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아름다운, 행복한 제자의 삶 -주님을 증언하는, 주님의 소명에 응답하는 삶-2023.1.4.주님 공현 대축일 전 수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an 0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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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4.주님 공현 대축일 전 수요일                                                      1요한3,7-10 요한1,35-42

 

 

 

참 아름다운, 행복한 제자의 삶

-주님을 증언하는, 주님의 소명에 응답하는 삶-

 

 

 

-“신부님, 

충전 잘하고 왔습니다. 수도원에서 힘 받아서 속세에서 홧팅하면서 살아가야지요! 약발 떨어질 때쯤 충전하러 또 가겠습니다. 그동안 건강하시길 기도드립니다. 멜라니아”

 

조용히 며칠간 주님의 집, 수도원에서 주님 안에 머물다간 아름다운 분의 카톡메세지입니다. 즉시 수도원 하늘길 사진과 더불어 드린 답신입니다. 이번 수백통 드렸던 성탄 카드 답신의 전형적 사진에 문구입니다. 이름 앞에는 반드시 ‘사랑하는 형제님(또는 자매님)’이란 말이 붙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님(자매님)!

새해 수도원 하늘길 축복선물 받으시고,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저뿐 아니라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담긴 축복 말씀입니다. 교황님 홈페이지를 여는 순간 세 말마디가 계속 마음에 긴 울림을 줍니다.

 

1.“베네딕도 교황님의 마지막 말씀, ‘Lord, I love you!(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예전 수십년동안 왜관 수도원에 사셨던 독일 출신의 노수사님의 노동으로 거친 손을 보며 짧은 독일어로 ‘이히 리벤 지(Ich liben Sie;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말하면, 활짝 웃으면서 ‘정말’ 하고 한국어로 대답하던 모습이 문득 떠오릅니다. 사랑한다 고백하면 정말 고백대로 이루어지니 우선 용감하게 던져 놓고 보는 것입니다. 

 

2.“We thank God for the gift of Benedict 16”(우리는 베네딕도 16세의 선물에 하느님께 감사합니다)라는 새해 첫날 삼종기도시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입니다.

 

3.“Benedict spent his life seeking the face of Jesus(베네딕도는 평생 예수님의 얼굴을 찾았다)”라는 롬바르디 신부의 말씀입니다. 참으로 주님의 증언자로 주님의 소명에 충실했던 주님의 제자, 참으로 성인답게 사셨던 베네딕도 16세 전임 교황입니다.

 

오늘의 복음은 한폭의 살아 있는 아름다운 그림 같습니다. 참으로 우리 삶의 귀감이 되는 살아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납니다. 차례대로 그 중요한 내용을 살펴 봅니다.

 

1.“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활짝 사랑의 눈이 열려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 보며 최초로 자기 제자들에게 주님을 증언하는 참으로 순수한 영혼의 요한 세례자입니다. 정말 제자든, 이웃이든 사랑한다면, 그 최고의 사랑은 예수님을 증언함으로 예수님께 인도하는 사랑입니다. 요한 세례자의 사심없는 순수한 사랑이 참 반갑고 감사합니다. 

 

때가 되자 미련없이, 집착함 없이 제 사랑하는 제자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떠나 보내는 참으로 자신을 비운 무욕의 겸손한 요한 세례자의 삶이 참 아름답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질투심이나 경쟁의식이 전무해 보이니 말입니다. 문득 어제 쓴 “겨울나무가 좋다’라는 글이 생각납니다.

 

“본질(本質)로 서있는 겨울나무가 좋다

 하늘만을 향해 살아왔기에 저리도 훌쩍 컸나 보다

 별만을 사모(思慕)하였기에 저리도 초연(超然한)가 보다

 수도원 하늘길옆 가로수 메타세콰이어 겨울나무들”

 

침묵과 고독중 겨울 동안거(冬安居)중인 겨울 배나무들이 흡사 기도하는 수도승들 같습니다. 이런 본질로 서있는 겨울나무같은 순수한 영혼의 사람이 바로 요한 세례자입니다.

 

2.“무엇을 찾느냐?”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자기를 따라오는 요한의 두 제자를 보시며 물으십니다. 아, 이 물음은 주님을 찾는 구도자들인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평생 ‘하느님을 찾는 자’가 수도승입니다. 어찌 수도승뿐입니까! 모두가 내면 깊이에서는 하느님을 찾는 수도승들입니다. 끊임없이 하느님이 그리워, 하느님을 목말라 하느님을 찾을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참 사람입니다. 누구나 공감하는 시편의 실존적 고백입니다.

 

“하느님, 내 하느님, 당신을 애틋이 찾나이다.

 내 영혼이 당신을 목말라 하나이다.

 물기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 이 몸은 당신의 그립나이다.”(시편63,2)

 

저절로 연상되는 요한1서 말씀입니다. 정말 하느님을 애타게 끊임없이 찾는 자들이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 사람 안에는 하느님의 씨가 상징하는 말씀이, 성령이 있습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씨가 그 사람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1요한3,9)

 

이런면에서 주님을 증언하면서 이웃을 주님의 소명에 응답하도록 이끄는 아름다운 사람들은 무죄한 사람들입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주님의 증언자들을 일컫는다 생각됩니다.

 

“의로운 일을 실천하지 않는 자는 모두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자도 그렇습니다.”(1요한3,10ㄴㄷ)

 

참으로 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자기 형제를 진정 사랑하는 주님의 증언자는 요한 세례자처럼 자기 제자나 형제를 자기가 아닌 예수님께 인도합니다.

 

3.“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믿음 안에서 예수님을, 예수님의 얼굴을 찾는자가, 무엇보다 그분과 함께 머물기를 바라는 이가 제자입니다. 여기 ‘머물다(stay)’라는 그리스어로 ‘메네인(menein)’은 ‘살다(abide)’ 또는 ‘머무르다(remain)’를 뜻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항구한 관계를 뜻합니다.

 

바로 제자들의 이 말씀 안에는 스승 예수님과 함께 머물러 보고 배우며, 항구하고 깊은 인격적 관계를 맺고 싶은 염원이 배어 있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소명에 응답한 이들이 언제 어디서나 늘 당신 안에 머무르기를 바라십니다.

 

4.“와서 보아라.”

감격에 벅찬 주님의 환대의 초대입니다. 늘 우리를 “와서 보라”고 초대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와서 사랑의 주님으로부터 보고 배우라는 것입니다. 수도원 팜프렛 사진과 함께 씌어진 성구가 바로 “와서 보라”란 초대입니다. 

 

정말 "와서 보아라"할 정도의 주님 안에 머무르는 우리의 삶인지 성찰하게 합니다. 주님이 없는 집, 정말 얼마나 썰렁하고 쓸쓸하고 공허하겠는지요! 모든 것 다 지녔어도 그 안에 주님의 기쁨이, 주님의 평화가, 주님의 희망이, 주님의 사랑이, 주님의 빛이, 주님의 생명이, 주님의 영이 없다면 황량하기 그지없는 사막일 것입니다.

 

요한의 두 제자는 예수님의 초대에 감읍하여 응답함으로 마침내 주님의 첫 제자들이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합니다. 참으로 생애에 획기적 회개의 ‘전환점(turning point)’이 된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5.“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살아 있는 진리, 메시아 주님을 만난 안드레아는 지체없이 자기 형 시몬을 만나자 주님을 증언, 고백함으로 그를 예수님께 안내함으로 소명에 응답하게 합니다. 이처럼 살아 있는 진리이신 주님의 체험을 공유하고 싶은 욕구는 본능적입니다. 이것이 진정 최고의 이웃 형제 사랑입니다.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가자 예수님께서 눈여겨 보시며 이르십니다.

 

6.“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 불릴 것이다.”

‘케파’는 번역하면 ‘베드로’입니다. 예수님은 내심 시몬 베드로를 기다려왔음이 분명합니다. 주님의 소명에 응답하여 신의 한 수와도 같이 주님의 첫 제자들이 된 축복받은 제자들입니다. 

 

한 두 번으로 끝나는 소명의 응답이 아니라, 죽는 그날까지 하루하루 날마다 주님을 증언하는 삶, 주님의 소명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다음 제 좌우명 기도처럼 하루하루 날마다 끊임없이 주님과 함께 하느님 바다 향해 맑게 흐르는 사랑의 강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주님과 함께 순례자되어

하느님 바다 향해 흐르는 강(江)이 되어 살았습니다. 

때로는 좁은 폭으로 또 넓은 폭으로

때로는 완만(緩慢)하게 또 격류(激流)로 흐르기도 하면서

결코 끊어지지 않고 계속 흐르는 '하느님 사랑의 강(江)'이 되어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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