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 대한 한결같은 사랑과 신뢰, 그리고 희망 -영적탄력의 원천-2023.2.9.연중 제5주간 목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Feb 0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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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9.연중 제5주간 목요일                                                                 창세2,18-25 마르7,24-30

 

 

하느님께 대한 한결같은 사랑과 신뢰, 그리고 희망

-영적탄력의 원천-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

 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시편128.1)

 

수도사제생활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자주 사용되었고 앞으로도 자주 사용될 강론 주제중 둘은 주님의 전사와 영적탄력입니다. 구체적으로 믿음의 전사요 믿음의 탄력입니다. 기도와 믿음은 함께 갑니다. 믿음의 전사로서 참 좋은 믿음의 탄력을 위해 간절하고 끊임없는 기도가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지요!

 

제가 믿음의 탄력에 자주 인용했던 몇가지 사례를 다시 나눕니다. 수십년전 읽은 내용인데 참 많이도 나눴습니다. 어느 구도자가 수도원을 찾아 노수도자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나?” 물었을 때의 평범하나 진솔한 답변입니다. “넘어지면 일어나고, 넘어지면 일어나고 평생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이에 덧붙여 자주 단골로 인용하는 말마디가 있습니다. 

 

“넘어지는 게 죄가 아니라, 자포자기 절망으로 일어나지 않는 게 죄다. 넘어지면 즉시 일어나 다시 시작해야 한다. 평생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 이래야 주님의 전사, 믿음의 전사로서 한결같이 탄력 좋은 삶을 살 수 있다. 세월 흘러 나이들어가면 육신의 탄력은 저절로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영혼의 탄력, 믿음의 탄력은 떨어지면 안된다. 끝까지 믿음의 탄력을 유지해야 믿음의 전사로서 죽는 그날까지 영적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

 

지금도 여전히 공감하는 말마디입니다. 영적탄력, 믿음의 탄력을 위해 자주 사용하는 용수철과 팬티끈의 비유입니다. 좋은 용수철은 탄력이 좋습니다. 누르면 즉시 원래상태로 돌아옵니다. 잡초雜草들의 탄력 또한 좋습니다. 아무리 밟혀도 즉시 일어납니다. 여기서 생활력 강한 민초民草란 말도 유래합니다. 칠전팔기七顚八起, 백절불굴百折不屈, 모두 영적탄력 좋은 상태에 대한 묘사입니다.

 

또 재미있는 팬티끈과 팬티천의 비유입니다. 좀 저속하다 싶은 비유나 실감있게 와닿습니다. 지금이야 팬티끈이 끊어지거나 느슨해 지는 일이 거의 없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예를 들어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팬티천이 아무리 좋고 튼튼해도 팬티끈이 끊어지거나 느슨해져 탄력을 잃어 신축성이 없으면 그 좋은 팬티도 더 이상 입을 수 없다. 마찬가지 아무리 육신이 아름답고 건강해도 영혼이 병들어 건강하지 못하면 육신도 오래 못가 노쇠나 병고로 무너진다. 

그러나 탄력 좋은 팬티끈이라면 팬티천이 아무리 낡고 떨어져도 끝까지 입을 수 있는 것처럼. 참으로 믿음의 탄력 좋은 영혼이라면 아무리 낡고 병든 육신이라도 끝까지 이끌수 있을 것이다. 영혼이 육신을 끌고 가야지 영혼이 육신한테 끌려가선 안된다. 이래서 영적 탄력을 위한 평생 믿음의 훈련이 그처럼 중요한 것이다.”

 

이래서 탄력좋은 믿음을 위해 참 좋은 평생 훈련이 우리가 평생 매일 규칙적으로 바치는 시편 성무일도와 미사의 공동전례기도입니다. 무엇보다 주님의 전사로서 탄력 좋은 믿음을 위해 우선적 조건이 하느님께 대한 한결같은 사랑과 신뢰입니다. 참으로 날로 깊어가는 주님과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영적탄력 좋은 주님의 전사로 만듭니다. 

 

저는 오늘 제1독서 창세기 이야기를 통해 하느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인간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더불어 창세기 저자의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깨닫습니다. 다음 묘사가 바로 이를 입증합니다.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

 

아무리 애완견이 반려견이, 반려식물이 좋다한들 어찌 좋은 현모양처의 아내와 비교할 수 있을런지요! 협력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대상은 좋은 아내뿐일 것입니다. 바로 여기 창세기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참 좋은 사랑을 만나게 되고 이런 사랑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신뢰할 수뿐이 없습니다. 다음 묘사에서 우리는 참 섬세하고 정성스러운 하느님 사랑을 만납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게 하신다음, 그의 갈빗대를 빼내시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셨다.-

 

협력자의 아내는 실로 사람과 한몸임을 알려주는 진실자체의 설화입니다. 바로 부부일치의 황홀한 체험의 고백같은, 참으로 진짜 협력자를 만난 사람의 부르짖는 환호에 하느님은 얼마나 기뻐하셨겠는지요! 사람의 환호와 이어지는 묘사도 깊고 아름다운 감동적인 진리를 보여줍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사람과 아내는 둘 다 알몸이면서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참으로 순결무구한 부부관계를 말해 줍니다. 부부관계는 물론 하느님과의 관계 역시 참 좋은 사랑과 신뢰의 관계 였을 것이며 부부의 주님 향한 믿음의 탄력, 영적탄력도 참 좋았을 것입니다. 참으로 최상의 행복한 부부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이런저런 사유로 혼자 살아가는 이들이 때로 많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혼자 살다보면 저절로 이기적 괴물이나 폐인이 될 가능성이 참 많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전의 일상적인 혼인에 평범한 부부생활이 요즘은 특별한 것이 되어 가는 추세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오늘 창세기의 이런 부부일치를 이뤄주신 하느님은 얼마나 섬세하고 자상한 배려와 존중의 멋진 분이신지 저절로 감사, 감동, 감탄하게 됩니다. 그러니 이런 좋은 하느님을 체험할수록 사랑과 신뢰도 더해가면서 날로 깊어지는 주님과의 관계에 영적탄력도 자연스럽게 뒤따를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이교도로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의 부인의 믿음의 탄력이 참 놀랍습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 주십사고 간청하는 부인입니다. 다음 주님과 부인과의 실감나는 대화를 다시 나눕니다. 그대로 주님과의 줄다리기 싸움같은 기도를 상징하는 예화입니다.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얼마나 수모스런 자존심 상하는 몰인정한 말씀인지요! 그러나 참으로 겸손한 부인은 이런 자기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참 좋은 믿음의 탄력을 지닌 부인은 즉시 반격합니다.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참으로 딸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더불어 주님께 대한 깊은 사랑과 신뢰가 있었기에 이런 겸손한 답변입니다. 얼마나 간절하고 절박한 믿음의 기도인지요! 참으로 감동적인 믿음이요, 말그대로 믿음의 승리입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 믿음의 전사, 이교도 부인입니다. 말문이 막힌 예수님의 즉각적인 응답입니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

 

마침내 자기와의 싸움, 주님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참으로 겸손한 믿음의 탄력 좋은 믿음의 전사, 이교도 부인입니다. 바로 주님께 대한 한결같은 신뢰와 사랑이, 그리고 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궁극의 영적승리로 이끈 참 좋은 영적탄력의 원천이었음을 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날로 주님과 깊어지는 사랑과 신뢰의 관계와 더불어 우리 모두 영적 탄력 좋은 믿음의 전사, 주님의 전사로 살게 하십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 

 주님은 너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너는 한평생 모든 날에 번영을 보리라.”(시편128,4-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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