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3.주님 공현 대축일 전 화요일 1요한2,29-3,6 요한1,19-28
성인聖人이 됩시다
-“주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어제 ‘탄생’ 영화를 봤습니다. 전해 전주 월요일 성탄 다음 파공일 2022.12.26일 월요일 수도형제들은 ‘아바타’ 영화를 봤는데 저는 ‘탄생’인줄 알고 신청했다가 취소했는데 일주일후 월요일 어제 보게 됐으니 이 또한 우연이 아니라 은총의 선물이었습니다.
매월 마지막 수요일 끝기도후 친교의 날에 수도형제들은 유익한 영화를 휴게실 TV 방에서, 다음날 목요일 기상 시간은 평소보다 1시간 늦은 5:30 기상이라 여유있게 보지만 저는 오후 8:30취침하기에 어김없이, 미련없이 도중에 나와 잠자리에 듭니다. 다음날 1시 전후로 일어나 강론 쓰는 중요성과 비교하게 되며 저는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기에 주저없이 일어나 침실로 갑니다.
그러나 어제 151분 영화관에서의 ‘탄생’관람은 예외였습니다. 제가 하느님을 안 이후로는 거의 관광觀光에 흥미를 잃어 관광 여행한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여행후의 공허를 생각하면 추호도 생각이 없는 관광여행입니다. 단 하나는 예외입니다. 관광여행이 아니라 순례巡禮여행입니다. 관광여행의 끝은 ‘텅빈 공허’지만 순례여행 끝은 ‘텅빈 충만의 기쁨’입니다.
어떤 신자들은 ‘탄생’ 영화 151분이 ‘피정같았다는데 저는 성지순례한것 같았습니다. 밤 12:30분 기상에도 불구하고 조는 일 없이 흥미진진하게 봤습니다. 아마도 천주교 사제이기에 더 마음이 와 닿은 것 같습니다. 마지막 대목에서 인자한 관장의 취조시 김대건이 울자, “신부님도 웁니까?” 라는 안성기 배우의 물음도 긴 여운으로 남아있습니다. 혈액암으로 투병중에도 불구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했다니 감동입니다.
“아, 역사는 반복되는 구나!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구나! 물론 잔인한 고문이나 쉽게 사람 죽이는 일은 없지만 형태만 교묘하게 바뀌었을뿐 계속 반복되는 보복의 악순환이구나!
민주화됐다지만 가부장적 수직적 권위 의식은 그대로구나! 결코 역사에 생략이나 도약은 없구나! 사람안에 내재한 잔인성, 공격성, 폭력성의 야만은 그대로이구나!
인간 무지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가! 환경 탓할 것, 사람 탓할 것이 아니라 각자 성인이 되는 것이 유일한 답이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본질은 말씀이자 사랑임을 잊지 않는거다!”
등 깨달음을 가득 간직하게 한 영화였습니다. 사실 하루속히 ‘지구타이타닉호’의 경로를 바꾸어야 한다고, 모든 과학적 연구가 한목소리로 경고하고 있지만, 세계 어디에서도 본질적으로 유의미한 정치적 결단이나 변화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자연세계의 붕괴와 함께 필연적으로 피폐해진 사람들의 내면에는 자기 자신과 이웃을 향한 원망과 분노, 적개심이 가득 들어차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온갖 형태의 폭력과 광란의 소비주의가 마치 시대의 특징인양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탄생을 보고 김대건 사제에 감동한다 하더라도 1회성으로 끝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기억, 기념할 뿐 아니라 각자가 그 삶의 자리에서 부단한 영적혁명의 회개로 성인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하는 각성을 새로이 한, 꼭 성지순례 느낌의 영화 감상 시간이었습니다.
영원한 현재진행형의 민주화운동이요 독립운동의 현실임을 깨닫게 됩니다. 반복되는 악순환의 반복의 역사가 여전히 계속되는 내전상태같은 남북南北의, 남남南南의 분열의 깊은 골을 어떻게 메꿔 평화의 공존공생의 길을 갈지가 참 엄중한 우리의 과제입니다. 방법은 단 하나 우리 하나하나가 불신의 늪, 전쟁의 늪에서 탈출하여 영적혁명의 주님의 전사, 평화의 전사,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신자들에게 주어진 소명입니다.
탄생에서 김대건 역을 한 윤시윤 배우의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만난 소감의 고백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유머 감각도 너무 좋으시고, 그냥 동네 할아버지 같다. 한국과 관련된 농담도 하시고 그랬다. 김대건이란 인물을 표현해 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바티칸에 가면 성 베드로, 요한부터 압도적인 규모로 성인들의 동상이 있는데 비어있는 마지막 칸은 김대건의 자리라고 하더라.”
개신교 신자이면서 영화 ‘탄생’을 감독한 박흥식 형제님의 교황님 알현시 교황님에 관한 내용도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교황님께 특별히 감사드리고 싶어요. 교황님이 ‘한국인은 고난 속에서도 미소짓는다’고 하셨는데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저희 영화를 벌써 보셨나 싶었죠. 그날 교황은 ‘제가 여러분의 방문으로 영광을 받고 있다’며, ‘아름다운 그리스도인, 인간으로 아름다웠던 분의 삶에 대해 연구하고 공부한 건 여러분에게도 축복’이라고 기뻐하셨습니다.” 순교전 교우들에게 쓴 김대건 신부의 마지막 유언과 같은 회유 서한을 잊지 못합니다.
“나보다 더 착실한 목자를 주실 것이니 부디 서러워 말고 큰 사랑을 이루어 한몸 같이 주님을 섬기다가 사후에 한가지로 영원히 천주 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천만 바란다.”
만25세 청년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의 순교직전 유언이라 놀라울뿐입니다. 저는 무려 성인보다 세배를 살고 있으니 성덕은 “얼마나”의 햇수의 양이 아니라 “어떻게”의 사랑의 질에 달렸음을 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새해 베네딕도 16세 교황의 복된 선종의 축복선물을 주셨습니다. 12월31일 독일어를 모르는 한 간호사가 한밤중에 교황님이 돌아가시기 전 이탈리어로 세 번쯤 하신 마지막 임종어를 분명히 들었다 합니다.
“Lord, I love you!”(주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교황님의 전삶의 요약과도 같은, 정말 성인다운 임종어입니다. 탄생 영화의 가르침을, 베네딕도 16세 교황님의 가르침을, 또 하느님의 우리 향한 간절한 바람을 단 하나로 요약하면 참사람의 진인이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답은 간단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께 응답하여 온맘과 온맘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이웃과 자연을 사랑하는 자가 성인입니다. 제가 지금도 잊지 못하는 영어 말마디가 있습니다.
“As you are, so is the world”(네 정도만큼의 세상이다)
환경을, 사람을 탓할 것이 아니라 네 자신이 성인이 되지 못함을 탓하며 날마다 평생 성인이 되기 위해 분투의 노력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지는 만큼 세상은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더디더라도 진정 이것이 역사의 진보입니다. 성인의 길은 사랑의 길입니다. 제1독서에서 요한 사도 우리를 성인이 되라 격려하고 고무합니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은 그분의 자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께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바로 우리의 궁극의 희망은 진짜 하느님의 자녀가, 성인이 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하느님의 자녀답게, 성인답게 그리스도처럼 순결하게 사는 것입니다. 사랑할 때 알고 보입니다. 사랑의 눈이 열려 주님의 진면목을 본 성 요한 세례자입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저분은,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하고 내가 말한 분이시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였기에 눈이 열려 주님의 참모습을 알아본 성 요한 세례자입니다. 그러니 베네딕도 16세 교황님처럼 늘 속으로 “주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고백하며 사는 것입니다. 바로 주님을 사랑하여 고백할수록 주님을 닮아 참나의 성인이 될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미사은총이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