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중심의 삶 -메멘토 모리, 아모르 파티, 카르페 디엠-2023.3.8.사순 제2주간 수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Mar 0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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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3.8.사순 제2주간 수요일                                                             예레18,18-20 마태20,17-28

 

 

하느님 중심의 삶

-메멘토 모리, 아모르 파티, 카르페 디엠-

 

 

“인생은 기껏해야 칠십년, 근력이 좋아서야 팔십년,

 그나마 거의가 고생과 슬픔이오니 덧없이 지나가고,

 우리는 나는 듯 가버리나이다.”(시편90,10)

 

건강도 젊음도 찰나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 문병차 병원에 갔다가 코로나로 환자는 보지 못하고 전화 통화로 위로와 강복을 전했습니다. 참 많은 환자들로 병원이 북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병원이나 그럴 것입니다. 어제 우리 노수도형제도 눈수술을 위해 입원했습니다. 지난 토요일 이발때는 미리 강복을 받았고 오늘 미사전에 가게 된다며 특별미사를 청하여 새벽4시 집무실에서 수사님위해 함께 미사봉헌했습니다. 아무래도 많이 불안했던 듯 합니다.

 

참으로 건강하게 행복하게 사는 것도 참 짧은 날들이요, 대부분은 병고로 근심, 걱정으로 지내는 날들 같습니다. 요즘 들어 병고중인 분들도 많고 세상을 떠난 이들도 많습니다. 새삼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선물인지, 살아있는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전 카톡 메시지를 받고 공감했습니다. 천국의 시민들이 가장 많이 쓰는 천국의 언어 7가지라 합니다.

 

1.미안해요(I am sorry)

2.괜찮아요(That’ okay)

3.좋아요(Good)

4.잘했어요(Well done)

5.훌륭해요(Great)

6.고마워요(Thank you)

7.사랑해요(I love you)

 

좌우간 하루하루 많이 사용하여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하늘나라를 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이 오늘 지금 여기서 행복한 삶을 살게 합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에 꼭 기억해야 할 세마디를 나눕니다.

 

첫째,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성 베네딕도는 그의 규칙에서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라”(성규4,47) 말씀하셨습니다. 성인뿐 아니라 사막교부들의 이구동성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눈앞에 죽음을 환히 두고 살 때 언제 어디서나 환상이나 거품이 사라진 본질적 깊이의 참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당신 수난과 부활을 세번째로 예고하실 때 심정도 참 비장하셨을 것입니다.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나서 십자가에 못박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주님은 늘 죽음을 기억하며, 염두에 두고, 또 부활의 희망을 내다보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셨을 것입니다. 죽음을 염두에 둘수록 강화되는 하느님 중심의 삶입니다. 오늘 제1독서의 예레미야 예언자 역시 예수님처럼 사면초가의 위기상황입니다. 예수님처럼 죽음의 위기중에 간절히 기도하는 예레미야요, 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았을 예언자입니다.

 

“선을 악으로 갚아도 됩니까? 그런데 그들은 제 목숨을 노리며 구덩이를 파 놓았습니다. 제가 당신 앞에 서서, 그들을 위해 복을 빌어 주고, 당신의 분노를 그들에게서 돌리려 했던 일을 기억하소서.”

 

둘째, 아모로 파티(amor fati)

운명애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사상가운데 하나지만 우리 믿는 이들에게도 참 적절한 삶의 자세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의 운명을 적극적으로 사랑하여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짐을 기꺼이, 용감하게 선물로 받아들일뿐 아니라 하루하루 주님을 선택함으로 아름답고 보람차고 충만한 삶을 사는 것도 포함됩니다.

 

바로 이런 자세는 오늘 제자공동체를 대하는 예수님 모습에서도 잘 들어납니다. 참으로 동상이몽의 철부지 공동체같습니다. 스승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의 예고에도 불구하고 제베데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다가와 청을 드리니 말그대로 무지와 오해의 반영입니다.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스승님의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완전히 강요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일체의 동요없이 참으로 차분하게 대응하십니다. 이것은 주님의 소관밖이며 아버지께서 하실 일임을 밝히십니다. 대신 두 제자들이 책임을 다할 것임도 예고하십니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은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자기와 함께하는 공동체를 참으로 사랑하신 주님이심이 분명합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 말씀도 생각납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기에 앞선 묘사에서 얼마나 공동체 제자들을 사랑하신 주님이신지 아모로 파티의 빛나는 모범인 주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끝까지 내 삶을, 이웃 형제들을, 심지어 내 죽음까지, 자기의 운명을 통털어 사랑으로 감싸안는 자가 아모로 파티의 사람이요 예수님이야말로 그 빛나는 모범입니다. 원망은 추호도 없고 찬미와 감사,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한 영적승리의 삶을 상징합니다.

 

셋째, 카르페 디엠(Carpe diem)

지금을 살아라. 참으로 날마다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사는 메멘토 모리의 사람은, 참으로 자기 십자가의 책임을, 운명을 사랑하여 힘껏 등에 지고 품에 안고 살아가는 아모로 파티의 사람은 오늘 지금 여기에 충실하여 주님과 일치하여 본질적 깊이의 카르페 디엠의 삶을 삽니다. 

 

바로 복음의 예수님이 그 빛나는 모범입니다. 마치 주님의 유언처럼 들립니다. 군림하거나 지배하는 세상의 통치자들이나 고관들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섬김과 종의 영성에 충실한 삶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섬기는 사람이 되라는 어제와 똑같은 말씀입니다. 참 영성의 잣대는 섬김의 삶입니다.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삶, 이웃을 주님처럼 섬기는 겸손한 사랑의 삶입니다. 마지막 죽는 그날까지 하루하루 섬김의 삶에 충실하는 카르페 디엠의 사람이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느님 중심의 삶에, ‘메멘토 모리의 사람’으로, ‘아모르 파티의 사람’으로, ‘카르페 디엠의 사람’으로 살게 하십니다. 참으로 자주 인용해도 늘 새로운, 이 모두를 요약한 제 좌우명 고백 기도시 마지막 연을 나눔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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