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9.목요일 성탄 팔일 축제 제5일 1요한2,3-11 루카2,22-35
빛 속의 정주(定住) 생활
-사랑의 계명 준수-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를.
주님께 노래하여라, 온 세상아.”(시편96,1)
오늘 제1독서 요한1서 말씀은 그대로 복음에 대한 주석이 됩니다. 요한1서의 사랑의 계명 준수의 참 좋은 본보기가 오늘 복음의 성 시메온입니다. 성 시메온이야 말로 한결같이 빛 속에서 정주의 삶을 살았던 참 좋은 본보기입니다. 말그대로 사랑의 정주, 빛의 정주에 충실했던 성 시메온은 우리 정주서원을 살아가는 베네딕도 수도자들의 모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끔 강론시 인용했던 예화가 생각납니다. 여기 수도원에서 어떻게 무슨 재미, 무슨 맛, 무슨 기쁨으로 살아가느냐는 신자들의 물음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저뿐 아니라 우리 수도형제들의 답변은 똑같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맛, 기쁨, 재미로 살아간다. 찬미 맛, 말씀 맛, 기도 맛으로, 즉 하느님 맛으로 살아간다. 그러니 하느님께 맛들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주님이 얼마나 좋은지 맛보고 깨달아라’는 시편 말씀도 있지 않나? 환경은 물론이지만 주님과의 관계, 형제들과의 관계도 날로 좋아져야 한다. 날로 깊어지는 사랑의 관계가 힘이다. 관계의 힘이다.”
바로 이런 정주의 모범이 오늘 복음의 시메온입니다. 참으로 한결같이 빛 속에서 사랑의 정주에 항구했던 시메온입니다. 다음 묘사가 이를 입증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그대로 성령의 사랑, 성령의 위로, 성령의 빛 속에 한결같이 의롭고 독실하게 정주의 삶을 살았던 시메온임이 분명합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성령께 감사해야 하고, “오소서, 주 성령님” 기도해야 합니다. 바로 그 정주의 삶의 내용은 제1독서 요한 1서가 잘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잠시 ‘위로’에 대한 교황님의 좋은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위로는 영성생활에서 하느님의 놀라운 선물이다. 영적 위로는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볼 때, 심오한 내적 기쁨의 체험이다.”
이런 하느님의 위로를 기다리며 또 위로를 체험하며 정주의 삶에 항구했던 예루살렘의 성 시메온이며 이는 우리의 체험이기도 합니다. 정주의 삶에 충실할 때 세상이 주지 못하는 성령의 참 좋은 선물이 위로입니다.
오늘 제1독서 요한 1서의 말씀은 정주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실질적 도움이 됩니다. 온통 사랑의 계명 준수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랑의 정주에 온통 힘을 다하라는 그대로 오늘의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나는 그분을 안다.’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고 그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의 사랑이 완성됩니다. 그것으로 우리가 그분 안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 그분 안에 머무른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살아가신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바로 우리가 지켜야 할 말씀은 옛계명임과 동시에 새계명인 형제 사랑입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그대로 우리 정주의 삶과 직결됩니다. 예루살렘의 시메온 역시 이런 형제 사랑의 계명에 충실한 정주의 삶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우리를 찾아 오시는 주님은 사랑의 빛, 생명의 빛인 참빛입니다. 다음 지극히 평범한 말씀이 신선한 충격으로 마음에 와닿습니다.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비치고 있습니다. 빛 속에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둠 속에 있는 자입니다.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속에 머무르고, 그에게는 걸림돌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 속에 있습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서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새삼 사랑도 부단힌 선택이요 훈련이요 습관임을 깨닫습니다. 아니 사랑뿐 아니라 모든 수행 덕목이 선택이요 훈련이요 습관입니다. 이래야 비로소 내적자유와 내적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런 수행의 부단한 영성훈련없이는 참자유도 참평화도 참기쁨도 없습니다. 결코 값싼 자유, 평화, 기쁨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은 빛입니다. 사랑의 빛입니다. 형제 사랑을 선택하여 적극적으로 살아갈 때 비로소 사랑의 정주, 빛 속의 정주생활이 됩니다. 미움에 눈멀 때 캄캄한 어둠입니다. 스스로 자초한 미움이요 이보다 불행한 정주생활은 없을 것입니다.
며칠전 성탄 다음날 저녁식사시 로마 유학중인 엘리야 수사와 여기 수도형제들과의 하나하나 화상 통화시 화기애애했던 모습과 음성들이 생각납니다. 그대로 형제애가 가득 담겼던 표정이요 음성들이었고, 이 또한 적극적 사랑의 훈련임을 깨닫습니다. 사랑의 정주, 인내의 정주에 항구할 때, 때가 되면 시메온처럼 위로의 주님을 만납니다. 마침내 예수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감격에 벅차 찬미가를 바치는 시메온입니다.
이 또한 성서의 가난한 사람들, 아나뷤의 노래입니다. 우리 아나뷤의 후예들인 가톨릭교회의 수도자들이, 신자들이 잠자리에 들기전 끝기도 마지막에 부르는 시메온의 찬가에 이은 성모 찬가입니다. 정말 하루하루 날마다 끝기도시 ‘시메온 찬가’와 ‘성모 찬가’만 정성을 다해 노래해도 복된 선종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슬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루카2,29-32)
말 그대로 사랑의 정주에 항구했던 시메온에 주신 축복이요, 동시에 정주의 삶에 충실한 우리 믿는 이들에게 날마다 주시는 주님의 축복입니다. 시메온과 함께 주님과의 만남을 기뻐하는 이 거룩한 위로와 평화의 미사시간입니다.
“주님께 노래하여라, 그 이름을 찬미하여라.
나날이 선포하여라, 그분의 구원을.”(시편96,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