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더불어 일치와 치유의 여정 -오늘의 행복은 은총이자 선택이자 훈련이다-2023.1.12.연중 제1주간 목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an 1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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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연중 제1주간 목요일                                                                  히브3,7-14 마르1,40-45

 

 

 

주님과 더불어 일치와 치유의 여정

-오늘의 행복은 은총이자 선택이자 훈련이다-

 

 

 

혼자의 구원은 없습니다. 반드시 더불어의 구원입니다. 역시 혼자의 삶의 여정이 아니라 더불어 구원의 삶의 여정입니다. 이래서 더불어의 공동생활입니다. 혼자의 구원은 없습니다. 주님과 만남을 통한 치유의 구원입니다. 혼자 똑똑하고 건강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프고 약해도 서로 겸손히 사랑으로 돕고 섬기기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에 아프지 않고 약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게 건강해보이던 분들이 세월 지나면서 참으로 원인 불명의 병이나 사고로 고통을 겪거나 죽는 것을 무수히 목격합니다. 그래서 정도의 차이일뿐 모두가 아프고 약하기에, 혼자서는 너무 힘들기에 “서로 사랑하라”, “서로 섬기라”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건강하다는 것은 자랑이 아니라 감사해야 할 일이고 그 건강으로 아프고 약한 이들을 도우라는 주님의 은총의 선물임을 깨달아 겸손하고 지혜롭게 살 때 비로소 아름다운 삶입니다. 하루하루 이런저런 ‘깨달음의 여정’을 통해 점차 철이나고 주님을 닮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가는 노년의 삶이 아니라면 오래 장수한다는 것도 별의미가 없습니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여기 주님의 집, 요셉수도원을 주님을 사랑하듯 사랑하며 매달 모임을 가진지 15년이 훌쩍 지난, 제가 이름을 짓고 회칙을 만들어 드린, 수도원 곤경시 하느님의 선물처럼 태어난 두 모임인 ‘예수성심자매회’와 ‘코이노니아자매회’에 속한 자매님들은 거의가 할머니 나이가 되었지만 날로 주님을, 성모님을 닮아 모성애로 성숙되어 가는 아름다운 내면의 모습들이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어제 오랜 동안 책임을 성실히 수행해온 자매에게 드린 격찬의 메시지도 생각납니다. 

 

“자매님은 성녀입니다. 예전 자매가 아닙니다. 많이많이 성모님을, 주님을 닮아갑니다. 그래서 자매님을 사랑합니다. 주님 사랑 안에서 늘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사랑하는 자매님, 예수님도 제 생각에 공감과 동의를 표현하셨습니다.”

 

덕담과 더불어 수도원 십자로 중앙의 사랑의 예수성심상 사진도 전송했습니다. 막연함 믿음이, 막연한 사랑이 아니라 참된 믿음과 참된 사랑은 주어진 바 소임의 책임을 다할 때 검증되고 또 감동을 줍니다. 바로 이런 이들이 평범한 일상의 성인성녀들이요, 수도원 안팎에는 이런 분들이 참 많습니다.

 

우리는 이러저런 병이나 사고를 당하면 원인을 규명하려는데 사실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부질없이, 쓸데없이 자기나 남을 탓할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들은 주님께 맡겨드리고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좋은 선택을 통해 주님과 함께 파스카의 신비를 살아가는 것이 지혜요 겸손입니다.

 

어제 뜻밖에 피부에 이상이 생겨 수도형제의 안내로 피부과 진료시 원인을 물었더니 모른다 했습니다. 사실 원인 불명의 병이나 사고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믿지 않는 이들은 운運이 좋았다 예기하지만 우리 믿는 이들은 은총恩寵이라 고백합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매사 우연이 아니라 섭리의 은총입니다. 모두가 하느님 은총임을 깨달아 알 때 저절로 찬미와 감사의 삶입니다.

 

길다 싶지만 참 짧은 인생입니다. 젊음의 철없음, 걱정, 근심, 불안, 두려움, 슬픔, 아픔, 절망, 탐욕, 질투, 분노, 무지, 노년의 가난과 치매와 병고로 인한 괴로움등 모두 빼 버린다면 행복하게 살았던 시간은 참으로 짧을 것입니다. 누구나 다음 시편도 공감할 것입니다.

 

“인생은 기껏해야 칠십년, 근력이 좋아서야 팔십년,

 그나마 거의가 고생과 슬픔이오니 덧없이 지나가고,

 우리는 나는 듯 가버리나이다.”(시편90,10)

 

정말 무서운 병은 육신의 병이 아니라 영혼의 병, 마음의 병인 무지의 병, 허무의 병, 절망의 병, 광신의 병, 중독의 병, 탐욕의 병, 나태의 병, 혐오의 병, 허영의 병, 교만의 병, 분열의 병, 차별의 병, 혐오의 병, 폭력의 병, 무시의 병, 시간 낭비의 병입니다. 계속 이어지는 영적나병들 과여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 자 몇이나 될런지요.

 

이런 것들은 병病이자 동시에 죄罪이자 악惡입니다. 여기에는 답答이, 약藥이 없습니다. 유일한 처방의 약은 다하나 하느님 은총의 약입니다. 이래서 우리 수도자들이 좋아하는 평생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시편과 미사의 공동전례기도입니다. 

 

시편에 맛들이다보니 세상 시와 노래의 맛도 잃은지 이미 오래입니다. 도대체 생명과 빛, 희망이 넘치는 이 공동전례 은총을 능가하는 것이, 답이, 약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기쁨과 행복을 선택하여 사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서 못살면 내일 산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기뻐서 기쁘고, 행복해서 행복하기로 하면 결코 이런 때는 오지 않습니다. 아까운 시간 헛되이 어리석게 원망, 절망, 실망하여 지낼 것이 아니라 타고난 것들, 지난 것들은 주님께 맡겨 드리고 오늘 지금 여기서 부터 행복을 사는 것이 진정 살 줄 아는 지혜요 겸손입니다. 주님은 결코 회개한 이들의 과거는 묻지 않으십니다.

 

“주님과 함께 항상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사랑하는 형제님(자매님)”(필립4,4)

 

2022년 연말부터 2023년 1월 지금까지 가장 많이 써드리는 고백성사시 보속의 말씀 처방전입니다. 그리고 이어 6가지 사항을 꼭 의식하여 지내라 첨부하여 말씀드립니다. “1.화내지 말고, 2.기쁘게, 3.평화롭게, 4.감사하며, 5.행복하게, 6,웃으며 영적훈련에 힘쓰라." 했습니다. 그러면 나도 이웃도 주님의 축복으로 환해질 것입니다.”하고 말씀 드립니다. 새삼 행복은 선택이자 훈련임을 깨닫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을 선택하여 부단히 행복을 훈련하여 습관화해 사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말씀에 앞서 이런저런 묵상을 나눴습니다. 오늘 복음의 나병환자가 상징하는바, 영육의 질병으로 곤경중인 우리 모두를 상징합니다. 참으로 주님을 만나야 비로소 치유의 구원입니다. 우리가 매일 바치는 공동전례 기도의 은총도 이런 살아계신 주님과의 만남에 있습니다. 살아계신 주님을 만날 때 위로와 치유, 정화와 성화, 기쁨과 감사, 평화와 행복의 선물입니다.

 

제가 볼 때 복음의 나병환자의 정신은, 영혼은 건강했습니다. 육신은 나병으로 많이 무너졌지만 영혼은, 정신은 건재했습니다. 육신은 무너져도 불신과 절망으로 영혼이 무너져선 안됩니다. 아, 이것이 중요합니다. 참으로 주님께 궁극의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두고 주님을 갈망하며 사는 것입니다. 

 

넘어지는 게 죄가 아니라, 자포자기 절망으로 일어나지 않는게 대죄입니다. 이렇게 무지와 허무, 절망에 빠져 사는 자들에게는 백약이 무효입니다. 하느님도 도와 주지 못합니다. 이런 간절하고 절박하게 주님을 찾았던 나병환자는 마침내 주님을 만났고 마침내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간청합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깨끗하게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도대체 세상에 누가 이런 주님의 역할을 할 수 있을런지요! 오직 우리의 근원적 질병을 치유할 분은 주님뿐입니다. 그대로 주님의 삼박자 치유의 구원입니다. 나병환자의 믿음과 더불어 주님의 1.측은히 여기는 마음, 2.사랑의 스킨십, 3,능력의 말씀이 삼박자 응답이 치유의 구원 사건을 발생시킵니다. 바로 측은히 여기는, 가엾이 여기는, 불쌍히 여기는 연민의 마음, 사랑이 바로 하느님의 마음이요 사랑이요 이런 연민의 자비로운 사람이 정말 참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혼자의 구원이 아니라 더불어의 구원입니다. 주님을 만나 치유의 구원으로 공동체의 복귀한 나병환자는 복음 선포의 일꾼이 됩니다. 곤경중에 있는 자들을 주님께 안내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인기를 탐하거시거나 대중의 열광적 환영을 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노자의 공성이불거(功成而弗居)란, 공을 이루면 거기 머물지 않는다는 말씀이 예수님께도 고스란히 적용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그분께 모여들었다.’

 

여기서 외딴곳이 상징하는바, 예수님의 유일한 안식처인 아버지와 함께 계신곳입니다. 그래서 강물이 바다로 모여들 듯 사람들은 삶의 중심인, 사랑의 바다같은 주님께 모여듭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구원의 자리인 외딴곳, 안식처는 주님께서 늘 함께 하시는 오늘 지금 여기 이자리입니다. 아파도 아프지 않은 척, 슬퍼도 슬프지 않은 척, 병이 있어도 건강한 척, 외롭고 쓸쓸해도 안 그런 척, 최소한도의 일상생활을 할 수 있으면 이렇게 자기의 존엄한 품위를 지키며 사는 것은 위선이 아니라 진정 성숙한 믿음이요 살 줄 아는 삶의 지혜입니다. 히브리서의 말씀이 고맙고 큰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를 듣거든,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마라. ‘오늘’이라는 말이 들리는 한 여러분은 날마다 서로 격려하여, 죄의 속임수에 넘어가 완고해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도록 하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의 동료가 된 사람들입니다. 처음의 결심을 끝까지 굳건히 지니는 한 그렇습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당신의 충실한 동료가 되어 당신과 함께 이웃 형제들과 함께 화내지 않고, 감사하며, 기쁘게, 평화롭고, 행복하게, 웃으며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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