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첫 순교자 성 스테파노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봅시다”-2022.12.26.월요일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Dec 2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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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6.월요일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사도6,8-10;7,54-59 마태10,17-22

 

 

 

사랑의 첫 순교자 성 스테파노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봅시다”-

 

 

 

“탄생하신 그리스도께서 오늘 복되신 스테파노를

 월계관으로 꾸미셨으니, 어서 와 조배드리세."

 

새벽성무일도 초대송이 은혜롭습니다. 오늘은 어제의 주님 성탄에 이어 첫순교자 성 스테파노 천상탄일입니다. 저는 마구간의 말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님을 보면서 골고타 언덕의 십자가의 주님을 연상했습니다. 성탄이 값싼 은총이나 낭만이 아닌 십자가의 현실임을 오늘 새로이 깨닫습니다. 결코 값싼 은총은 없습니다. 

 

34년 동안, 요셉 수도원에 정주한 이후 요즘처럼 계속되는 강추위는 처음입니다. 예전 어렸을 때 눈도 많고 몹시도 추웠던 50년대 겨울이 생각납니다. 강추위 중에도 아름다운 빨간 불꽃같은 사랑의 선물, ‘포인세티아’도 받았습니다. 자꾸 잊어버려 다시 확인한 이름입니다. 꽃말은 “뜨거운 마음으로 축하합니다. 축복합니다. 축복, 행복, 제 마음은 불타오르고 있어요.”란 뜻이라 합니다.

 

더불어 떠오르는 24년전 1998.12.25. 성탄절에 성 샤르트르 바오로회 김카타리나 수녀님에게 받은 빨간 칸나꽃 선물에 즉시 썼던 “늘 당신의 무엇이 되고 싶다”라는 시입니다. 

 

“당신이

꽃을 좋아하면

당신의 꽃이

 

당신이

별을 좋아하면

당신의 별이

 

당신이

하늘을 좋아하면

당신의 하늘이

 

되고 싶다

늘 당신의 무엇이

되고 싶다”-1998.12.25.

 

아마도 오늘 축일을 지내는 사랑의 첫 순교자 성 스테파노의 주님 사랑도 이러 했으리라 생각됩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22년전 2000년 봄에 쓴 “성 요셉”이란 시도 생각납니다. 주차장 앞 성요셉상 배경에 빨갛게 불타오르고 있던 연산홍을 보며 쓴 시입니다.

 

“말없이

고요해도

가슴은

타오르는 불이다

 

요셉상 옆

빨갛게 불타오르는 

사랑의 연산홍!”-2000.5.10.

 

성 요셉의 가슴에 빨갛게 불타올랐던 주님 사랑이요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사랑의 순교자 성 요셉이란 생각도 듭니다. 바로 이런 사랑의 요셉, 첫 순교자 성 스테파노를 닮은 오늘 축일을 지내는 76세 고령에 부원장직과 주방장직을 맡고 있는 ‘영원한 현역’의 주님 사랑의 전사, 스테파노 수사님입니다.

 

매해 친필 성탄카드를 보내 주는 이기헌 ‘사랑의 주교님’도 떠올랐고, 민주화운동의 대부이자 애국자인 영원한 청년 ‘사랑의 사제’ 81세 고령의 함세웅 신부(1942- )가 보내준 ‘함세웅의 붓으로 쓰는 역사기도’ 서예집도 어제 오후 감명깊게 독파讀破했습니다. 친필 인사 글씨에서도 요셉수도공동체에 대한 애정을 느꼈습니다.

 

“찬미 예수님, 성 요셉수도원 수사님들께. 함께 기도합니다. 2022.12 성탄 함세웅”

 

진짜에는 반드시 사랑이 앞에 붙습니다. 사랑의 성사, 사랑의 기적, 사랑의 시인, 사랑의 관상가, 사랑의 신비가, 사랑의 수행자, 사랑의 순교자등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랑의 첫 순교자 성 스테파노”라 정했고 부제는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님의 2022년 성탄 메시지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봅시다”를 택했습니다. 성탄 메시지중 일부 인용합니다.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진 아기 예수님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얼기설기 엮어진 마구간 지붕 사이로 밤하늘의 별들이 들어옵니다. 아기 예수님의 그 맑은 눈동자가 하늘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발밑만 보지 말고, 가끔은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시는 듯 합니다. 우리네 삶이 고달프고 팍팍하여 그저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리고 있는 우리에게,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멀리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눈을 들어 저 높은 하늘을 바라봅시다. 눈앞의 가치, 피상적인 가치를 넘어 추구해야 할 참된 가치가 있음을 기억합시다. 우리에게 오신 아기 예수님은 눈을 들어 더 높은 가치를 바라보라고 우리를 깨우치십니다.”

 

바로 이의 전형적 모범이 사랑의 첫 순교자 성 스테파노입니다. 지상에 살면서도 하늘에 계신 주님께 온통 신뢰와 희망과 사랑을 뒀기에 아무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는 주님 사랑의 전사로 항구할 수 있었고 마침내 주님의 전사戰士로써 사랑의 순교로 전사戰死할 수 있었습니다. 영적으로 싸우다 죽어야, 전사戰死해야 전사戰士라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객사나 사고사가 아닌 사랑의 전사戰死입니다.

 

하늘 은총 가득했기에 은총과 능력이 충만하여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고, 그 누구도 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대로 주 예수님을 닮은 행적이었습니다. 복음 말씀대로 아버지의 영이 늘 함께 했기에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아무런 걱정도 안했습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대로 오늘 축일을 지내는 순교자 스테파노를, 또 정주의 살아 있는 순교적 삶을 살고 있는 우리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을 두고 하는 말씀같습니다. 참으로 끝까지 견뎌내고 버텨낼 수 있는 인내력은 하늘에 계신 주님께 오로지 신뢰와 희망, 사랑을 둘 때 비로소 가능함을 깨닫습니다. 바로 성 스테파노의 다음 장면이 이를 입증합니다.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지상에 살면서도 늘 하늘에 계신 주님께 마음을, 눈길을 두고 살았던 성 스테파노였습니다. 성인의 전 삶이 그의 임종어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그대로 예수님을 닮은 영원한 감동을 선사하는 임종어입니다.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과연 우리의 임종어는 무슨 말마디가 될까요? 참으로 중요한 과제입니다. ‘순교는 성체와의 결합이다’라는 말이, ‘순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라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아무도 하느님을 대적하여 이길 수 없습니다. 바로 스테파노가 순교한 순간 하느님은 '신의 한 수' 와도 같은 비장祕藏의 무기를, 바로 바오로 사도가 될 순교의 증인 사울을 예비합니다. 다음 묘사안에 빛나는 하느님의 ‘심모원려(深謀遠慮)’의 지혜가 빛납니다. 성문 밖에서 스테파노의 죽음 역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흡사합니다. 

 

‘그를 성 밖으로 몰아내고서는 그에게 돌을 던졌다. 그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의 발 앞에 두었다.’

 

오늘의 첫 순교자 축일이 참 많은 가르침과 깨우침을 줍니다. 참으로 하늘에 계시면서 늘 우리와 함께 계신 초월超越과 내재內在의 주님께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두고 살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바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이렇게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주님은 하느님, 우리를 비추시네.”(시편118,26.2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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