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여정 -겸손과 순종, 만남과 치유, 감사와 찬양-2022.10.9.연중 제28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Oct 0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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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9.연중 제28주일                                              열왕기상5,14-17 2티모2,8-13 루카17,11-19

 

 

 

치유의 여정

-겸손과 순종, 만남과 치유, 감사와 찬양-

 

 

 

가장 많이 듣고 가장 많이 받는 인사가 건강하시라는 것입니다. 영육간의 건강을 비는 인사입니다. 사실 영육간에 병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모두가 정도나 양상의 차이일뿐 병자입니다. 그래도 수십년간 쓸수 있는 사람만큼 정교하고 완벽한 기계도 없을 것입니다. 창조주, 하느님 솜씨가 얼마나 깊고 오묘한지 감탄하게 됩니다. 몸을 통한 하느님 체험이며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제가 고백성사중 보속으로 가장 많이 써드리는 ‘영육의 말씀 처방전’은 다음 바오로 사도의 말씀입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5,16-18).

 

아직 영육의 건강에 이보다 더 좋은 처방전 말씀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살아야 영육의 건강, 특히 영혼의 건강입니다. 제가 우리 수도형제들을 사랑하는 것도 영혼의 건강 때문입니다. 영혼이 건강하면 육신의 관리도 용이해집니다. 바로 수도형제들의 담백하고 순수한 형제애, 아가페 사랑이 영혼 건강의 표지입니다.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다음 성규 72장을 믿고 살아가기에 이런 사랑에 영적건강입니다.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하고, 

육체나 품행상의 약점들을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며, 

서로 다투어 순종하고, 

아무도 자신에게 이롭다고 생각되는 것을 따르지 말고, 

오히려 남에게 이롭다고 생각되는 것을 따를 것이며, 

형제적 사랑을 깨끗이 드러내고, 하느님을 사랑하여 두려워할 것이며, 

그리스도보다 아무 것도 낫게 말것이니,

그분은 우리를 다 함께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베네딕도회 수도공동체의 사랑의 대헌장 같은 깊고 아름다운 내용으로 이 말씀을 명심하고 살아가기에 담백하고 순수한 아가페 사랑입니다. 정말 이런 사랑을 지닌 이들이 건강한 영혼들입니다. 제가 오래전부터 강조하는 노년의 품위유지를 위한 필수적 세 우선순위입니다.

 

“첫째 하느님 믿음, 둘째 건강, 셋째 돈이 노년의 품위유지를 위한 기본 조건이다. 이 우선 순위가 절대로 바뀌어선 안된다. 참으로 하느님 믿음이 영육의 건강과 품위를 위한 최우선 요소다. 노년뿐 아니라 인간의 품위 유지를 위한 필수적 우선 순위다.”

 

어제는 모처럼 여덟분 형제자매들의 피정지도가 있었습니다. 강의는 제가 좋아하는 가장 필요하다 싶은 ‘희망의 여정’이었습니다. 끝으로 드린 결론 말씀에 모두 진지해지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대로 오늘 미사에 참석한 사랑하는 모든 형제자매님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가장 아름다운 계절에, 가장 아름다운 주님을 만나,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자, 오늘 가장 아름다운 곳 수도원에 하루 순례피정을 왔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여정을 일일일생 하루로, 일년사계 사계절로 압축해 보면 어느 시점에 와 있는지 점검하며 날마다 삶을 재정비하시기 바랍니다. 환상은 사라지고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 인생, 오늘 지금 여기서 본질적 깊이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인생을 하루로, 또 일년사계로 압축했을 때 어느 시점에 와 있습니까? 어제 피정오신 분들은 이구동성으로 하루중 오후 3-4시, 일년사계중 가을이라 했고, 저는 과연 가을인생을 보람있게 살아가는지 물었습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 기도의 계절, 수확의 계절이라 하는데, 과연 공부많이 하고, 기도많이 하고, 영적열매 잘 무르익어가는 가을인생인지 물었습니다. 좀 지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겨울철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며 저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을 생각했습니다. 전화위복의 삶, 바로 파스카의 삶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을 만나 치유받은 나병환자들, 나병으로 절망하여 자포자기한 것이 아니라 열심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아 만나 치유받았으니, 역설적으로 전화위복 나병은 축복과 감사의 계기가 되었고 삶은 한층 깊어졌을 것입니다. 

 

만일 이들에게 이 나병이 없었더라면 평생 주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축복과 감사에 대한 생각도 미약했을 것이며 삶도 깊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아픔이나 고통에 절대로 좌절하지 마시고 그럴수록 주님께 가까이 이르도록 열심히 노력하여 겸손하고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전화위복의 삶으로 만드십시오. 정말 아프고 힘들수록 ‘열심’과 ‘겸손’, ‘자비’의 수행에 더욱 박차를 가해 축복과 감사의 삶이 되도록 하십시오.

 

참으로 나병 덕분에 겸손히 자비송을 바치는 나병환자들입니다. 정말 부끄러워할 것은 영육의 ‘병’이 아니라 영육의 ‘죄’입니다. 정말 두려운 것은 병으로 인한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죄로 인한 영혼의 죽음입니다. 탐욕, 간음, 탐식, 낭비, 질투, 시기, 혐오, 차별, 폭행, 배척, 미움, 분노, 나태, 허영, 교만, 거짓, 위선, 인색, 중독등 이런 부정적 영적나병의 죄들을 정말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해야 할 것이고 주님을 만나 회개와 더불어 치유받아야 비로소 영육의 건강입니다. 바로 복음의 나병환자들처럼, 영적나병 환자들인 우리는 회개하는 마음으로 방금 자비송을 바치며 미사를 시작했습니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우리가 궁극으로 바칠 청원기도는 간절한 믿음으로 바치는 자비송 하나뿐입니다. 자비송과 더불어 회개와 겸손이 뒤따르고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 치유를 받습니다. 그 당시 나병환자들 모두가 주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 참으로 자포자기 하지 않고 주님을 찾았던 열 사람만이 주님을 만나 치유를 받았습니다. 참으로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야 치유요, 그래서 이 거룩한 미사에 참석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복음의 예수님과 똑같은 파스카의 예수님을 만나 치유받는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말씀하셨고, 그대로 믿고 순종하여 떠나는 순간 몸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에 발생합니다. 치유받은 열명중 한명만이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의 발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참으로 육신의 치유에 이어 찬양과 감사가 뒤따라야 온전한 영육의 전인적 치유인데 아홉은 반쪽의 치유만 받은 꼴이 되었습니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바로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어느쪽입니까? 아홉명 쪽입니까? 감사와 찬양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러 온 한명 쪽입니까? 참 안타깝게도 온전한 전인적 치유를 받은 사람은 하느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림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린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예수님의 완전한 치유의 구원 선언입니다. 이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하느님 찬양과 감사로 표현되는 믿음이요 이 믿음으로 치유의 구원을 받아 파스카의 부활의 삶을 살게 된 치유받은 나병환자 한 사람입니다. 영육의 전인적 치유의 구원에 하느님 찬양과 감사가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지, 제1독서 열왕기 하권의 주인공 나병환자 시리아 사람 나아만도 그 좋은 증거입니다.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가 명령한대로 겸손히 순종의 믿음으로 요르단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그자 나병환자인 나아만은 어린아이 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 졌습니다. 이어 나병환자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감사를 드리니 복음의 치유받은 사마리아 사람처럼 비로소 영육의 온전한 전인적 치유입니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이 종이 드리는 선물을 부디 받아 주십시오.”

 

이에 대한 엘리사의 반응은 얼마나 멋진지요! 참으로 영육으로 온전히 건강한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입니다. 

 

“내가 모시는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결코 선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선물을 받아 달라는 거듭된 청에도 엘리사는 요지부동입니다. 엘리사도 멋지고, 이에 대한 나아만의 순수한 마음의 반응도 감동적이고 멋집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정말 아름다운 참 사람 둘을 만나니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시다면, 나귀 두 마리에 실을 만큼의 흙을 이 종에게 주십시오. 이 종은 이제부터 주님 말고는 다른 어떤 신에게도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을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일편단심 겸손히 열심히 하느님만 사랑하고 섬기겠다는, 참으로 흙처럼 겸손하고 낮아진 나아만의 약속입니다. 오늘 말씀의 주인공들은 둘 다 유다인이 아니라 이방인입니다. 복음의 사마리아 사람과 열왕기 상권의 시리아 사람 나아만이 우리에게는 빛나는 회개의 표지가 됩니다. 참으로 찬양과 감사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전인적 구원의 치유에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여러분도 사마리아 사람처럼, 시리아 나아만처럼 치유받고 싶습니까? 시공을 초월하여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은 살아 계신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님을 기억하십시오. 사랑하십시오. 섬기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님께 대한 기억과 열렬하고 한결같은 섬김의 사랑은 전인적 치유의 구원에 결정적입니다. 다음 바오로 사도가 사랑하는 테모테오에게 준 말씀은 그대로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섬기십시오. 그분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 나셨습니다. 이것이 나의 복음입니다. 이렇게 되살아 나신 파스카의 주님께서 친히 집전하시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이 말은 확실합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면, 그분과 함께 살 것이고, 우리가 견디어 내면,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이며, 우리가 그분을 모른다고 하면 그분도 우리를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성실하지 못해도, 그분께서는 언제나 성실하시니, 그러한 당신 자신을 부정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님을 기억하고 사랑하여 섬길 때 온전한 치유의 구원에 주님을 닮아 참으로 영육으로 건강한 삼실의 사람, 즉 진실, 절실, 성실의 참 사람이 됩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우리 삶은 치유의 여정입니다. 주님을 만나 끊임없는 회개와 더불어 치유입니다. 겸손과 기도, 만남과 치유, 찬양과 감사중에 이뤄지는 복된 치유의 여정입니다. 끝으로 제 좋아하는 행복기도로 강론을 마칩니다.

 

“예수 그리스도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기쁨, 저의 행복, 저의 평화, 저의 희망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선물의 하루, 파스카의 삶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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