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을 삽시다 -꿈. 공부, 찬양, 회개-2022.12.4.대림 제2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Dec 0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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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4.대림 제2주일                                                                이사11,1-10 로마15,4-9 마태3,1-12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을 삽시다

-꿈. 공부, 찬양, 회개-

 

 

오늘은 대림2주일이자 제41회 인권 주일이며 제12회 사회교리 주간 첫날입니다. 주님 오실 날도 점차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영롱하게 빛나는 대림초 둘이 우리 내면의 어둠을 환히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이 실감있게 마음에 와닿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세례자 요한이 주님의 길을 마련하고 그분의 길을 곧게 내라며 우리의 분발을 촉구합니다. 오늘 인권주일과 사회교리 주간과도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길을 곧게 내면서 제대로 인권을 누리며 살게 하기위한 구체적 처방이 사회교리입니다.

 

“사회교리는 모든 사람의 존엄성을 수호하고 공동선을 증진할 수 있도록 사회의 다양한 영역의 현실을 관찰하고, 복음에서 제시하는 기준으로 성찰하며, 성찰한 바를 구체적인 행동에 옮길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합니다.” 

 

그대로 인권신장과 유지를 위한 사회교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영성공부와 필히 함께 가야할 사회교리 공부입니다. 방금 흥겹게 부른 화답송 후렴의 시편 기도가 이런 우리의 열망을 표현합니다.

 

“정의가 꽃피는 그의 성대에 영원히 평화넘치리이다.”

 

정의가 꽃피고 평화가 넘치는 세상은 예언자들은 물론 우리 인류의 가장 깊은 염원이기도 할 것입니다. 도처에서 정의와 평화가 유린되는 세상을 목격하곤 합니다. 어제 국회앞에 모인 민주노총 6000명의 노동자 대회의 다음 구호를 통해 정의와 평화가 얼마나 절실한 지 깨닫습니다.

 

“죽일테면 죽여라. 어차피 이렇게는 못산다.”

 

어제 가톨릭 평화신문은 인권주일을 맞이하여 ‘청년 자살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라는 제하에 문제점과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자살 사망자들은 2778명이었고 그중 20대 사망자들은 56.8%인 1579명 하루 4명꼴이며 그 추세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합니다. 이런 현실에 대한 전문가의 조언입니다.

 

“자살예방은 사라져가는 사람들을 삶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역할이지만, 사람은 삶의 일정 조건들이 충족돼야 살 수 있기 때문에 예방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자살 원인을 해결하려는 사회적 분위기 형성이 중요하다. 인간은 ‘죽고 싶은’ 충동보다 ‘말하고 싶은’ 충동이 강하다. 그러므로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지지해주는 이만 있어도 자살 충동은 크게 줄 수 있다.”

 

이런 작금의 어둔 현실 앞에 참으로 믿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이 절박한 문제로 대두됩니다. 그리하여 대림2주일 강론 제목은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으로 정했고 그 구체적 방법을 나눕니다.

 

첫째, “꿈꾸라!”입니다.

꿈이, 희망이 있어야 삽니다. 사람만이 꿈을 꿉니다. 꿈과 희망이 없는 삶, 살아있다 하나 죽어있는 삶이요 괴물이나 폐인이 되기 십중팔구입니다. 꿈이, 희망이 있어야 끝까지 버텨내고 견뎌낼 수 있습니다. 꿈이 희망이 없으면 곧장 무너집니다. 꿈이 없는 세대는 길을 잃은 세대입니다.

 

꿈중의 꿈이 궁극의 꿈이 하늘나라의 꿈, 평화의 꿈입니다. 예수님은 물론 성서의 모든 예언자들이 하느님 꿈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 이사야 예언자가 제시하는 평화의 꿈, 유토피아의 꿈도 우리를 한껏 고무하며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 됩니다. 대림시기가 궁극으로 목표하는 바도 이런 모든 피조물이 평화롭고 정의롭고 조화로운 세상일 것입니다. 

 

“늑대가 새끼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도, 사람들은 악하게도 패덕하게도 행동하지 않으리니, 바다를 덮는 물처럼, 땅이 주님을 앎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고무적인 꿈이요 비전인지요! 그대로 성탄 밤미사 때 제1독서에서 노래하는 내용입니다. 바로 이런 평화와 조화의 세상이 우리의 궁극의 꿈입니다. 이런 평화의 꿈이 있어야 이상주의적 현실주의자로 살 수 있습니다. 끝까지 안주하거나 타락하지 않고 인간의 존엄한 품위을 유지하며 살 수 있습니다. 꿈을, 희망을 잃어가는 오늘날 세대입니다. 참으로 이런 하늘 나라의 꿈이 생생해야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둘째, “공부하라!”입니다.

꿈을, 희망을 키워주는 공부입니다. 하느님 공부, 성경공부, 말씀공부요, 졸업이 없는 평생공부입니다. 하느님을 알아야 나를 알 수 있고 비로소 무지로 부터의 해방입니다. 인간의 근원적 병인 무지의 병에 대한 유일한 구체적 처방인 하느님 공부, 말씀 공부를 통해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빛이요 생명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하느님을 알아가고 나를 알아 갈수록 자유로운 삶에 하늘나라의 꿈도 희망도 늘 생생히 지닐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성경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성경에 미리 기록된 것은 우리을 가르치려고 기록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서 인내를 배우고 위로를 받아 희망을 간직하게 됩니다.”

 

성경공부는 꾸준해야 하고 한결같아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권하는 바, 매일미사책을 통한 하느님 공부, 말씀공부입니다. 입당송부터, 영성체후 기도까지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마음에 간직하며 기본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생활화, 말씀의 일상화, 말씀의 습관화에 매일미사책을 통한 공부의 수행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여기에 매일미사까지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겠습니다. 이렇게 부단히 말씀을 통해 영혼을 튼튼히 할 때 비로소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습니다.

 

셋째, “찬양하라!”입니다.

찬미, 찬양의 기쁨으로, 행복으로 살아가는 수도자들입니다. 믿는 이들의 궁극의 기쁨과 행복도 하느님 찬양에 있습니다. 하느님 찬양은 영혼의 본능입니다. 찬양의 기도와 삶을 통해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납니다. 제 행복기도중 다음 대목에서도 찬양의 중요성을 깨닫습니다.

 

“주님, 

끊임없는 찬양과 감사의 삶중에

당신을 만나니 

당신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며

기쁨과 평화, 희망과 자유를 선사하시나이다.”

 

바오로 사도 역시 찬양의 기도를 바칠 것을 권고합니다. 제2독서 후반부 말씀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인내와 위로의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뜻에 따라, 서로 뜻을 같이하게 하시어, 한마음 한목소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을 찬양하게 되기를 빕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께서 진실하심을 드러내시려고 할례 받은 이들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른 민족들이 자비하신 하느님을 찬양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그러기에 제가 민족들 가운데에서 당신을 찬양하고, 당신 이름에 찬미 노래 바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미와 찬양과 감사의 삶과 기도가 샘솟는 영적 삶의 원천이 됩니다. 하늘나라의 꿈도, 말씀공부도 하느님 찬미와 찬양의 기도와 삶을 통해 비로소 실현됩니다. 부단한 찬양의 삶이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게 합니다.

 

넷째, “회개하라!”입니다.

제1독서의 이사야가 평화의 꿈을 보여줬고 제2독서의 바오로 사도가 말씀공부와 찬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면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을 통해 회개를 강조합니다. 대림1주일의 주제가 “깨어있어라” 였다면 대림2주일의 주제는 “회개하여라”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유다 광야에서 우선 선포한 것도 회개입니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인생 광야 여정의 순례자들인 우리에게도 그대로 해당되는 진리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회개입니다. 이어 요한은 많은 바리사이와 사두가이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시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촉구합니다. 마음으로만 회개가 아니라 구체적 실천으로 드러나는 회개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고 말할 생각은 하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속에 던져진다.”

 

하느님의 심판 앞에 일체의 기득권은 무용지물임을 천명하는 세례자 요한입니다. 그리고 당신 뒤에 오실 예수님께서도 가차없는 심판을 하실 것을 예고합니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또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 마당을 깨끗이 하시어,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

 

과연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회개를 통한 알곡의 삶인지, 혹은 회개가 없는 쭉정이의 삶인지 뒤돌아 보게 합니다. 내 중심의 삶에서 하느님 중심의 삶으로 전환하는 것이 회개의 삶이요 알곡의 삶입니다. 구체적 회개의 실천으로 바오로는 서로 받아들일 것을 권고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기꺼이 받아들이신 것처럼, 여러분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서로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

 

회개의 은총입니다. 바로 우리가 대림시기 기다리는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우리의 회개를 도와주십니다. 이샤야 예언자의 말씀은 그대로 예수님을 지칭합니다.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결하지 않고,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리라.”

 

누구보다 우리를 잘 아시는 이런 성령 충만한 주님을 만날 때 저절로 회개의 은총이요, 우리 또한 성령 칠은을 받습니다. 또한 이런 성령의 은총이 우리를 끊임없는 구체적 회개의 실천으로 이끕니다. 참으로 이런 끊임없는 회개의 여정에 충실할 때, 비로소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이겠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은 막연하거나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1.늘 하늘 나라를 꿈꾸는 삶, 2.늘 말씀 공부에 충실한삶, 3.늘 하느님을 찬양하는 삶, 4.늘 회개의 삶을 살 때 비로소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런 성령충만한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게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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