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8.연중 제27주간 토요일 갈라3,22-29 루카11,27-28
참행복의 발견과 선택
-말씀의 경청, 실천, 믿음-
"주님, 새벽부터 일어나서, 도우심을 빌며
당신의 말씀에 희망을 거나이다."(시편119,147)
오늘 복음은 참 짧습니다. 단 두절입니다. 오늘 복음의 소주제를 보는 순간 참 신선한 느낌이었습니다. ‘참행복’ 누구나 소망하는 바, 참행복한 삶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행복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참행복한 삶은 우리의 권리이자 책임이자 의무입니다.
우리말 어법이 재미있습니다. ‘참(진;眞)’이 들어가는 말마디가 유난히 많습니다. 참행복, 참기쁨, 참평화, 참사랑, 참믿음, 참사람, 참말 등 ‘참(진실)’을 추구하는 우리 민족의 심성을 봅니다. 참에 반대가 거짓입니다. 그렇다면 거짓 행복, 거짓 평화, 거짓 희망, 거짓말도 많고 우리가 흔히 겪는 일입니다. 진선미眞善美중 가장 앞서 나오는 참 진眞입니다. 무엇이 참행복입니까?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명쾌하게 밝혀 주십니다. 거짓 행복이 아니라 참행복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참평화이듯 세상이 줄 수 없는 참행복입니다. 일시적 행복이 아니라 영원한 참행복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를 참행복한 삶에로 이끌어 줍니다.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의 기적과 더불어 논쟁에서의 통쾌한 승리를 목격한 군중들중 어떤 여자가 부러움 가득한 심정으로 큰소리로 말합니다. 세상 어머니들의 공통적 심사의 반영일 것입니다. 어떤 여자는 예수님을 통해 참행복을 발견한 것입니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예수님과 성모님에 대한 최고의 찬사입니다. 사실 예수님과 성모님은 참행복했던 분들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 우리에게 큰 위로와 기쁨이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오늘 복음의 핵심입니다. 여기서 ‘오히려’라는 말마디가 중요합니다. 내용인즉 마리아 성모님이 예수님을 낳아 기르신 까닭에 행복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신앙인들 가운데 한 분이신 까닭에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마리아 성모님의 경청과 겸손, 순종의 실천에 이르는 믿음의 여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평생을 경청과 순종의 믿음으로 사신 성모님은 참행복한 분이셨습니다.
이런 성모님뿐 아니라 누구나에게 열린 참행복입니다. 참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가까이 있습니다. 참행복 역시 주님의 은총이자 발견이요, 우리의 선택이자 훈련이요 습관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삶의 선택이요 결국은 경청과 실천의 훈련을 통한 참행복의 생활화입니다.
바로 여기서 교회와 수도승 전통이 전하는 바, 렉시오 디비나 성독의 수행입니다. “경청-묵상-기도-관상-실천”으로 이뤄지는 렉시오 디비나의 생활화가 참행복의 지름길입니다. 성서의 렉시오 디비나는 시편성무일도와 미사의 공동전례는 물론 일상의 삶으로 확장됩니다.
이런 말씀의 경청과 순종의 훈련을 통해 비로소 참행복의 실현입니다. 그러고 보니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기도와 성독, 노동이 균형과 조화를 이른 수도원 일과표의 시스템이 참행복의 생활화를 위한 참 좋은 처방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누구나 참으로 행복할 수 있습니다. 참행복은 부단한 선택입니다. 한 두번 선택이 아니라 하루하루 날마다 참행복의 원천인 주님을 사랑하고 선택하여 말씀을 경청하고 실천하는 훈련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생명이요 빛이요 영인 말씀을 사랑합니다. 사랑하니 문득 어제 어느 자매가 미사 5대 신청과 더불어 휴대폰에 전해준 아름다운 감동적 부부애夫婦愛 실화 메시지입니다.
“21년째 파킨스 병으로 고생하는 자매입니다. 다행하게도 남편의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절 버티어 갑니다. 그 자매가 하는 말이 자신은 남편에게 사랑받기위해 태어났다고 합니다.”
얼마나 멋진 고백입니까! 남편에게 사랑받기위해 태어났다니 이보다 남편에 대한 큰 찬사와 보람도 없을 것입니다. 사랑으로 구원받은 참행복한 부부입니다.
이 말마디는 하느님을 믿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됨을 깨닫습니다. 바로 우리는 하느님께 사랑받기위해 태어났다는 것, 이것이 우리 삶의 존재이유입니다. 고백성사시 보속으로 자주 써드리는 말씀 처방전, 이사야서 아름다운 말씀도 생각납니다.
“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귀염둥이, 나의 사랑이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보살펴 준다.”(이사43;4ㄱ.5ㄱ)
우리 모두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고백입니다. 이렇게 주님 사랑을 깨달아 갈 때 자존감 높은 삶이요 정체성 또렷한 삶이요, 바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바로 이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 하느님 사랑이요 말씀에 대한 사랑과 경청, 그리고 실천입니다. 참행복에 이르는 첩경의 지름길입니다.
이처럼 참행복은 멀리 있는게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 발견하여 부단한 선택과 더불어 훈련에 달렸음을 봅니다. 새삼 행복은 발견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지금 여기에 있는 행복을 무지로 인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해 놔두고 엉뚱한 밖에서 행복을 찾는 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말씀의 경청과 실천이 참행복과 참믿음의 지름길입니다. 참으로 끊임없이 말씀을 듣고 지키는 수행중에 날로 더해지는 믿음에 참행복한 삶입니다. 이미 세례를 통해 우리는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다면, 여러분이야말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약속에 따른 상속자입니다.”
세례성사 은총을 끊임없이 강화해주는 성체성사 미사은총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과의 일치를 날로 깊게해주는 성체성사의 은총이 참행복의 원천입니다. 참으로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경청하고 믿고, 일상의 삶에서 실천함으로 하루하루 참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된 우리들입니다.
"주님 사랑 우리 위에 꿋꿋하셔라
주님의 진실하심 영원하셔라."(시편117,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