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4.금요일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1538-1584) 기념일
필리3,17-4,1 루카16,1-8
성인성월(聖人聖月)
-성인이 되십시오-
11월은 위령성월입니다. 가톨릭 교회의 가을이 참 좋습니다. 9월 순교자 성월, 10월 묵주기도 성월, 11월 위령성월의 가을은 그대로 기도의 계절입니다. 정말 많이 기도하고, 많이 공부하고, 많이 회개하고, 많이 사랑과 겸손과 지혜를 배워야 하는 만추晩秋의 아름다운 가을입니다. 허무와 무지의 어둠이 깃들 여지가 없는 기도의 계절, 은총의 계절, 빛의 계절인 가톨릭 교회의 가을입니다.
11월1일, 위령성월의 첫날은 모든 성인 대축일이었습니다. 마침 어제 성녀처럼 사시다가 성녀처럼 미사중 선종하신 어느 수녀님이 이날 입관식을 했고, 11월2일 위령의 날에 장례미사를 봉헌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 정말 성녀처럼 사신 수녀님이구나!’ 깨달음처럼 스친 생각과 더불어 하느님의 자비로운 섭리에 감동했습니다.
“성인이 되십시오.”
요즘 자주 권하는 말씀입니다. 사실 제 소박한 소원도 성인이 되고 싶다는 것이며, 누구나 믿는 이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성인이 되고 싶은 갈망이 있으며, 이런 청정욕淸淨慾은 얼마든지 좋습니다. 참으로 주님을 닮은 참나의 성인이 되었을 때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누리는 참자유, 참기쁨, 참평화, 참행복의 하늘나라 삶입니다. 베네딕도 성인도 그의 규칙서에서 우리를 격려합니다.
“성인이 되기 전에 성인으로 불리우기를 바라지 말고, 참으로 성인으로 불리어지도록 먼저 성인이 되라.”(성규4,62)
사실 세례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모두 성인이 되라 불림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11월 위령성월慰靈聖月을 성인성월聖人聖月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만추의 가을, 성인이 되도록 특별히 노력하는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11월은 위령성월이자 성인성월입니다. 11월1일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 저녁성무일도 마리아의 노래 후렴은 곡도 가사도 아름답고 흥겨워 11월 한달동안 끊임없는 노래 기도로 바치려합니다. 책상 앞에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펼쳐 놓았습니다.
“성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기뻐하는 그 나라가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흰옷을 입고 어린양을 따라가는도다.”
또 하나 성인이 되어 살 수 있는, 제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기도문을 소개합니다. 참 자주 인용하지만 늘 읽을 때마다 힘이 나고 새롭습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받으소서.”
하루하루 이렇게 살면 내일은 내일대로 잘 될 것이니 걱정할 것 없습니다. 선종의 복된 죽음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입니다. 만46세로 선종하기 까지 불꽃처럼 치열한 삶을 살았던 성인이요, 그의 삼촌은 비오 4세 교황입니다. 비오 4세 교황에 이어 강력한 교황의 후보였지만 성인은 겸손히 사양했고 24년 동안 밀라노 대교구장이 되어 눈부시게 활약했습니다. 성인의 감동적인 말년 행적을 소개합니다.
‘1576년, 밀라노에 흑사병이 창궐하자 성인은 병자들을 돕고 시신을 매장하는 데 온갖 도움을 제공하였다. 귀족들이 흑사병을 피해 모두 도망쳤을 때도 성인은 위험에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밀라노에 남아 흑사병이 유행하는 중에도 병자들을 일일이 찾아가 위로하며 병자성사를 주었고, 식량을 나누어 주었으며, 예방법을 주지시켰다.
성인은 오랜 극기와 과로로 핍진되어 1584년 11월3일 밀라노에서 46세로 선종하였고, 1610년 교황 바오로 5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인이 선종 직전 마지막 남긴 말, 임종어입니다.
“주님, 제가 여기 대령했나이다.”
얼마나 멋진 임종어인지요! 늘 주님 앞에서 깨어 살았던 삶임을 입증하는 성인의 임종어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라 하시며, 먼저 세상 맛에 자기를 잃고 난잡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 대해 개탄한후 우리 모두 하늘의 시민으로 성인답게 살 것을 격려합니다.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끝은 멸망입니다. 그들은 자기네 배를 하느님으로, 자기네 수치를 영광으로 삼으며 이 세상 것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구세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사도의 마지막 주님을 대신한 격려 인사는 참 고무적이고 아름답습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형제 여러분, 나의 기쁨이며 화관인 여러분, 이렇게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으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오늘 복음에서 약은 집사의 비유를 통해 성인이 되는 비결을 가르쳐 주십니다. 영적일수록 현실적입니다. 위기에 처했을 때 미래를 대비하는 약은 청지기의 민첩하고 신속한 대응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어떤 부자인 주인은 이 불의한 집사의 죄를 추궁하기는커녕 칭찬합니다. 사실 주인은 내심으로는 묵인하며 흡족해 했을 것입니다.
왜냐, 이렇게 하라고 말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데 제가 알아서 스스로 살길을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부자에게 이런 손실은 새발의 피일 것입니다. 새삼 어떤 부자인 주인이 상징하는바 너그럽고 자비로운 주님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얼마나 멋진 주님이요, 기민하고 과감하게 위기를 타개한 약은 집사인지, 순진한 바보가 되지 말고, 그의 처신을, 현실적 지혜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결론 말씀입니다.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빛의 자녀들인 우리들도 세상의 자녀들 못지 않게 영리하라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빛의 자녀, 성인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의 설명이 명쾌하여 그대로 인용합니다.
“여러분, 집사의 비양심적인 면은 일단 덮어둡시다. 다만 그가 얼마나 민첩하게 실직 대책을 세우는지 눈여겨 봅시다. 과연 그는 약삭빠르게 실직 위기에 대처했습니다. 이제 여러분도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종말의 심판이 곧 닥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집사마냥 민첩하게 대책을 세우시오. 어서 회개의 결단을 내리라는 말입니다.”
끊임없는 기도와 끊임없는 회개가 성인이 되게 합니다. 회개 은총과 더불어 뛰어난 위기 대처의 지혜도 지니게 됩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사랑과 지혜를 겸비한 빛의 자녀로 성인다운 삶을 살게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