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선택이다 -선택의 은총, 선택의 자유, 선택의 지혜-2023.2.23.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Feb 2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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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23.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신명30,15-20 루카9,22-25

 

 

 

삶은 선택이다

-선택의 은총, 선택의 자유, 선택의 지혜-

 

 

 

“생명을 선택하여라.”

 

오늘 제1독서 신명기의 소주제입니다. 삶은 선택입니다. 선택의 은총, 선택의 자유, 선택의 지혜입니다. 때로는 선택의 외로움, 선택의 어려움입니다. 하루하루가 선택입니다. 참으로 무엇보다 좋은 선택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공부해야 합니다. 하느님 말씀을 공부해야 합니다. 저절로 좋은 선택이 아니라 좋은 삶에서 좋은 선택이 나옵니다. 선택은 자유이지만 선택은 은총입니다.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로, 100% 하느님께 달린 듯이 기도하고, 100% 내 손에 달린 듯이 노력하는 삶에서 좋은 선택의 은총이 선물처럼 주어집니다. 말그대로 노력하는 천재들입니다.

 

요즘 이율곡 평전을, 세종대왕 평전을 읽으며 감탄하는 바도 노력하는 천재들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참 많이도 읽은 자서전들이요 평전들입니다. 앞으로도 시간되는 대로 귀감이 되는 옛 선비들이나 성인들, 위인들의 평전을 읽을 계획입니다. 우리는 옛 위인들에 대해 너무나 무지합니다. 

 

참으로 하루하루 날마다 평생 주님의 전사로, 주님의 학인으로, 주님의 형제로 주님과의 우정을 깊이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들에게 오늘 주님 말씀은 너무나 자명하게 마음에 와닿습니다. 요즘 참 많이 강조하는 것이 선택과 훈련입니다. 타고난 것도 끝없이 많습니다. 좋게 타고난 것들도 있지만 바꿀수 없는 부정적인 타고난 것들도 참 많습니다. 

 

선택할 수 없이 주어진 것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도대체 타고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입니다. 아무도 고향도, 부모도, 형제도, 가정도, 재능도, 성격도, 건강도, 기질도, 외모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좋게 타고난 것들에 감사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렇지 못한 경우 좌절하거나 불평하거나 원망하는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타고난 것들도 많지만, 하루하루 날마다 새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도 무궁무진합니다. 믿음도 희망도 사랑도 찬미도 감사도 감동도 아름다움도 기쁨도 평화도 선택입니다. 선택하여 치열히 훈련하여 습관화하여 제2천성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타고난 것들, 주어진 것들, 회개로 이미 지나간 것들에 대해서 하느님은 결코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무지의 어둠에서 벗어나 눈이 열릴 때 선물처럼 발견되는, 선택할 수 있는 것도 끝이 없습니다. 이래서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이란 고백도 나옵니다. 그러니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하루하루 행복한 삶을 선택하여 참으로 감사하며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행복도 선택입니다. 행복도 발견입니다. 행복의 선택, 행복의 발견입니다. 선택한 행복을, 발견한 행복을 살아가는 것이 정말 지혜로운 삶, 아름답고 매력적인 삶입니다. 이런이들은 결코 숙명주의자나 비관주의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오늘 신명기의 하느님 말씀을 받아 전하는 모세가 참 고맙습니다. 선택의 달인 신명기의 모세, 복음의 예수님입니다. 선택의 달인, 하느님의 사람, 모세가 강조하는 바,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여전히 큰 울림을 주는 모세를 통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놓는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느님의 계명을 듣고,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길을 따라 걷고, 그분의 계명과 규정과 법규들을 지키면, 너희가 살고, 번성할 것이다.”

 

이어지는 말씀, 역시 직접적이며 감동적입니다. 곧바로 우리의 지체없는 선택의 결단을 촉구합니다.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내놓았다. 너희와 네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 또한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그분께 매달려야 한다. 주님은 너희의 생명이시다.”

 

주님은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그러니 우리의 생명이신 주님을 선택하여 열렬히 항구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래야 참으로 사는 것이요 행복한 삶, 충만한 삶입니다. 시편 1장 화답송도 하느님을 선택하여 온전히 신뢰와 사랑을 바친 이들의 행복을 노래합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 제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 힘, 우리 생명, 우리 행복이라 고백하는 것입니다. 행복하시길 원하십니까? 답은 너무나 간단명료합니다. 하느님을 선택하여 열렬히, 항구히 신뢰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하느님을 떠날 때 바로 스스로 자초한 불행의 연속이니 이 또한 내 탓입니다. 신명기 백성에게 주신 말씀은 여전히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그러나 너희의 마음이 돌아서서 말을 듣지 않고, 유혹에 끌려 다른 신들에게 경배하고 그들을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분명히 일러두는데, 너희는 반드시 멸망하고, 요르단을 건너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에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하느님을 떠날 때 도처에 널려 있는 유혹들이요 악마의 덫들입니다. 시편 화답송이 하느님을 선택한 의인들과 그 반대의 악인들에 대한 운명을 잘 보여줍니다.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바람에 흩날리는 검불 같아라. 의인의 길은 주님이 아시고, 악인의 길은 멸망에 이르리라.”

 

의인이냐 악인이냐? 이 또한 스스로 자초한 선택의 문제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여 삶의 중심이자 의미이신 주님께 날로 깊이 뿌리 내린 의인들이요, 이런 생명의 주님과 무관한 관계로 뿌리를 전혀 내리지 못해 뿌리없이 끊임없이 표류하고 방황하는 이들이 바로 참내가 없는 좀비같고 유령같은 악인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의 길, 구원의 길, 성인의 길을 제시하십니다. 아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최상, 최고, 최선의 선택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 친히 말씀하십니다. 당신 수난과 부활을 처음으로 예고하신후 주시는 말씀입니다. 은연중 당신을 닮아 각자 십자가의 길을 각오하라는, 때로는 순교까지 각오하라는 말씀이겠습니다. 예외없이 모든 사람이 선택해야 할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세상 모든 것을 다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얻은 것은 명예요 재물이고 잃은 것은 삶이요 건강이라면 얼마나 허망하고 억울한 무지의 삶이겠는지요! 주님을 얻은 자가 자신을 얻고 세상 모두에 초연할 수 있습니다. 

 

아, 오늘은 요한 사도의 직제자인 "신앙의 용사" 스미르나의 주교 성 뽈리카르보 사도교부의 축일이기도 합니다. 선배 성인에는 안티오키아의 주교 이냐시오가 있고, 성 이레네오는 성 뽈리카르포의 제자가 됩니다. 주변에서 이렇게 서로 보고 배운 성인들임을 깨닫습니다. 155년경 화형에 처해져 의연히 순교할 때 성인의 고백이 감동적입니다. 죽기까지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 성 뽈리카르포 주교입니다.

 

“내가 86세가 되도록 섬겨온 그분은 나의 왕이며 구세주이시고 또 나를 조금도 해치지 않으신 분이신데 어떻게 배반할 수 있겠는가!”

 

하루하루가 선택입니다. 주님을 참으로 사랑하여 선택함으로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제 운명의 십자가, 제 책임의 십자가를 지고 시종여일, 한결같이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인간 무지와 허무에 대한 궁극의 답도 주님을 따르는 십자가의 길 하나뿐이요, 이 십자가의 길에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끝으로 늘 고백해도 늘 새롭게 와닿는 제 좌우명 고백시를 다시 나눕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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