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9.23.금요일 피에트니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1887-1968) 기념일

코헬3,1-11 루카9,18-22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삶을, 자연을 ‘렉시오 디비나(성독聖讀)’하기

 

 

만34년 이곳 요셉 수도원에 정주하다보니 우리 수도형제들은 물론 많은 분들의 변화된 모습을 봅니다. 한때는 처녀처럼 젊었던 30대 분들이 이제는 할머니로 변화된 모습에서 세월의 흐름을 실감합니다. 오랫동안 한곳에 정주하다보니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를 매해 체험하며 사랑하는 많은 이들의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모습도 한눈에 들어옵니다. 예전 오랜만에 만난 두분의 말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수사님은 늙지 않을 줄 알았어요.”

“수사님은 수도원에 살아도 늙네요.”

 

옛 사진을 보면 세월의 흐름을 절감합니다. 아무도 시간안에서, 세월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늙어감을, 또 죽음을 막을 수 없습니다. 오늘 코헬렛의 주제는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입니다. 설명이 필요없는 구구절절 공감이 가는 내용중 일부를 인용합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긴 것을 뽑을 때가 있다

 

울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기뻐할 때가 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의 때가 있고

평화의 때가 있다.”

 

코헬렛 저자는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하며, ‘나는 인간의 아들들이 고생하도록 하느님이 마련하신 일을 보았다.’ 고백합니다. 이어 하느님은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도록 만드셨으며 우리들 마음속에 시간 의식도 심어주셨다 고백하며 결론 같은 말도 붙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시작에서 종말까지 하시는 일을 인간은 깨닫지 못한다.”

 

시간에는 ‘크로노스(chronos)’ 연대기적 시간만 있는게 아니라, ‘카이로스(kairos)’ 하느님과의 만남이란 결정적 시간도 있습니다. 육안肉眼만 있는게 아니라, 참으로 주님과 깊은 관계중에 살아가는 기도의 사람에게는 지혜의 눈, 관상의 눈이란 영안靈眼도 있습니다. 세상의 크로노스 시간을 통해 카이로스 하느님의 때를 봅니다. 참으로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때를 분별하는 깊은 영성생활이, 관상생활이 지혜의 원천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런 영적 삶에 결정적 도움이 되는 게 성서의 관상적 독서인 렉시오 디비나 성독입니다. 신구약 성서가 렉시오 디비나의 1차적 대상이지만 렉시오 디비나는 확장되어 우리 각자의 삶이나 공동체 삶은 물론 자연에 까지 이릅니다.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우리의 삶도, 자연도 성서가 됩니다. 

 

이렇게 삶을 렉시오 디비나 할 때 풍요로운 영적 삶이요, 지난 과거나 다가올 미래에 살지 않고, 오늘 지금 여기서 나답게, 아름답게, 행복하게, 자유롭게 삽니다. 이런 영적 깨달음의 은총이 참으로 우리를 흐르는 세월중에도 내적초월을 이루어 자유롭게 살게 합니다. 삶의 렉시오 디비나에서 탄생한 깨달음의 시, 둘을 나눕니다.

 

“눈은 있어도 

‘지혜의 눈’없는 사람이 너무 많다.

거의가 제정신이 아닌, 

맹목의, 광신의 사람들이 참 많다

그래서 죄도 병도 악도 범람하는 세상이다.

그러니 끊임없는, 한결같은 기도가, 하느님 공부가, 말씀공부가, 회개가

참으로 절실하고 절박하다

주님을 사랑하고 찾아 만나라.

주님은 언제나 지혜의 눈이시다.”-2022.4.20

 

날로 한결같은 영적수행으로 주님을 닮아갈 때 주님의 시야를 지닙니다. 세월 흘러 나이 들어도 주님의 시야를 지니지 못한 지혜가 결핍된 철없는, 철부지 노인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가을인생은 가을인생답게, 겨울인생은 겨울인생답게 살아갈 때 진정한 아름다움입니다. 세월흘러 나이들어간다 하여 저절로 지혜로운 삶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역시 ‘주님의 시야로 바라보자’는 시를 나눕니다.

 

“넓고 멀리, 높고 깊이 바라보자

주님의 눈, 주님의 시야로

그리고 

오늘 지금 여기를 바라보며 살자

삶도 자연도 똑같다

예수님 부활상 배경의 단풍나무 사라지니

주변이 탁트여 참 환하다

불암산이, 또 숱한 크고 작은 이런저런 나무들이

배경이 되어주는 구나

그러니

넓고 멀리, 높고 깊이 바라보자.

주님의 눈, 주님의 시야로!”-2022.4.29.

 

이런 주님의 시야를 지닐 때 풍요로운 정주의 삶입니다. 단조롭고 메마른 반복의 평범한 크로노스의 일상도 주님을 만날 때 충만한 카이로스의 시간, 주님의 시간이 됩니다. 요즘 수도원 쓸모없는 주변땅에는 꽃말도 예쁜 “영원히 사랑스러워”라는 빨간 유홍초가 한창입니다. 며칠 전 써놓은 ‘하늘나라’란 자작시입니다.

 

“자리탓하지 말자

 어디든

 뿌리내려

 활짝 곱게 꽃피어 내면

 거기가 꽃자리, 하늘나라다.”-2022.9,18

 

깨달은 사람의 눈에는 모두가 충만한 하느님의 시간, 카이로스의 시간입니다. 이런면에서 수도원의 시간은 거룩한 시간, 카이로스의 시간들입니다. 평생, 날마다, 끊임없이, 규칙적으로 바치는 시편성무일도와 미사 공동전례기도 은총이 시간을 성화聖化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주님의 시야를, 관상적 눈을, 지혜의 눈을 갖게 하는 공동전례기도의 은총입니다.

 

오늘 복음의 서두 말씀의 묘사가 의미심장합니다. 

‘예수님께서 혼자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도 함께 있었는데, 그분께서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하고 물으셨다’(루카9,18)에서 보다시피 기도에서 발단이 되어 자신의 신원을 확인하신후 자신의 수난과 부활의 때를 처음으로 예고하십니다. 주님은 분명히 기도의 때에 이뤄진 깨달음을 나누십니다. 

 

예수님께는 모든 시간이 하느님의 때, 카이로스의 의미 충만한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뿐 아니라 성서나 교회의 모든 성인성녀들 역시 충만한 카이로스 하느님의 시간을 살았습니다. 오늘 기념하는 카푸친 작은 형제회 오상의 비오 수도사제 역시 똑같습니다. 비오 신부는 1918년부터 세상을 떠난 1968년까지 무려 50년 동안을 예수님의 오상을 몸에 지닌채 고통을 받았습니다. 

 

성인은 초자연적 현상과 고통속에서 하느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였으며 겸손과 순명으로 자신에게 다가온 모든 비판과 오해를 풀어나갔습니다. 그가 선종하신 지 3년후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성인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비오 신부님이 얻은 명성을 보십시오. 그분의 주위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가 철학자이기 때문에? 현명하기 때문에? 아닙니다. 그가 겸손하게 미사를 지내서 그렇습니다. 새벽부터 밤중까지 고해소에 머물며 고해를 들어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쉽게 언급할 수는 없지만, 주님의 오상을 몸에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기도와 고통의 사람이었습니다.”

 

비오 신부님의 거룩함과 영성은 사후 더욱 알려져 성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1999년 5월 2일 시복되었고, 같은 성인 교황에 의해 2002년 6월16일 성 베드로 성당 앞 광장에서 30만명 신자들이 운집한 가운데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때를 아는 것이 지혜이고 그 때를 기다리며 인내하는 것이 겸손이며 그때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겠습니다. 참으로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 시간의 선물을 하느님의 때로 깨달아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이 거룩한 미사중 주님의 자비를 청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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