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토요일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291-304) 기념일
히브9,2-3.11-14 마르3,20-21
불광불급(不狂不及)
-“제대로 미치면 성인(聖人), 잘못 미치면 폐인(廢人)”-
오늘 복음은 아마 매일 미사 복음중 가장 짧을 것이니 단 두절입니다. 짧지만 느낌은 강렬합니다. 두절중 마지막 절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한 것이다.’(마르3,21).
아마도 당시 평범한 이들의 눈에는 예수님의 행태가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미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제 경우도 수도성소로 인해 늦은 나이에 모두를 버리고 수도회에 입회할 때 주변의 반응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찌보면 제대로 미친, ‘신의 한 수’와도 같은 성인들의 공동체가 우리 요셉 수도공동체란 생각도 듭니다.
이 복음을 대할 때 마다 강론 제목은 언제나 동일합니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불광불급(不狂不及)-제대로 미치면 성인, 잘못 미치면 폐인-”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이야말로 제대로 미친 성인의 원조라는 것입니다.
자주 반복합니다만 인생 광야 여정중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 제 지론이니 성인, 폐인, 괴물입니다. 사람이라 다 사람이 아니라 본인은 모를지 모르지만 폐인같은, 괴물같은 사람도 참 많습니다. 본래의 참나의 성인이 되는 것이 삶의 유일한 목적이요 공부요 아마도 가장 중요하고 힘든 평생숙제일 것입니다.
참으로 누구나 미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생각됩니다. 미칠 광자가 들어가는 말마디들이 이를 입증합니다. 광인, 광기, 광신, 광분, 광란, 광폭등 무수한 단어들입니다. 참으로 제대로 미쳐 참나의 참사람인 성인이, 달인이, 장인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제 분야에서 아마추어가 아닌 진정 프로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주로 선호하는 책은 평전이나 자서전이요 일간지나 주간지에서 반드시 정독하는 기사도 제 분야에서 어느 경지에 이른 전문가의 인터뷰 기사입니다. 바로 제대로 미친 참사람을 만나고 싶은 갈망의 표현인 것입니다. 사실 깊고 좋은 분을 만나면 책 몇권 정도의 효과가 있습니다.
정말 제대로 미쳐 참나의 참사람이 되는 평생 수행, 평생 훈련이 참 중요합니다. 불광불급, 미쳐야 미칩니다. 미치지 못하면 미치지 못합니다. 제대로 미치면 참사람의 성인이지만 잘못 미치면 폐인입니다. 무지성, 무이성, 무상식의 폐인이요 말그대로 무지의 사람들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런 폐인이나 괴물같은 이들을 주변에서 목격하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는 참으로 제대로 미친 무수한 보물들은 지니고 있으니 바로 아름답고 매력적인 성인성녀들입니다. 제가 자주 권하는 “성인이, 성녀가 되라”는 덕담입니다. 사실 성인이 되고자 하는 청정욕, 깨끗한 욕심은 언제든 좋습니다.
이탈리아에는 혹독한 로마 박해 시절에 순교한 4대 성녀가 있습니다. 시칠리아의 성녀 아가타와 루치아, 그리고 로마의 성녀 세실리아와 아녜스입니다. 바로 오늘은 이 넷중 한분인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아녜스는 그리스어로 ‘순결’, ‘양’을 뜻하며 성녀는 291년에 태어나 304년에 순교한 것으로 되어 있으니 13세 어린 나이에 순교한 전설적인 성녀입니다. 나이에 관계없는 성덕의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유약한 나이에 보여준 성녀의 위대한 신앙의 힘’을 높이 칭송했습니다. 오늘 성녀의 고백과도 같은 아침성무일도시 즈카르야 후렴은 얼마나 깊고 아름다웠던지요!
“보라, 나는 내가 갈망하는 것을 보았고, 희망하는 것을 얻었으며, 지상에서 온 마음으로 사랑한 분을 만났도다.”
다음 전설처럼 전해오는, 순교시 임종어와도 같은 저녁성무일도 마리아의 후렴도 참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성녀 아녜스는 두 팔을 벌리고 ‘내가 사랑하고 찾으며 갈망하던 거룩하신 성부여, 당신께 나아 가나이다’하고 기도하였도다.”
기념하고 기억할 뿐 아니라 믿는 이들 모두가 성인이 되라 있는 성인 축일입니다. 세례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 모두 본래의 참나의 성인이 되라 불림받고 있으며 이보다 더 중요한 평생공부와 과제도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요즘 강조하는 구체적 수행 방법이 “선택-훈련-습관”입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죽을 때까지 참 좋으신 신망애의 주님을, 진선미의 주님을 선택하여 부단한 훈련을 통해 습관화하여 제2천성이 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이런면에서 평생, 매일 규칙적 일과에 따라 바치는 시편성무일도와 미사 공동전례기도는 우리의 마땅한 의무이자 동시에 참 좋은 선택에 영적 훈련이요 습관입니다.
사랑의 수행입니다. 사랑을 가득담아 평생, 매일 한결같이 공동전례기도만 잘 바쳐도 성인이 될 것입니다. 작년 2022년 12월 대림시기부터 지금 설 명절을 앞둔 올해 2023년 1월 후반부까지 제가 고백성사시 보속으로 드리는 말씀처방전은 단 하나입니다.
“주님과 함께 항상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사랑하는 형제님(자매님)”(필립4,4)
여기에 덧붙여 여섯가지 사항에 의식적 노력을 다할 것을 권합니다. 1.화내지 않고, 2.기쁘게, 3.웃으며, 4.행복하게, 5.평화롭게, 6.감사하며 사는 영적훈련에 전념하므로 습관화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 은총으로 나도 환해지고 주변도 환해질 것이라 말하곤 합니다.
어제도 오늘 출국을 앞두고 가족과 함께 수도원을 찾은 젊은 학생에게 ‘하느님의 집인 수도원을 찾아 나를 통해 주님을 만난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며 극찬하고 위와 같은 말씀처방전을 써줬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말씀처방전을 써주다 보니 제 자신이 이렇게 변화되는 듯 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런 성덕의 선택과 훈련, 습관화에 결정적 도움을 주는 분이 바로 새계약의 중개자인, 바로 미사를 집전하는 대사제 파스카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제1독서 히브리서가 고맙고 은혜롭게도 이를 명쾌하게 밝혀 줍니다.
“영원한 영을 통하여 흠없는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죽음의 행실에서 얼마나 더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느님을 섬기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새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을 가리킵니다. 우리 각자 삶의 자리가 성인이 되라 불림받고 있는 꽃자리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각자 삶의 꽃자리에서 참나의 성인이 되어 살게 하십니다. 끝으로 구상 시인의 “꽃자리”로 강론을 마칩니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고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고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묶여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