. 우리 역시 깨어 영적훈련에 영적전투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순교적 삶을 살아가는 9월 순교자 성월입니다.
영적전쟁의 핵심은 자기와의 전쟁이자, 더 구체적으로 무지와의 전쟁입니다. 여름 밭농사를 풀과의 전쟁이라 하는데, 우리의 평생 영적 전쟁은 무지와의 전쟁입니다. 무지의 악, 무지의 죄, 무지의 병과의 영적전쟁입니다. 참 대책없이 힘든 것이 자기를 모르는 무지의 병입니다.
참 쉬운 것이 남 판단하는 것이요, 참 어려운 것이 자기를 아는 일입니다. 그래서 “너 자신을 알라”는 자기인식을 참 많이 강조합니다. 참으로 자기를 아는 것이 겸손이요 지혜입니다. 이래서 그렇게도 끊임없는 기도와 회개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와 회개 또한 중요한 영적 훈련에 속합니다.
자기를 몰라 판단이나 심판이지 정말 자기의 한계와 단점들을 아는 겸손한 사람들은 결코 남을 판단하거나 심판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자기를 알아가는 것도 참 중요한 영적 자기훈련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복음의 이해도 확연해 집니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눈먼 이가 상징하는 바, 바로 무지의 사람입니다. 나라든 가정이든 그 무슨 공동체든 눈밝은 지혜로운 자가 아닌 눈먼 무지의 사람들이 인도자가 되면 본인은 물론 공동체에도 이보다 큰 재앙도 불행도 없을 것입니다. 여기 나오는 스승은 예수님으로 바꿔도 좋습니다. 우리 제자들은 영원한 스승이신 예수님보다 높지 않습니다.
평생 주님의 학인이 되어 배움의 여정에 충실함으로 영원한 참 스승이신 예수님처럼 되면 충분합니다. 이어지는 우리의 스승, 예수님 말씀이 우리의 무지를 일깨우는 죽비같은 말씀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편견과 선입견, 오해와 착각으로 자주 실수하는 무지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다.”
바로 문제는 나이고 답은 주님임을 아는 자가 지혜롭고 겸손한 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예외없이 무지의 실체인 “자기ego”라는 눈 속에 들보를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무지한 자기에 대한 유일한 처방은 하느님의 지혜이신 파스카 예수님뿐입니다. 이래서 겸손히 평생 예수님을 배워 닮아가는 배움의 여정, 예닮의 여정, 주님과 일치의 여정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무지한 우리가 문제라면 답은 예수님뿐입니다. 예닮의 여정과 참나를 알아가는 앎의 여정은 함께 갑니다. 주님을 알아가면서 참나를 알아가니 주님의 탐구와 참나의 탐구는 함께 갑니다. 참으로 주님을 닮아 참나에 이르러 내 눈의 자기라는 들보가 사라질 때 비로소 이웃 형제의 지혜로운 조언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무지에 대한 유일한 해법이자 처방은 예수님을 알아가면서 참 나를 알아가는 길뿐이요, 역시 평생과제의 여정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영적전쟁은 무지와의 전쟁이요, 예수님을 배우고 닮아가면서 참나에 이를 때 비로소 무지에서 벗어나 영적 승리의 월계관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궁극의 목표이자 희망입니다.
오늘 제1독서의 바오로 사도야 말로 불세출의 주님의 전사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롤모델입니다. 바오로는 영적훈련, 영적전쟁의 주님의 전사를 경기장의 경기자로 명명합니다. 우리 삶은 영적 전쟁터이자 동시에 경기장이 되기도 합니다.
“경기장에서 달리기 하는 이들이 모두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라는 것을 모릅니까? 이와 같이 여러분도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달리십시오.모든 경기자는 절제를 합니다. 그들은 썩어 없어질 화관을 얻으려고 그렇게 하지만, 우리는 썩지 않는 화관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잘 달리고 있는지, 참으로 잘 싸우고 있는지 잠시 휴전하고 멈추어 자기를 살펴보며 영적 전의戰意를 새로이 하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우리의 영적 경기는 상대 평가가 아닌 절대 평가입니다. 자기 페이스대로 한결같이 목표 지점에까지 달릴 때 하나하나 모두가 1등에 썩지 않는 화관의 상을 받을 것입니다.
과연 제 페이스대로 잘 달리고 있습니까? 잘 싸우고 있습니까? 예닮의 여정, 참나를 알아가는 앎의 여정은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죽어야 끝나는 영적훈련에 영적전투입니다. 바오로의 말씀이 우리 모두 사기충천士氣衝天케하며, 용기백배勇氣百倍 분투의 노력을 다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목표가 없는 것처럼 달리지 않습니다. 허공을 치는 것처럼 권투를 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몸을 단련하여 복종시킵니다.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나서, 나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영혼뿐 아니라 육신도 단련하여 조복調伏시켜야 합니다. 육신의 욕망에 영혼이 끌려가지 않고, 영혼이 육신을 끌고 가야 합니다. 아니 자발적으로 육신이 영혼을 따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열렬히 한결같이 사랑하여 주님을 배우고 닮아갈 때 주님의 은총으로 육신은 저절로 영혼을 따르고 이어 영혼의 건강에 영력靈力을 선물로 받습니다. 평생 영적 훈련에, 영적 전투의 삶을 살아가는 주님의 전사들인 우리들입니다. 수도자들은 물론 믿는 모든 이가 이에 해당됩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불퇴전不退轉의 주님의 전사로 살게 합니다.
“주 하느님은 태양이요 방패이시니,
주님은 은총과 영광을 주시나이다.
흠없이 살아가는 우리 주님의 전사들에게, 복을 아끼지 않으시나이다.”(시편84,1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