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기도 -기도 역시 평생 배움의 훈련이다-2022.10.5.연중 제27주간 수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Oct 0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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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5.연중 제27주간 수요일                                                         갈라2,1-2.7-14 루카11,1-4

 

 

주님의 기도

-기도 역시 평생 배움의 훈련이-

 

 

우리 믿는 이들의 삶은 배움의 여정입니다.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는, 공부해야하는 인간입니다. 배워야 하는 인간, 인간에 대한 정의입니다. 그리하여 어느 분은 수도승의 두 특징을 “하느님께 대한 갈망, 배움에 대한 사랑”을 꼽고 있습니다. 무지의 어둠에서 벗어나기 위한 배움이요 공부입니다.

 

동양 최고의 인생 교과서인,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를 기록해 놓은 책인 <논어>는 첫장을 배움의 기쁨으로 시작합니다. “배우고 때 맞춰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공자의 매력은 공부하는 인간이라는 데 있을 것입니다.

 

성 베네딕도 역시 당신의 수도공동체를 주님을 섬기는 배움터로, 또 시토회는 수도공동체를 사랑의 학교로 정의합니다. 이뿐 아니라 우리 수도공동체는 기도의 학교, 기도의 배움터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과 섬김에만 아니라 기도에도 영원한 초보자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초보자라는 겸손한 자각이 학인의 기본적 자세일 것입니다. 사실 늘 낮은 자세로 겸손히 열려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니 배움에 대한 사랑, 배움에 대한 기쁨은 우리 하느님을 찾는 수도자의 기본적 자질임을 깨닫습니다.

 

기도의 복음이 바로 루카복음입니다. 유난히 기도하는 예수님에 대한 묘사가 많습니다. 오늘 복음의 주제는 ‘주님의 기도’이고 예수님의 기도로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하고 말하였다.’

 

기도도 평생 배워야 합니다. 우리 수도공동체는 졸업이 없는 평생 기도를 배워야 하는 기도의 학교이기도 합니다. 오늘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는 대표적인 기도는 바로 주님의 기도입니다. 마태복음에는 일곱의 청원이 나오지만 루가복음은 이보다 짧은 다섯의 청원으로 이뤄집니다. 늘 배워도 늘 새롭게 와닿는 주님의 기도요 평생 배워야 할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기도 노하우를 전수하십니다. 그대로 예수님의 단순하고 본질적인 삶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믿는 이들로서의 우리 삶의 자리가 잘 드러납니다. 인간이 누구인가? 인간이 물음이라면 답은 하느님입니다. 아버지인 하느님을 찾는 인간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되기 위한 기본적 본질적 필수의 공부가 하느님 공부입니다.

 

“아버지”의 호칭으로 시작되는 주님의 기도입니다. “아버지”라는 호칭부터 목이 메인다는 어느 수도자의 고백도 생각납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얼마나 큰 특권인지요. 영세 받으니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하느님이 계셔서 좋다는 어느 분의 평범하나 진솔한 고백이 생각납니다.

 

우리에게 하느님은 추상적 철학적 하느님이 아니라 인격적 대상으로서의 아버지로서의 하느님입니다. 우리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의 아버지인 하느님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하느님 아버지의 세 특징을 가까움, 연민, 부드러움으로 요약합니다. 

 

그러니 여기서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것이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들이요, 서로는 한 아버지를 모신 형제자매들이라는 것입니다. 널리 깊이 보면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신 하나의 인류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하느님의 한 가족을 이뤄주는 미사은총입니다. 엊그제 수도형제들의 꾸밈없는 사랑의 순수한 축하인사를 받으며 영원한 우애友愛의 아가페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이성간의 성애性愛는 일시적이나 주님 안에서 우애友愛는 영원합니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청원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소서.”

 

바로 아버지 중심의 우리 삶임을 깨닫게 됩니다. 인간의 방황과 혼란은 중심이 분명치 않음에서 기인합니다.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입니다. 꿈과 희망, 비전을 추구追求하는 인간입니다. 이런 아버지인 하느님은 우리 삶의 궁극의 목표이자 방향이요, 중심이자 의미요, 우리의 궁극의 꿈이자 희망, 비전입니다. 삶의 중심 자리에 하느님이 아닌 우상이 자리 잡을 때 시작되는 불행이요 비극입니다. 예전 수도원 초창기 비전이 없다는 어느 형제의 비판에 우리의 영원한 비전은 그리스도 예수님뿐이라 답변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주님의 기도는 아름다우며 도전적입니다. 모두를 하느님께 맡기는 일방적이고 무책임한 청원이 아니라 우리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협력을 요구하는 주님의 기도입니다. 100% 하느님께 달린 듯이 기도하고 100% 나한테 달린 듯이 노력해야 한다는 말도 생각납니다. 

 

그대로 진인사대천명의 자세입니다. 참으로 아버지를 사랑한다면 아버지의 거룩함을 가리지 않고 거룩하심이 잘 드러나도록, 또 아버지의 나라의 꿈이 잘 실현되도록 도와 드려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인간의 숭고한 의무요 책임입니다. 이어지는 평범한 일상생활에서의 기본적이자 본질적인 세가지 청원입니다.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날마다’바로 루카가 좋아하는 표현입니다.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청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하루 이틀이 아닌 죽는 그날까지, 살아있는 그날까지 날마다의 세 청원입니다. 날마다 그 날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청하는 겸손이요 일용한 양식을 얻기 위해 하루하루 날마다 최선을 다하는 노력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입니다.

 

용서받기위해 먼저 용서하는 의식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용서 역시 선택이요 훈련이요 습관입니다. 우선 용서하려는 지향을 지니고 용서하면 뒤에 용서가 따라 옵니다. 부단한 의식적 노력의 훈련과 더불어 자발적 용서의 습관화입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주십사 일방적 청원이 아니라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 일상을 늘 깨어 잘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깨어있음의 영성훈련도 필수입니다. 바로 이를 위한 비움기도, 향심기도, 마음의 기도등 온갖 종류의 관상기도의 수행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물론 모든 기도가 훈련입니다. 평생 영성훈련의 반복적 훈련이요 습관화입니다. 저절로 인간이 아니라 이런 기도를 통한 끊임없는 반복의 영성훈련이 건강한 영혼의 인간으로 만듭니다. 망각의 동물이기에 끊임없이 하느님을 기억하게 하는 기도의 훈련이 주님을 닮아 정체성 또렷한 참 내가 되게 합니다. 참으로 이렇게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로 온갖 수행의 영성훈련에 충실할 때 하느님께서도 감동하셔서 힘껏 도와주십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자신의 실수나 부족함에 좌절할 것이 아니라 이를 겸손히 배움의 계기로 삼을 것이며 결코 배움의 열정에 지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배움을 사랑하고 배움을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 갈라디아서 후반부 내용이 재미있습니다.

 

200주년 성서주석은 ‘바울로가 안티오키아에서 베드로를 꾸짖다.’로 또 새번역은 ‘바오로가 베드로를 나무라다.’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직제자도 아닌 바오로가 예수님의 직제자이자 수제자인 베드로를 크게 질책합니다.

 

“당신은 유다인이면서도 유다인답게 살지 않고 이방인처럼 처신하면서, 어떻게 이방인들에게 유다인처럼 살라고 강요할 수 있단 말입니까?”

 

우유부단하고 일관성 없는 베드로의 자세를 꾸짖습니다만 베드로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회개와 더불어 겸손히 배움의 계기로 삼았을 것입니다. 이래야 전화위복의 삶입니다. 기도도 평생 반복의 훈련입니다. 평생 시편성무일도와 미사 공동전례 기도를 바치는 우리들입니다. 삶의 전례화요 전례의 삶화를 통해 날로 주님을 닮아 참내가 되어가는 우리들입니다. 바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우리 위한 주님 사랑 굳건하여라.

 주님의 진실하심 영원하여라.”(시편117,2ㄱㄴ).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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