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하고 간절한 기도와 삶 -“청하여라, 찾아라, 두드려라”-2022.10.6.목요일 성 브루노 사제 은수자(1030-1101) 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Oct 0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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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6.목요일 성 브루노 사제 은수자(1030-1101) 기념일     

갈라3,1-5 루카11,5-13

 

 

항구하고 간절한 기도와 삶

-“청하여라, 찾아라, 두드려라”-

 

 

어제 ‘주님의 기도’에 대한 가르침에 이어 계속되는 기도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기도와 삶이 하나임을, 함께 감을 봅니다. 기도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는 사람’ 바로 사람에 대한 정의입니다. 그러나 기도없이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기도역시 선택이자 훈련이요 습관임을 깨닫습니다. 사실 기도보다 더 중요한 영성 훈련도 습관도 없습니다.

 

-“기도하는 대로 살고, 사는대로 기도한다.”

“나중에 남는 얼굴은 둘중 하나다. 기도한 얼굴인가, 기도하지 않은 얼굴인가?”

“주님 앞에 가면 영혼의 얼굴을 검사할 것이다. 나를 닮았나 안닮았나? 기도는 사랑이다. 주님을 사랑하여 기도할 때 주님을 닮는다.”-

 

그러니 기도는, 믿음은, 삶은 항구하고 간절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중 ‘친구의 청을 들어주는 사람 비유’가 바로 이런 자세의 기도와 삶에 대한 가르침을 줍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루카11,8)

 

사람이 이럴진대 하느님은 더욱더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의로우실뿐 아니라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기도에 앞서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사랑이 얼마나 절대적인지 깨닫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아버지는 농부라 했는데 농부의 삶자체가 기도처럼 생각됩니다. 얼마전 선물받은 사과에 대한 설명문이 이색적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해그린 사과 농원입니다. 올해는 사과농사를 지어온 농부로, 기후변화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는 한 해 였습니다. 한달반 이상 이어지는 중부지방의 긴 장마와 폭우, 그간 농사지어 오면서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외래 해충들, 많이 놀라기도 하고 대처하는데도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몇날 몇밤 애태우는 시간을 들여 가꾸어낸 이 사과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사과 한 알이지만 저희에게는 ‘참’ 소중한 사과입니다. 다소 손실이 발생해도 저희 해그린 사과의 농사는 한결같습니다. 껍질 그대로 드셔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누구보다 하느님을 가장 많이 닮은 이들이 이런 농부일 것입니다. 얼마나 간절하고 항구한 농부의 삶의 모습인지요. 그대로 기도와 삶이 하나된 모습입니다. 전문을 그대로 옮기면서 성서를 필사하듯 경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과 농사는 1년입니다. 그러나 사람 농사는 평생입니다. 죽음 준비도 따로 없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평생의 삶자체가 죽음 준비입니다.

 

과연 내 삶의 농사는, 내 자녀들 삶의 농사는 잘되고 있는지요? 탐스런 열매의 수확까지는 얼마나 지난한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 올해 배농사를 보며 실감합니다. 배농사는 일년이라 내년 복구도 가능하지만 사람 농사는 평생이라 어려서부터도 중요하고,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항구하고 간절한 기도와 노력이 절대적입니다.

 

‘해그린’ 이란 명칭도 예쁩니다. 해가 상징하는 바 하느님입니다. 둥글고 환히 붉게 빛나는 해를 그리워 닮은 ‘해그린’ 사과라는 것입니다. 하느님 그리워 닮아가는 하느님 닮은, 신망애의 하느님, 진선미의 하느님을 닮은 ‘하느님그린’ 기도의 사람들입니다.

 

바로 ‘하느님그린’ 이들이 성인들이요, 오늘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각별히 기념미사를 봉헌하는 성 브루노 사제 은수자입니다. 바로 위대한 침묵이란 영화의 소재가 된 카르투시오회 수도회의 창립자입니다. 성인은 생래적으로 고독과 침묵의 기도생활을 한결같이 사랑하며 추구했고, 또 그렇게 살다가 조용히 선종하셨습니다. 돌아가셨다라기 보다는 조용히 하느님께 사라지신 느낌입니다. 성인에 대한 일부 내용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1084년 그는 몇몇 동료와 함께 그로노블로 이주하여 적막한 알프스 산속에서 은수처를 마련했다. 이곳에 성 브루노와 동료들은 경당과 개인 은수처를 만들고 성 베네딕도회 규칙을 엄격히 준수하였으니 카르투시오 수도회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들은 극도의 가난을 실천하고 노동과 기도, 성경을 필사하는 작업을 했으니 그들의 규칙을 글로 기록하지는 않았다.

 

공적인 명예를 거부하는 카르투시오회의 규칙에 따라, 성 브루노에 대한 공식적인 시성식은 없었지만, 1514년 교황 레오 10세에 의해 카르투시오회 내에서 성 브루노를 공경해도 좋다는 인가가 내려졌고, 1623년 교황 그레고리오 15세에 의해 축일이 10월6일로 정해졌고, 1674년 교황 클레멘스 10세는 보편교회에서 성 브루노 축일을 기념하도록 합니다.’-

 

사후 성인 축일을 기념하기 까지 오백년에 걸쳐 이뤄지는 일들을 보면 모든 것을 온전히 하느님께 맡기고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가 얼마나 절대적인지 깨닫게 됩니다. 정말 이런 과정을 아시는 분은 하느님뿐이겠습니다. 

 

예수님의 확신에 넘친 권위 있는 말씀 앞에는 반드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란 말마디가 앞에 옵니다. 이어지는 삶의 자세는 기도와 믿음, 삶에 대한 자세입니다. 위 농부처럼 상황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한결같은 기도와 믿음, 삶에 있어서 도전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그대로 평생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 기도의 전사의 삶의 모습이자 평생 졸업이 없는 주님의 학인, 기도의 학인의 삶의 모습입니다. 저는 이를 일컬어 영적 탄력 좋은 삶이라 합니다. 눌렀다 놓으면 즉시 튀어나오는 용수철처럼 삶도 그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이들어 노쇠해 가면서 육신의 탄력은 떨어질지라도 영혼의 탄력은 떨어져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탄력이 떨어져 믿음도 희망도 사랑도 약해지면 삶은 무의미, 무의욕, 무감각이 지배할 것이니 이보다 더 큰 재앙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날마다 항구하고 간절한 기도와 믿음이, 삶이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최고의 선물은 성령입니다. 얼마전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라는 제자들의 믿음의 청대신 성령을 청하고 싶습니다. 참으로 항구히 청하고 찾고 문을 두드릴 때 아버지께서는 성령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결론 같은 말씀입니다.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루카11,13)

 

정말 궁극으로 청할 것은, 정말 필요한 것은 성령뿐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제1독서 갈라디아서의 소주제는 ‘율법과 성령’입니다. 갈라티아 사람들에게 성령으로 시작하여 성령으로 마칠 것을, 정말 성령에 따른 삶을 요구하는 바오로입니다.

 

“여러분은 율법에 따른 행위로 성령을 받았습니까? 아니면 복음을 믿어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여러분은 그렇게도 어리석습니까? 성령으로 시작하고서는 육으로 마칠 셈입니까? 여러분의 그 많은 체험이 헛일이라는 말입니까?”

 

우리를 지혜롭게 하는 성령입니다. 참으로 복음을 믿을 때, 항구하고 간절히 청할 때, 주님께서 주시는 참 좋은 성령의 선물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성령을 선물하심으로 우리 모두 성령충만한, 영적탄력좋은 삶을 살 수 있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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