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심의 여정 -무지에 대한 답은 회심뿐이다-2022.10.4.화요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1182-1226) 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Oct 0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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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4.화요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1182-1226) 기념일

갈라1,13-24 루카10,38-42

 

 

회심의 여정

-무지에 대한 답은 회심뿐이다-

 

 

오늘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입니다. 종파를 초월하여 가장 많이 사랑과 존경을 받는 가톨릭교회의 성인입니다. 개신교 신자들 역시 참으로 좋아하는 성인이요 제가 예전 개신교 다닐 때 알았던 최초의 유일한 성인이였고 개종후 세례명 역시 지체없이 프란치스코로 택했습니다. 우리의 사부 성 베네딕도와 참 좋은 보완관계를 이루는 성 프란치스코입니다.

 

산같은 정주의 성 베네딕도라면 강같은 흐름의 성 프란치스코입니다. 전임 교황 베네딕도 16세와 현임 교황 프란치스코가 이루는 보완관계도 이와 흡사합니다. 베네딕도회 영성을 요약하는 “산山과 강江”이라는 짧은 자작 애송시를 들어 보세요.

 

“밖으로는 산, 정주의 산, 천년만년 임 기다리는 산

 안으로는 강, 흐름의 강, 천년만년 임향해 흐르는 강”

 

여기에다 성 베네딕도와 성 프란치스코를 넣어 읽어보면 참 재미있게 잘 어울립니다.

 

“밖으로는 산, 정주의 산, 천년만년 임 기다리는 산, 성 베네딕도

 안으로는 강, 흐름의 강, 천년만년 임향해 흐르는 강, 성 프란치스코”

 

그래서 제 삶의 영성 모토는 “밖으로는 산, 성 베네딕도, 안으로는 강, 성 프란치스코”입니다. 밖으로는 늘 거기 그 자리의 하느님 중심에 자리 잡은 산같은 정주의 산이지만 안으로는 끊임없이 맑게 흐르는 강같은 내적 여정, 회개의 여정이라는 것입니다. 

 

강은 흘러야 삽니다. 물도 고이면 썩습니다. 정주가 안주가 되어 계속 흐르지 않고 내적으로 멈추어 웅덩이에 고인 물이 되면 썩기 마련입니다. 밖으로는 정주의 산이지만 안으로는 끊임없이 맑게 흘러야 늘 새로운 시작의 파스카의 삶입니다. 너무나 좋은 보완관계에 있는 성인들이요, 두 성인의 영성을 종합하여 산과 강의 영성을 사는 불암산 배경의 우리 성 베네딕도회 요셉 수도원 수도형제들입니다.

 

참으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삶은 이제 전설이자 신화가 되었습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늘 가까이 살아 있는 성인처럼 느껴지는 분이요 성인에 대한 일화는 늘 들어도 새롭고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성인의 44년 한생애가 그대로 한권의 성경책 같습니다. 

 

성인의 행적을 자랑하는 마음으로 많은 부분을 나눕니다. 성인의 놀라운 행적을 통해 결국은 이런 성인을 가톨릭교회는 물론 온 인류에게 참 좋은 선물로 주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1.인도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는 “백년마다 한번 성 프란치스코가 태어난다면 세상의 구원은 보장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2.‘그리스인 조르바’의 저자로 ‘성 프란치스코 전기’를 쓴 유명한 그리스의 소설가이자 영성가인 니코스 카찬스키스는 말했습니다.

 

“나에게 있어 성 프란치스코는 사람의 본분을 다한 인간의 표본이며, 시련 또한 평화로운 투쟁으로 이겨내 인간으로서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의무를 실천한 인물이다. 그것은 윤리나 진리, 또는 아름다움보다도 더 지고한 차원의 것, 곧 우리를 통하여 하느님이 맡기신 물질을 닦아 영혼으로 승화시키라는 본질의 의무일 것이다.”

 

3.성 프란치스코가 남긴 마지막 임종어는 “내 형제 죽음이여, 어서 오라.”입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임종어와 흡사합니다. “내 벗인 죽음이여, 어서 오게나. 기다리고 있었네.”죽음은 삶의 요약입니다. 참으로 최선을 다한 치열하고도 아름다운 삶이었기에 이처럼 죽음과 완전 화해한 아름다운 죽음일 것입니다. 얼마나 노고에 가득한 삶이었는지 짐작이 갑니다. 이 성인들에게는 죽음이야 말로 주님 안에서의 편안한 휴식이었을 것입니다. 

 

성인의 회심의 여정에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영적체험도 참 신비롭고 아름답습니다.

 

4.1205년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가던 중, 주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주인과 종 가운데 누구를 택하겠느냐?” 질문에 “주인입니다.”라고 대답하자, “너의 고향으로 돌아가라, 거기에서 네가 할 일을 가르쳐 주겠다.” 주님과 만남과 동시에 결정적 회심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5.어느 날 성 프란치스코는 성 다미아노 성당에서 기도하던중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자신의 사명을 확인합니다. “프란치스코야, 무너져가는 나의 교회를 고쳐라.”

 

6.아버지와 결별과정도 회심의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프란치스코는 아버지의 돈주머니와 옷을 모두 벗어 던지고 군중 앞에 선언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내 말을 들으십시오. 지금까지 나는 피에트로 베르나도네를 나의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나는 그에게서 받은 돈과 의복들을 돌려줍니다. 이제 나는 하늘에 계신 유일한 아버지 한 분만을 섬길 것입니다.”

 

성인의 프란치스코회 설립과정과 전교활동을 보면 성인의 업적과 영향력을 상상을 초월할정도로 놀랍습니다. 무엇보다 성인은 가난을 매우 사랑했고 자연 역시 끔찍이 사랑했으며 그 안에서 하느님을 느끼고 찬미하였습니다. 그는 하느님이 창조한 모든 피조물에게 “형제”나 “자매”라 불렀으며 새들과 늑대에게도 설교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지은 태양의 찬가는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현대의 기후위기에 대한 답은 성 프란치스코일뿐입니다. 성인은 자신이 직접 쓴 태양의 찬가에서 태양, 불, 바람등을 “형님”으로, 달과 별들, 물, 땅, 죽음등을 “누님”으로 호칭하며, 심지어 자신이 앓고 있는 만성 질병들을 “자매들”이라고 불렀습니다.

 

1939년 교황 비오 12세는 프란치스코를 시에나의 카타리나와 더불어 이탈리아의 공동수호성인으로 지정하였고, 이어 1979년 11월 29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프란치스코를 생태계의 수호성인으로 지정하였으며, 1982년 세계 환경의 날에는 “피조물들에 대한 프란치스코의 사랑과 보살핌을 현대 가톨릭 신자들이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로 끝맺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과 형제애를 갖도록 언제나 우리를 도와주며 고무하리라고 나는 희망한다.”

 

마지막 임종장면도 감동입니다. 1226년 10월3일 죽음이 다가온 것을 알자 동료수도자들에게 자신이 걸친 옷을 보두 벗겨 잿더미 위에 눞혀 달라 한후 요한복음서의 수난기를 읽어달라고 청하고 나서 시편 142장을 읊은 후 선종합니다. 성인은 선종후 2년만인 1228년 7월17일 교황 그레고리오 9세에 의해 시성됩니다.

 

모든 성인들이 그렇지만 성 프란치스코의 전생애는 말그대로 회심의 여정이었습니다. 문득 고故 정요한 수사가 수도원 정자에 붙인 “회심정回心亭”이란 이름이 생각납니다. 오늘 말씀도 이런 회심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확연해집니다. 주님과 환대의 만남과 동시에 이뤄지는 회심입니다.

 

마르타가 예수님을 환대했을 때,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경청합니다. 주님과 환대의 만남중에 경청을 통해 마리아의 내면에서는 조용히 회심이 이뤄졌을 것입니다. 마리아에게 불만을 지닌 마르타에 대한 다음 충고를 통해 마르타도 분명 회심했으리라 봅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우선적 환대는 경청임을 마르타는 깊이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환대에 있어 양자택일이 아닌 우선순위 문제였던 것입니다. 마치 미사시 말씀전례후 성찬전례가 뒤를 잇는 이치와 똑같습니다. 오늘 제1독서 역시 바오로 사도의 회심의 여정에 대한 고백처럼 들립니다. 주님과 만남을 통해 회심과 더불어 참 자기의 성소를 발견한 바오로입니다.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나를 따로 뽑으시어 당신의 은총으로 부르신 하느님께서 기꺼이 마음을 정하시어, 내가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내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내가 여러분에게 쓰는 이 글은 하느님 앞에서 말합니다만 거짓이 아닙니다.”

 

자신의 회심의 여정을 렉시오 디비나 하는 바오로입니다. 그러고 보니 성인들의 삶은 끊임없는 회심의 여정중에 날로 주님을 닮아가는 예닮의 여정임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복음의 주인공인 마르타와 마리아가 그러하고 제1독서의 바오로 사도가 그러하고, 오늘 기념하는 성 프란치스코가 그러하고 우리 또한 그러합니다. 

 

무지의 어둠에서 벗어나 빛이신 주님께 이르는 회심의 여정입니다. 이런 회심의, 회개의 여정만이 무지에 대한 유일한 처방임을 봅니다. 바로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회심과 더불어 날로 주님을 닮아 참 내가 되어가는 우리들입니다. 끝으로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로 강론을 마칩니다. 제가 소망하는바 제 장례미사시 입당성가는 “태양의 찬가”요, 퇴장성가는 “평화의 기도”입니다.

 

“주여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어둠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고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 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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