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0.연중 제34주일(세계 젊은이의 날, 성서주간)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2사무5,1-3 콜로1,12-20 루카23,35ㄴ-43
그리스도왕 중심의 삶
-찬미의 삶, 평화의 삶, 섬김의 삶-
오늘은 연중 제34주일, 마지막 주일이자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또 제37차 세계 젊은이의 날이자 제38차 성서주간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마리아는 일어나 서둘러 길을 떠났다”(루카1,39참조)라는 제하에 “어려운 이들 향해 성모님처럼 나아가자”라며 담화문을 발표했고,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위원장 신호철 주교는 ‘말씀의 시편’이라는 시편119장중 “새벽부터 일어나 도움을 청하며, 당신의 말씀에 희망을 둡니다”(시편119,147)라는 제하에 “직접적 만남과 소통으로 말씀을 선포해야한다.”는 시의적절한 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그리스도왕 대축일이 참 풍부하게 느껴집니다. 예나 이제나 힘들고 혼란스런 세상입니다. 대축일의 유래가 극단적인 대립과 분열, 갈등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깊은 성찰을 하게 합니다. 1925년 교황 비오 11세는 당시 세계에서 날로 확산되어 가는 극단적 민족주의와 세속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온 세상의 왕인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성대히 기리는 축일을 제정하였고, 이어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는 “온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으로 새로 명명하면서,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이자 대림 제1주일 전주일로 옮겨 기념하게 합니다.
까닭인즉 그리스도는 천상교회와 지상교회의 구분없이 모두를 다스리는 왕이며 교회 전례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대림 제1주일이 되기 전에 모든 것을 정리한다는 의미로 한 것이며, 축일도 최고 등급인 대축일로 지정합니다. 아침 성무일도의 하느님 찬미는 얼마나 장엄하고 아름다웠는지요! 가톨릭 교회의 아름다움은 전례의 아름다움이며, 하느님의 아름다움의 반영입니다. 성가연습시 흥겹게 불렀던 아름다운 찬미들이 새삼 감동이었습니다.
1.“왕중의 왕이신 그리스도께 어서와 조배드리세.”-초대송 후렴
2.“예수님 놀라우신 임금이시여, 우리의 위대하온 승리자시여
말로다 표현못할 감미이시여, 온전히 갈망할수 있는님이여”-찬미가 1절
3.“보라, 떠오르는 태양이라 일컬어지는 분을, 그는 옥좌에 앉아 다스리시며,
모든 민족에게 평화를 전하리라.”-아침기도 후렴1.
4.“그분은 땅 극변까지 찬양을 받으시고 평화를 이룩하시리라.”-아침기도 후렴2.
5.“만왕의 왕, 군주의 군주이신 예수께 영광과 주권이 있으소서.”-아침기도 후렴3.
우리 믿는 이들은 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살면서도 그리스도왕을 모시고 그리스도 왕국에서 내적평화와 안정을 누리고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삶의 목표를, 방향을, 중심을, 의미를, 길을 잃고 뿌리없이 방황하고 표류하는 혼란중에 살아가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그러나 우리 믿는 이들은 다릅니다. 궁극의 삶의 목표이자 삶의 방향이신, 삶의 중심이자 삶의 의미이신, 삶의 길이신 ‘온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을 늘 모시고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며 그리스도왕 중심의 삶을 새롭게 합시다. 마치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온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을 잘 드러내는 것 같아 마음이 흡족합니다. 얼마전 2013년 교황님으로 등극한후 10년째, 다음과 같이 당신의 소감을 피력합니다.
“나의 성소에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놓으시고 보내주신 곳에서 나는 언제나 행복했습니다. 나는 어떤 것을 얻은 것이 아니라, 어느 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섬김입니다. 교회가 나에게 그것을 요구했습니다. 성 이냐시오의 날마다의 양심 성찰이 나에겐 참 중요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좋고 나쁜 일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며 사람들의 말을, 특히 작은 이들: 어린이들, 노인들, 가난한 이들의 말을 경청하게 합니다. 12월중 86회 생일이 가까워지는 지금 나는 고요함과 큰평화, 진정한 기쁨, 온전한 신심을 느낍니다. 나는 기도중에, 미사거행중에, 만나는 모든 이들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합니다.”
얼마나 멋지고 행복한 교황인지요! 어떻게 살아야 우리도 교황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을 날로 잘 닮아갈 수 있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한결같이 다음처럼 살면 됩니다.
첫째, ‘찬미의 삶’입니다.
한결같이 찬미의 삶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한결같은 찬미를 통해, 아버지를, 아드님을 닮아가는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입니다. 그러니 숨쉬듯이 아버지를 찬미하고 아드님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제2독서 콜로새서의 그리스도의 찬가는 얼마나 우주적이고 웅대하고 장엄하며 아름다운지요! 우리는 행복하게도 평생 매주간 수요일 저녁성무일도때마다 오늘 콜로새서의 그리스도 찬미가(콜로1,12-20)를 통째로 부릅니다. 어디서 이런 끝없는 신비와 깊이를 지닌 찬미가를 만날 수 있겠는지요!
빛의 나라에서 받는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주신 아버지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이어지는 그리스도왕께 대한 찬미에서 가슴 떨리는 감동을 선사하며 찬미의 절정을 이룹니다. 그리스도왕의 정체가 환히 계시됩니다.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십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왕권이든 주권이든 권세든 권력이든,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만물에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그분은 또한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시작이시며,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맏이이십니다. 그리하여 만물 가운데에서 으뜸이 되십니다.”
우리의 그리스도왕은 바로 이런 분입니다. 세상에 그리스도왕께 속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왕이기에 교회를 통해 서서히 확장되는 그리스도왕국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아버지를, 아드님을 찬미하는 삶에 늘 한결같은 열정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평화의 삶’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입니다. 제1독서에서 기름 부음을 받고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고 영도자가 된 다윗은 평화의 왕, 예수님의 예표가 됩니다. 그리스도왕을 통한 화해, 평화, 충만함임을 깨닫습니다. 콜로새서 그리스도 찬미가 후반 내용이 참 반갑고 고무적입니다.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해서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화해시키셨습니다.”
평화의 삶이 거룩한 삶입니다. 평화 역시 은총이자 선택이요 훈련이자 습관입니다. 찬미와 더불어 평화의 삶입니다. 미사은총이 바로 우리를 주님을 닮은 평화의 사람, 화해의 사람이 되게 하고 또 충만한 삶으로 이끕니다. 오늘 감사송에서 주님의 나라는 평화의 나라안으로 수렴됨을 봅니다.
“그 나라는 진리와 생명의 나라요,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이며,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이옵니다.”
이런 그리스도왕께서 선사하시는 평화가 우리 모두 평화의 사람이 되어 살게 합니다. 참으로 평화가 절박한 작금의 시대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인터뷰에서 전쟁의 어리석음을 강조하며, “한 세기에 무려 3개의 세계 전쟁이 일어났다! 그리고 우리는 배우지 못했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통해 배우지 못한 인간의 어리석음을 개탄했습니다. 주님이 간절히 바라는 바, 평화의 삶입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5,9)
셋째, ‘섬김의 삶’입니다.
그리스도왕은 섬김의 왕입니다. 온유와 겸손의 예수성심의 사랑은 섬김의 삶을 통해 환히 드러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섬김의 왕으로서 주님의 진면목이 잘 드러납니다. 지도자들도, 군사들도, 죄수 하나도 무지에 눈이 가려 그리스도왕을 알아보지 못하고 조롱합니다만, 예수님은 의연하고 담담하고 침착합니다.
다만 눈밝은 죄수 하나만이 예수님을 알아 보며, 자신을 기억해 주십사 청하며 섬김의 왕, 그리스도께서 흔쾌히 이를 약속하십니다.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늘 우리를 섬길 태세가 되어 있는 섬김의 왕, 그리스도왕입니다. 마침 금주 가톨릭평화신문 1면 기사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섬김의 삶 모범 ‘영등포의 슈바이처’기리다. 서울대교구, ‘기억하다. 빛과 소금이 된 이들’ 두 번째 선우경식 원장 기림 미사 봉헌”이란 제목입니다. 그리스도왕을 닮는 길은 오직 하나 한결같이 섬김의 삶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을 닮고 싶습니까?
1,늘 찬미의 삶을 사십시오.
2.늘 평화의 삶을 사십시오.
3.늘 섬김의 삶을 사십시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을 닮은 찬미의 삶, 평화의 삶, 섬김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온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께 사랑을 고백하며 강론을 마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감사합니다.
기뻐합니다.
차고 넘치는 행복이옵니다.
이 행복으로 살아갑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나라 천국이옵니다.
주님,
당신은 저의 모두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