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Together) 따름의 여정 -끊임없는 회개-2023.2.25.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Feb 2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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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25.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이사58,9ㄴ-14 루카5,27ㄴ-32

 

 

 

더불어(Together) 따름의 여정

-끊임없는 회개-

 

 

“주님, 제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소서.

 제가 당신의 진리 안에서 걸으오리다.”(시편86,11ㄱㄴ)

 

어제의 감동적이고 인상적인 일화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10월초에 피정왔던 자매가 거의 5개월만에 다시 수도원을 찾았습니다. 그때는 20대 중반의 착한 아들을 잃고 왔는데 이번은 그 사이 60대 초반의 건강하고 착했던 남편을 잃고 답답하고 아픈 마음에 피정차 온 것입니다.

 

“죄가 너무 크고 잘못이 참 많습니다. 남편은 참 착하고 성실한 분이었고 끝까지 일하며 책임을 다했습니다. 저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그랬습니다. 이런 저에게 남편은 개의치 않고 충실했습니다. 나를 사랑했는데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동안 냉담했는데 작년 세상 떠나던 즈음 12월에는 열심했고 2개월 동안의 시골 노동현장에서도 매일 미사에 참석했다 합니다. 건강했던 분이 12월 그 추운날 눈이 많이 오던날 야외 화장실에서 변을 보던중 그대로 운명했습니다. 바로 그 전날 친구에게 보낸 카톡 내용입니다.

 

‘오늘 밤 저녁미사를 봤고 미사후에는 고백성사도 봤다. 너무 기분이 좋다. 밖에는 많은 눈이 내리고 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야외 화장실에서 그 추운날 용변을 보던중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착한 아들에 이어 이렇게 착하고 건강하던 남편을 잃었습니다. 죄가 너무 큽니다.”

 

즉시 답변을 드렸습니다. 

 

“하루하루 보속하는 마음으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죽는 그날까지, 살아 있는 그날까지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저도 보속하는 마음, 대속하는 마음,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주님을 따라 살아갑니다. 주님은 늘 함께 하시면서 용서해주시고 치유해 주시고 힘을 주십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구원의 길은 이 길 하나뿐입니다.”

 

자매님은 편안한 마음으로 집무실을 떠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은 평생 하루하루 날마다 주님을 따르는 따름의 여정입니다. 길잃고 방황하거나 떠도는 삶이 아니라 죽는 그날까지 하루하루 주님을 따르는 삶이요 여기에 동반하는 끊임없는 회개의 삶입니다. 따름의 여정은 동시에 회개의 여정이 됩니다. 그러면서 주님을 점차 닮아가면서 참내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 부름을 받고 주님을 따라나선 레위가 바로 우리 믿는 이들을 상징합니다. 주님과 세리 레위의 만남이 순전히 은총의 선물입니다. 세리의 주님을 찾는 내적 갈망과 순수를 한눈에 알아채신 주님이심이 분명합니다. 다음 장면이 극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밖에 나가셨다가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짧은 대목이지만 참으로 중요한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주님을 따라 나섬으로 이제 길을 찾았고 주님을 따르는 따름의 여정에 오르게 됐다는 것입니다. 아주 구체적으로 평생 살아야 할 삶의 목표, 삶의 방향, 삶의 의미, 삶의 중심이신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여기서 주석을 잠시 인용합니다.

 

‘루카는 마르코나 마태오와는 달리 그리스 말의 “따르다”를 단순 과거가 아니라 반과거로 쓴다. 이로써 그는 “따름” 곧 “제자됨”이 점진적이면서 항구적인 일임을 가리킨다. 루카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서는 레위의 행동을 회개의 본보기로 제시한다.’

 

한두번의 따름이 아니라 날마다 일어나서 다시 새롭게 주님을 따르는 따름의 여정중에 있는 우리들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레위를 부르신 다음 당신 제자들 공동체 합류시킨후 함께 식사합니다. 말그대로 회개한 죄인들의 공동체입니다. 이젠 혼자가 아닌 공동체의 회개한 죄인들인 도반들과 더불어(Together) 주님을 따르게 된 레위입니다. 그러니 더불어 따름의 여정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주님 말씀이 복음의 절정이자 요약입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과연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자 누가 있겠는지요! 우리 모두가 정도의 차이일뿐 모두가 병자요 죄인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치료받아야 할 환자로 여기시고, 당신 자신을 의사에 비유하십니다. 죄인이자 동시에 병자인 우리들입니다. 회개를 통한 치유요, 이것은 평생과정입니다. 그러니 따름의 여정은 회개의 여정임과 동시에 치유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바로 여기서 평생 최고의 명의가 되시는 우리 주님이십니다.

 

회개할 것 없는 의인이 아니라 끊임없는 회개를 필요로 하는 회개한 죄인들의 교회 공동체에 속한 우리들입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회개해야 부패하지 않습니다. 끊임없는 회개와 더불어 주님을 따를 때 악취나는 부패인생이 아니라 향기로운 발효인생이 됩니다. 인생 부패를 막아주면서 발효 인생으로 만들어 주는 결정적 효소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회개 은총입니다. 

 

이래서 따름의 평생 여정에 끊임없는 회개를 습관화 해주는 평생 성사인 성체성서와 고백성사가 그렇게 고마운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평생 회개의 일상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회개의 시스템 같은, 기도와 노동과 공부가 균형과 조화를 이룬, 중심과 질서가 확실한 하루의 일과표입니다. 이런 구체적 일과표에 따른 삶이 따름의 여정, 회개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끊임없는 쇄신과 내적혁명이 회개입니다. 바로 이런 분투의 노력의 훈련에 충실한 자들이 성인입니다. 제가 옛 한국 위인들의 평전을 읽으며 새삼 감동하는 것도 끊임없는 쇄신의 노력을 다하는 회개의 모습입니다. 이율곡 선생이 그렇고 성군이라 칭하는 세종대왕이 그렇습니다. 평생 휴식이 없는 고군분투의 모습들이요 심신이 소진될때까지 최선을 다하며 책임을 다한 모습들이 정말 감동적입니다.

 

옛 훌륭한 선비들이나 임금들에 비하면 오늘의 지도자나 고위 정치가들의 수준이 난쟁이 같고 너무 미흡함을 느낍니다. 옛 조선 선비들은 인격적으로나 실력으로도 진짜 엘리트였습니다. 이런 선비사상이나 전통이 사라진 천박한 오늘의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막연한 회개가 아니라 빛나는 실천을 통해 입증되는 회개의 진정성입니다. 바로 이사야서가 어제에 이어 참된 단식의 정신을, 참된 수행, 참된 회개, 참된 종교의 본질을 보여 줍니다. 너무 고무적인 신바람 나는 내용이라 전문을 인용합니다. 끊임없는 회개의 실천과 분발을 촉구하는 명문名文입니다.

 

“네가 네 가운데에서 멍에와, 삿대질과 나쁜 말을 치워버린다면,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 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준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 오르고,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

 주님께서 늘 너를 이끌어 주시고,

 메마른 곳에서도 네 넋을 흡족하게 하시며, 네 뼈마디를 튼튼하게 하시리라.

 그러면 너는 물이 풍부한 정원처럼, 물이 끊이지 않는 샘터처럼 되리라.”

 

참 회개 실천의 은총이 이렇습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끊임없는 개선과 쇄신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너는 오래된 폐허를 재건하고, 대대로 버려졌던 기초를 세워 일으키리라. 너는 갈라진 성벽을 고쳐 쌓는 이, 사람이 살도록 거리를 복구하는 이라 일컬어 지리라.”

 

참으로 이렇게 참된 회개의 실천을 위해 분투의 노력을 다할 때 우리는 주님 안에서 기쁨을 얻고, 세상 높은 것 위로 달리게 될 것이라니 얼마나 멋진 삶인지요!  최고의 명의이시자 영원한 도반이신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하루하루 날마다 평생 더불어의 따름의 여정, 회개의 여정, 치유의 구원 여정에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끝으로 제 좌우명시 한연으로 강론을 끝맺습니다. 끊임없이 맑게 흐르는 강이 상징하는바 한결같은 회개의 여정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하느님 바다 향해 흐르는 강(江)이 되어 살았습니다. 

때로는 좁은 폭으로 또 넓은 폭으로

때로는 완만(緩慢)하게 또 격류(激流)로 흐르기도 하면서

결코 끊어지지 않고 계속 맑게 흐르는 '하느님 사랑의 강(江)'이 되어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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