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이, 성인이 되는 길 -지혜, 선택, 훈련-2023.2.12.연중 제6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Feb 1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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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12.연중 제6주일                                                       집회15,15-20 1코린2,6-10 마태5,17-37

 

 

의인이, 성인이 되는 길

-지혜, 선택, 훈련-

 

 

“행복하여라, 온전한 길을 걷는 이들,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들!

 행복하여라, 그분의 법을 따르는 이들, 

 마음을 다하여 그분을 찾는 이들!”(시편119,1-2)

 

이런 이들이 의인들이요 성인들입니다. 어제는 배나무들의 거대한 뿌리를 보며 믿음의 뿌리에 대한 깨달음을 나눴습니다. 오늘 새벽 배밭 산책중 소스라친 깨달음의 은총에 감사했습니다. 바로 배나무들이 뿌리를 내린 배밭 땅의 흙입니다. 배밭 땅의 흙이 없으면 어디에 뿌리를 내립니까? 바로 똑같은 이치가 우리가 믿음의 뿌리를 내린 배밭 땅의 흙같은 공동체에도 적용됩니다. 공동체를 통해 하느님께 깊이 믿음의 뿌리를 내리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니 공동체의 은총은 절대적입니다.

 

은총입니다. 모든 것이 은총입니다. 이런 깨달음에서 저절로 매사 하느님 찬미와 감사요, 기쁨이요 행복이요, 사랑과 겸손이요, 마음의 순수와 자유로움입니다. 제 집무실 커다란 게시판에는 2년전 써놨던 깨달음의 글이 지금도 붙어있습니다. 공동체에 대한 고마움의 고백입니다.

 

“저에게 가장 큰 스승은 여기 수도공동체입니다.”-2021.7.20.

 

그렇습니다. 공동체 생활도 정말 커다란 은총입니다. 형제들 하나하나로부터 평생 배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형제들 하나하나의 모습에서 예수님 얼굴이 보입니다. 그리스도의 한몸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혼자서는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이 되는 길도 없습니다. 더불어의 삶이요 더불어의 여정입니다. 

 

제가 좋아하고 많은 분들이 좋아하는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자작 좌우명시도 수도원 25년 기념감사제가 없었다면, 또 마르코 수사님의 각별한 당부가 없었다면 이 시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 행복기도 역시 수도원에 잠시 머물렀던 바오로 신부님의 부탁이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모두가 은총의 열매임을 깨닫습니다. 10여일 동안 순례여행을 다녀온 어느 자매님의 감사메시지도 은총의 고백이었습니다.

 

“아멘!

주님께 찬미 찬양드립니다!

잘 살아가겠습니다.

순례를 하며 신부님께서 강조하시던 

지상에서 천국의 삶을 살아야 한다 하신 말씀을 체감했습니다.

이렇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은 주님의 축복이요 은총입니다!

제가 무엇이기에 넘치는 축복과 은총을 주셨는지 눈물이 납니다!

앞으로 더욱 긍정적이고 간절한 믿음으로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겸손한 고백인지요! 수십년을 한결같이 하느님과 이웃을 섬기며 살아가는 참 사랑스런 성녀같은 분입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의 의인으로, 성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 바라시는바 우리 모두 한결같이 당신을 사랑하여 닮은 참나의 의인이,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첫째, 지혜입니다.

무지의 마음 병에 대한 궁극의 처방도 지혜입니다. 그러니 지혜를, 하느님의 지혜이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리하여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지혜이신 예수님을 사랑할 때 성령의 은총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사랑의 지혜입니다. 사랑과 지혜는 함께 갑니다. 지혜를 사랑할수록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여기서 사랑은 순수한 아가페 사랑을 말합니다. 바로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하느님의 지혜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을 줍니다.

 

“성숙한 이들 가운데에서 우리는 지혜를 말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롭고 또 감추어져 있던 지혜를 말합니다. 그것은 세상이 시작되기 전,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신 지혜입니다. 이 세상의 우두머리들은 아무도 그 지혜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깨달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지혜를 마련해 두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은총중의 은총이 성령의 은총입니다. 성령의 은총이 하느님의 지혜이신 주 예수님을 사랑하게 하고 깨닫게 합니다. 무지에 대한 궁극의 답은 성령의 은총인 지혜뿐입니다. 우리가 우선적으로 참으로 한결같이 사랑해야 할 분은 하느님의 지혜이신 예수님뿐입니다. 제 행복기도 서두처럼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

참회합니다

믿습니다

찬미합니다

감사합니다

기뻐합니다 

차고 넘치는 행복이옵니다

이 행복으로 살아갑니다”

 

둘째, 선택입니다.

선택의 은총이요 선택의 자유입니다. 타고난 것도 많지만 매일 선택할 수 있는 좋은 것도 무궁무진입니다. 타고난 부정적인 것들에 좌절하거나 절망할 것이 아니라 매일 새롭게 주님을, 지혜를, 사랑을, 감사를, 행복을, 기쁨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삶에서 선택아닌 것이 없습니다. 왜 어리석게도 아까운 시간 불행을 선택하여 어둡고 우울하게 살아갑니까?

 

참 좋은 올바른 선택을 위해 성령께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바로 제1독서 집회서가 선택의 자유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내용이라 전문을 그대로 인용하여 다시 나눕니다. 참으로 올바른 선택으로 책임적 존재가 되어 살라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인간을 제 의지의 손에 내맡기셨다.

네가 원하기만 하면 계명을 지킬 수 있으니 

충실하게 사는 것은 네 뜻에 달려있다.

 

그분께서 네 앞에 물과 불을 놓으셨으니

손을 뻗어 원하는 대로 선택하여라.

사람 앞에는 생명과 죽음이 있으니

어느 것이나 바라는대로, 선택하는 대로 받으리라.

 

참으로 주님의 지혜는 위대하니

그분께서는 능력이 넘치시고 모든 것을 보신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을 굽어보시고

사람의 행위를 낱낱이 아신다.

 

그분께서는 아무에게도 불경하게 되라고 명령하신 적이 없고

어느 누구에게도 죄를 지으라고 허락하신 적이 없다.”

 

얼마나 중요한 선택인지 선택에 따른 책임이 얼마나 엄중한지 깨닫습니다. 삶은 선택입니다. 선택의 결단이자 선택의 실행입니다. 선택이 인간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을 선택할 때 일일시호일, 하루하루 활짝 열린 좋은 날입니다.

 

셋째, 훈련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계시되는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하느님의 지혜이신 예수님께서 율법의 깊이를 계시해 주십니다. 우리가 선택하고 훈련하여 습관화 할 바 이런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여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참으로 의인이, 성인이 될 수 있는 길은 하느님의 지혜를 선택하여 훈련하는 것뿐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지혜에 대한 심오한 계시입니다.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오신 주님이요, 주님은 이에 대한 근원적 처방을 알려주십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의 지혜이신 분, 예수님이 권위를 지니고 확신에 넘친 가르침이 반복됩니다.

 

살인에 앞서 형제를 “바보!”, “멍청이!”라 하며 무시하고 멸시하는 간접적 살인의 마음부터 깨끗이 정리하라는 것입니다. 예물을 바치기전 원망을 품고 있는 형제가 있으면 지체없이 용감하게 화해하고 와서 제단에 와서 예물을 바치라 합니다. 간음에 앞서 마음의 간음인 음욕부터 일소하라 하십니다. 참으로 주님의 충격요법적 표현을 통해 간음이 얼마나 치명적 죄인지 깨닫습니다. 

 

사실 성적 문란이 모든 화근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른 눈이 죄짓게 하면 오른눈을 뽑아버리고, 오른손이 죄짓게 하거든 오른손을 잘라 버리라 합니다. 말그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죄의 해악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그 엄중함을 일깨우는 것입니다. 이렇게 단호히 죄를 끊어버리고 마음의 평화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간음의 경우도 철두철미합니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자는 누구나 그 여자를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요,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간음은 아예 상상조차 하지 말아야 합니다. 참으로 불륜의 죄가 얼마나 관계를, 영혼을 파괴하는지 생각한다면 간음은 꿈도 꾸지 못할 것입니다. 긴음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이런 죄를 지었을 때는 지체없이 참회하는 것입니다.

 

맹세의 경우도 철두철미합니다. 무지로 인한, 제 분수를 넘은 맹세는 아예 하지 말라 하십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자기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 하시니 우리는 머리카락 하나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라 말하는 솔직담백한 답변뿐이니 이 이상의 것은 모두 악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득 지난 수요일 마르코 복음 말씀과 묵상이 떠오릅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흡사 마음이 더러운 오물 가득한 쓰레기통처럼 보입니다. 바로 이것이 인간무지의 현실입니다. 과연 여기서 제외될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고귀한 품위의 인간의 참으로 어둔 측면입니다. 이래서 평생 영적전쟁에 영적훈련입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습니다. 하와를 유혹했던 뱀도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습니다. 여기 영적훈련에는 요령도 첩경의 지름길도 없습니다. 부단히 성령의 은총으로 하느님의 지혜를 선택하여 죽을 때까지 평생 훈련함으로, 쓰레기통 같은 마음을 뿌리로부터 정화하고 성화하는 길뿐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 수도자들은 죽는 그날까지 하느님을 한결같이 사랑하여, 찬미와 감사의 시편 성무일도와 미사의 공동전례기도를 영적훈련으로 삼아, 하루하루 평생 매일 규칙적으로 바침으로 아예 우리 마음에 애당초 죄가 뿌리내리지 못하게 합니다. 이래야 마음의 순결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주님은 이 거룩한 주일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을 찾는 영적훈련에 항구하게 하시며 당신을 닮은 참나의 의인이자 성인으로 살 수 있도록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찬미받으소서.

아버지께서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마태11,2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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