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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9.26.연중 제26주간 월요일                                                          욥기1,6-22 루카9,46-50

 

 

바다같은 가장 큰 믿음의 사람

-환대, 겸손, 관대-

 

 

이런저런 단상들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엊그제 피정 강의시 강조했던 내용이 생각납니다. 기도는 사랑이요 기도와 함께 가는 믿음이요 기도보다 더 좋은 화장품은 없다는 것입니다. 기도와 회개를 통한 마음의 성형수술이 잘 되면 신체의 성형수술은 전혀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기도와 회개의 여정을 통해 주님을, 주님의 믿음을, 사랑을 닮아가는 것이 답이라고 강조했으며 자매들 모두가 유쾌하게 웃었습니다.

 

얼마전 주문한 책 제목이 생각납니다. 독특한 철학자의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책명으로 내용이 참 복음적이다 싶어 주문했습니다.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정말 겸손한 구도자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어제 두분 수녀님에게 면담성사를 드리면서 요셉수도원을 매개로 한 수녀님들 사이의 각별한 영적우정에 감동했습니다. 60대 초반의 비슷한 연배의 믿음의 삼총사 수녀님들입니다. 1990년대초 그러니 30대 초반부터 지금 60대 초반까지 거의 30여년을 수도원을 방문하여 저에게 고백성사를 받고 영적우정을 나누고 있는 참 성실하고 한결같은 믿음의 수녀님들입니다.

 

“엘리야의 계절입니다.”

수녀님의 말에 웬말인가 싶었더니 기도의 계절이 가을철이 너무 좋다는 것입니다. 수녀님들 사이의 영적우정의 기초는 바로 하느님을 향한 믿음에 있음을 봅니다. 점차 바다와 같이 넓어지고 깊어지는 믿음의 수녀님들입니다. 어제의 두 깨달음이 믿음 생활에 더욱 정진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줌을 싸면 지린내가 나는데, 지린내뿐 아니라 오물에서 나는 냄새는 죄로 인해 썩어가는 영혼의 냄새에 비하면 향기처럼 느껴질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정말 부끄럽고 두려워할 것은 체취나 오물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라 죄로 인해 부패해가는 영혼의 악취가 아니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아무리 인위의 화장이나 향수를 사용해도 혐오감만 더할 뿐이겠습니다.

 

또 하나는 갖가지 병고에 대한 생각입니다. 하느님을 섬기며 최선을 다한 삶이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겪게 되는 병고는 그대로 보속補贖이나 대속代贖, 순종順從의 큰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축복과 감사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하느님은 바다같은 분입니다. 우리 예수님이나 마리아 성모님은 바다같은 큰 믿음의 분들로 하느님을 닮은 분들입니다. 오늘부터 시작된 욥기도 반갑습니다. 욥의 바다같은 큰 믿음 역시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오늘 복음 말씀 역시 고맙습니다. 가장 작은 겸손한 사람이 가장 큰 믿음의 바다같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읽었습니다. 가장 작은 사람이 가장 큰 사람의 역설의 진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겸손한 믿음입니다. 이미 고인이 된 시대의 스승, 신영복 선생의 글에서 바다같은 분을 만납니다. 좀 길다싶지만 내용이 좋아 그대로 인용합니다.

 

“먼 길을 가는 사람의 발걸음은 강물같아야 합니다. 필생의 여정이라면 더구나 강물처럼 흘러야 합니다. 강물에서 배우는 것은 자유로움입니다. 강물은 유유히 흘러갑니다. 앞서려고 다투는 법이 없습니다. 부딪치는 모든 것들을 배우고 만나는 모든 것들과 소통하며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시내가 강을 만나면 강물이 됩니다. 강물이 바다에 이르면 이제 스스로 바다가 됩니다. 언제나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기어코 바다를 만들어 냅니다. 바다는 가장 낮은 곳에서 모든 시내를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바다입니다.”

 

외람되지만 제가 평생 써온 강물같은 강론이 이제 바다를 이뤘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여전히 하루하루 강물같은 강론쓰기는 계속될 것입니다. 모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바다같은 사람입니다.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수평선을 보면 바다같은 겸손한 큰 믿음의 사람이 하느님을 만난다는 영적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일상의 크고 작은 모든 고통이나 시련들을 낮은 바다로 향하는 수행의 계기로 삼으면 축복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다시피 가장 큰 사람이 누구냐는 문제로 논쟁이 일어 난 예수님 제자들 공동체입니다. 환대의 믿음을 지닌 사람이 바로 바다같은 큰 믿음의 사람입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린이로 상징되는 작고 약해 보이는 사람을 주님처럼 환대할 때 주님은 물론 하느님을 환대하는 것이란 놀라운 말씀입니다. 환대의 믿음에 이어 겸손한 믿음입니다. 가장 작은 사람이 가장 큰 사람이라는 말씀, 바로 가장 작은 겸손한 사람이 실은 가장 큰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요한과의 대화에서 주님의 바다와 같은 관대한 마음을 배웁니다. 어떤이가 스승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기에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막으려 했다는 요한의 말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에서 관대한 마음, 관대한 믿음을 배웁니다.

 

“막지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종교간 대화를 시도하는 이들이, 세상 한 복판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살아가는 이들이 지녀야 할 관대한 마음, 믿음입니다. 참으로 가장 작아 보이는 환대, 겸손, 관대의 사람들이 역설적으로 바다같은 큰 믿음의 사람들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제1독서의 욥의 바다같은 수용의 믿음이 감동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겪는 불행한 사건들도 그대로 큰 믿음으로 받아들여 바다가 된 욥의 믿음이 참 감동적입니다. 

 

진정한 믿음의 사람들은 결코 유혹에 빠저 미풍을 태풍으로 바꾸지 않으며 태풍같은 사건들도 미풍으로 바꿔버립니다. 하느님께 허락을 받아 수 차례 태풍같은 비극적 불행으로 욥을 유혹했지만 미풍으로 바꿔버리는 요지부동의 바다같은 큰 믿음의 욥입니다. 

 

“너는 나의 종 욥을 눈여겨보았느냐? 그와 같이 흠 없고 올곧으며 하느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은 땅 위에 다시 없다.”

 

사탄과의 대결에서 욥이 승리로 이런 욥의 진가가 고스란히 입증됩니다. 좌우간 힘든 믿음의 시험들을 무난히 통과한 욥의 믿음이 놀랍습니다. 바로 다음의 욥의 고백에서 그의 애오라지 하느님 중심의 바다같은 크고 깊은 믿음의 절정을 봅니다.

 

“알몸으로 어머니 배에서 태어 나온 이 몸, 알몸으로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욥은 이 모든 일을 당하고도 죄를 짓지 않고 하느님께 부당한 행동을 하지 않았으니, 하느님께서 흡족해 하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런 믿음의 거인 욥에 비하면 우리는 믿음의 난쟁이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언젠가 저녁 침묵의 불암산을 보며 쓴 시도 생각납니다.

 

“아

 크다

 깊다

 고요하다

 저녁 불암산!”

 

커서 깊고 고요한 믿음의 사람, 요셉 성인을 생각하며 쓴 시인데 욥의 믿음에도 그대로 해당된다 싶습니다. 가장 작은 사람은 역설적으로 가장 큰 사람, 가장 큰 믿음의 사람입니다. 예수님처럼, 성모님처럼, 욥처럼 환대로, 겸손으로, 관대한 마음으로 표현되는 하느님을 닮은 바다같은 큰 믿음입니다. 주님의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런 바다같은 큰 믿음의 사람으로 변모시켜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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