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5.연중 제34주간 금요일 묵시20,1-4.11-21,2 루카21,29-33
-“새 하늘과 새 땅”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느님의 나라이다-
“보라,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묵시21,3ㄴ참조)
화답송 후렴이 은혜롭습니다.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오늘 지금 여기 공동체가 하느님의 거처라는 것입니다. 주 하느님을 만나야 할 곳, 바로 내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꿈이, 궁극의 희망이 있어야 삽니다. 바로 하느님 나라의 꿈, 새 하늘과 새 땅의 꿈입니다. 예수님의 평생 꿈이, 화두가 하느님의 나라였습니다. 사실 무지의 눈만 열리면 곳곳에 널려 있는 하느님 나라의 표징들입니다. 오늘 주님은 묵시록의 사탄의 패망에 이어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의 궁극의 꿈, 비전을 보여줍니다. 선물처럼 펼쳐지는 오늘 제1독서 묵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의 비전입니다.
“나는 또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로 더 이상 없었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대로 참 좋은 하느님의 선물이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입니다. 참으로 이런 꿈을, 희망이, 비전을 지니고 살 때 하느님 중심의 삶에 마음의 순수요 매사 초연할 수 있습니다. 현실주의적 이상주의자의 삶에 올바른 식별의 지혜도 가능합니다. 바로 오늘 복음인 무화과 나무의 비유에 대한 답이 됩니다.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잎이 돋자마자, 너희는 그것을 보고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아라.”
앞서의 종말의 사건들을 보면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임재해 있음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눈만 열리면 곳곳에 널려 있는 하느님 나라의 표징들입니다. 눈만 열리면 오늘 지금 여기가 새 하늘과 새 땅의 하느님 나라, 새 예루살렘입니다. 다음 행복기도 내용 그대로입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느님의 나라 천국이옵니다.”
마침 어제 읽은 아름다운 찬미가도 생각납니다. 1880년경, 독일 개신교에서 불렸던 성가입니다.
“당신의 불을 붙이소서,
주여, 내 마음에
밝게 타오르게 하소서, 사랑하는 구원자여
내 존재, 내가 가진 것, 당신 소유가 되리니
당신의 품에 나를 꼭 안으소서.
생명의 샘, 기쁨의 샘,
당신은 내 영혼의 어둠을 밝히시리니
당신은 내 기도를 들으시고, 모든 곤궁에서 도우시리니
예수님, 나의 구원자, 나의 주 하느님.”
바로 우리 구원자, 우리 주 하느님, 예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의 하느님 나라의 꿈의 실현입니다. 이런 예수님과 일치가 깊어질수록 우리 또한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느님 나라를 살 수 있습니다. 참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의 꿈의 실현인 예수님과 함께 깨어 사는 이들에게 선사되는 하느님 나라의 표징들입니다.
지나가는 세상에 살면서도 지상 삶에 매몰되지 않고 이탈의 초연한 삶, 자유로운 삶입니다. 말그대로 현실주의적 이상주의자의 삶입니다. 오늘 복음 말미의 예수님 말씀이 깊은 위로와 힘을 줍니다. 여전히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요 빛입니다. 우리의 궁극의 새 하늘과 새 땅의 꿈을 늘 새롭게 하면서 실현시켜 주는 것이 바로 말씀의 힘이요 위력입니다. 모두가 다 사라져도 하느님은, 파스카 예수님은, 주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바로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새 하늘과 새 땅의 하느님 나라를, 새 예루살렘을, 영원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을 찬양하여라, 모든 사람들아,
우리 위한 주님 사랑 굳건하여라.”(시편117,1-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