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여정, 믿음의 훈련, 믿음의 전사 -인내, 격려, 겸손-2022.10.2.연중 제27주일(군인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Oct 0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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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연중 제27주일(군인주일) 

하바1,2-3;2-4 2티모1,6-8.13-14 루카17,5-10

 

 

믿음의 여정, 믿음의 훈련, 믿음의 전사

-인내, 격려, 겸손-

 

 

우리 삶은 믿음의 여정이요 믿음의 훈련입니다. 또 우리는 믿음의 전사요 서로는 믿음의 전우가 되고 저절로 전우애가 형성됩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믿음의 훈련 시간입니다. 기도와 믿음은 함께 갑니다. 초대송 후렴의 찬미로 시작된 하루, 이렇게 끊임없는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기도가 우리의 믿음을 북돋아 줍니다.

 

"어서 와 하느님께 노래 부르세.

구원의 바위 앞에 목청 돋우세"

 

경청과 믿음 역시 함께 갑니다. 방금 흥겹게 부른 화답송 시편 은총이 우리 마음을 겸손하고 온유하게 하며 믿음을 북돋아 줍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오늘 듣게 되거든,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말라."

 

1차 배수확이 끝났습니다. 얼마전 농장책임 수사님 언급이 생각납니다. 여러 피해로 제대로 익어보지 못하고 즐비하게 떨어진 흰봉투에 싸인 배열매들을 보면서 코로나로 냉담한 신자들이 생각났다는 것입니다. 열매 익어가는 수확의 계절, 과연 우리 믿음의 열매는 잘 익어가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 묵상중 떠오른 성가 480장 ‘믿음으로’였습니다. 

 

“믿음으로 믿음으로 저산도 옮기리 믿음으로

 믿음으로 믿음으로 바다도 가르리 믿음으로

 믿음으로 믿음으로 한생명 바치리 믿음으로

 믿음으로 믿음으로 한넋을 다하라 믿음으로”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믿음없이 무엇으로 살아갑니까? 무신불립無信不立,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마음이 두렵고 불안한 것은 믿음이 부족하거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있어도 여전히 부족한 것이 믿음입니다. 사랑에, 기도에 영원히 초보자이듯 믿음에도 영원히 초보자인 우리 사람들입니다.

 

인간의 인간다움은, 인간의 위대함은 믿음에 있습니다. 믿음은 인간 품위의 기초입니다. 믿음직스럽다라는 말을 들으면 누구나 기분이 좋을 것입니다. 우리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의 정주서원도 인내의 믿음을 뜻합니다. 언제나 거기 그 자리에서 산처럼, 나무처럼 한결같이 묵묵히 믿음으로 살아가는 정주의 수도자들입니다.

 

믿음하면 연상되는 것이 나무의 뿌리입니다. 땅에 깊이 뿌리 내릴 때 나뭇잎들 무성한 튼튼한 나무들이듯 믿음의 뿌리도 그러합니다. 하느님 중심에 깊이 뿌리내린 믿음일 때 비로소 안정과 평화입니다. 반면 하느님 중심에 뿌리 내림 없이 표류하는, 방황하는 불안과 두려움중에 살아가는 이들은 얼마나 많겠는지요!

 

나중에 남는 것도 둘입니다. 하느님 믿음과 밥입니다. 인생 노년에 하느님 믿음은 없고 밥만의 식욕만 있다면 인간 품위도 실종입니다. 일반 동물과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믿음과 더불어 밥입니다. 믿음으로, 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자주 인용했던 두 구절이 생각납니다.

 

“노년의 품위유지를 위한 우선순위는 1.하느님 믿음, 2.건강, 3.돈이다.”이 우선순위가 절대 바뀌어선 안된다.”

 

“물보다 진한게 피이고 피보다 진한게 돈이고 돈보다 진한게 하느님 믿음이다.” 이처럼 돈의 마력은 막강하다는 것이며 이를 제압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 믿음뿐입니다. 참으로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참 좋은 최고의 유산은 이런 믿음입니다. 믿음 역시 보고 배웁니다.

 

참으로 주님께 하나 청한다면 저는 오늘 복음의 사도들처럼 믿음을 청하겠습니다. 힘중의 힘이 믿음의 힘입니다. “주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정말 간절한 청입니다. ‘사랑밖엔 길이 없었네’와 더불어 ‘믿음밖엔 길이 없었네’란 말도 쓰고 싶습니다. 물론 눈먼 광신이나 맹신은 금물이요 이보다 더 큰 해독도 없습니다. 광신이나 맹신의 병에는 약도 없습니다. 주님 역시 제자들의 청에 공감하시며 믿음의 힘을 역설하십니다.

 

“너희가 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져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에서 거품을 빼버리면 진짜 믿음은 정말 작을 것입니다. 이래서 믿음의 여정입니다. 알게 모르게 하루하루 성장하는 은총의 나무들처럼 믿음의 성장도 그러합니다. “마라나타”, “오소서 주 예수님”에다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자주 화살 기도를 바치는 것입니다. 

 

어떻게 믿음의 여정에 한결같이 항구할 수 있을까요? 믿음 역시 은총이자 훈련입니다. 구체적 처방을 나눕니다.

 

첫째, 믿음은 인내입니다.

믿음의 힘은 인내의 힘입니다. 믿음 역시 훈련이듯 인내 역시 평생 훈련입니다. 일상의 모든 힘든 점들은 인내 훈련의 계기로 삼으십시오, 참지 않고 이뤄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끝까지 참는 자가 승리합니다. 

 

베네딕도 성인도 형제들의 약점을 지적하기보다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라 했습니다. 인내의 믿음이요, 인내의 기다림입니다. 참으로 주님께 궁극의 희망을, 사랑을 둘 때 이런 인내력의 선물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거칠게 격렬하게 항의하는 하바쿡의 심정이 이해됩니다.

 

거듭 반복되는 “제가 언제까지” “어찌하여 제가”라는 말마디가 인내의 한계에 도달한 하바쿡의 절박한 심정을 드러냅니다. 이에 대한 주님의 처방은 인내의 기다림입니다. 

 

“지금 이 환시는 정해진 때를 기다린다. 끝을 향해 치닫는 이 환시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늦어지는 듯 하더라도 너는 기다려라. 그것은 오고야 만다, 지체하지 않는다. 보라, 뻔뻔스러운 자를, 그의 정신은 바르지 않다. 그러나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

 

의인은 성실함으로, 믿음으로 삽니다. 하느님의 때가 될 때 까지 끝까지 기다리는 인내하는 믿음의 사람이 진정 의인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모토이기도 했습니다.

 

둘째, 믿음은 격려입니다.

참으로 믿음의 사람은 긍정적 낙관적 사람이요 격려의 사람입니다. 믿음이 훈련이듯 격려도 훈련입니다. 자주 남은 물론 자신도 격려하세요. 정작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조언이나 충고보다는 위로와 격려입니다. 공감하고 경청하며, 함께하며 하는 위로와 격려의 말은 침묵보다 백배 낫습니다.

 

믿음의 대가, 믿음의 달인 바오로 사도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사랑하는 제자 티모테오에 주는 사랑이 가득 담긴 격려 말씀이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를 대상으로 합니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은 격려의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바오로 사도를 통해 티모테오는 물론 그대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참 시의적절한 격려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한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똑같은 주님께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각자가 받은 은사에 불을 붙여주시며,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선물하십니다. 그러니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믿는 이들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주어지는 믿음과 사랑으로, 또 우리 안에 머무르시는 성령의 도움으로 우리가 맡은 훌륭한 자질이나 덕을 지키라는 바오로의 격려 말씀이 참 고맙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합니다. 참으로 믿음의 사람은 격려의 사람입니다. 힘겹게 살아가는 지친 영혼들에게 진정성 가득한 적절한 위로와 격려는 그대로 구원이 될 것입니다.

 

셋째, 믿음은 겸손입니다.

겸손한 믿음입니다. 진짜 믿음의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믿음의 진정성은 겸손을 통해 드러납니다. 우리 예수님의 마음이 바로 겸손과 온유입니다. 언제나 들어도 감미로운 주님의 말씀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온유와 겸손으로 표현되는 믿음입니다. 주님의 평생 학인이 되어 배워야 할 겸손이요 온유요 더불어 믿음의 내적 성장입니다. 믿음이 훈련이듯 겸손도 의식적 훈련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닮아갈 때 믿음과 함께 가는 겸손과 온유입니다.

 

우리에게 영성이 있다면 “종servant과 섬김service”의 영성이 있을뿐입니다. 종과 섬김은 같은 어원에서 나옵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종입니다. 충실하고 슬기로운, 겸손하고 온유한 종이 되고 싶지 않습니까? 다음 주님의 충고가 너무 멋집니다.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이와같인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하고 말하여라.”

 

얼마나 믿음직스럽고 사랑스런 겸손한 종인지요! 진짜 겸손한 사람은 이렇게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소리없이 행하는 이들입니다. 바로 이런 이들이 거룩한 성인들입니다. 모두가 섬김의 종으로서 겸손히 산다면 공동체의 평화는 저절로 이뤄질 것입니다. 

 

주변에서 겸손한 종이라 일컫지 당사자들은 너무나 당연하고 마땅하고 자연스런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이기에 겸손이 뭔지도 모를 것입니다. 평생 마음에 담고 살고 싶은 주님의 종으로서 겸손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이렇게 겸손한 믿음의 종으로 살 때 바로 거기가 진리와 사랑, 구원의 꽃자리가 될 것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렇게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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