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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3.21.화요일 사부 성 베네딕도 별세 축일                                              창세12,1-4요한17,20-26

 

 

떠남의 여정

-늘 새로운 시작-

 

 

“하느님의 사람, 베네딕도는

 하느님의 얼을 지니셨기에

 세상의 영화를 업신여기고 버렸도다.”

 

오늘 미사 시작전 입당송이 좋은 깨우침을 줍니다. 어제 우리 수도원의 수호자인 ‘성 요셉 대축일’에 이어 오늘은 우리의 ‘사부 성 베네딕도 별세 축일’입니다. 흡사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가 영원히 보고 배울 롤모델인 양대 수호성인을 배경으로 모신 듯 하여 마음 든든하고 뿌듯합니다. 

 

성인 축일을 맞이할 때 마다 각오를 새로이 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도전이자 하루하루 날마다 분투의 노력을 다하게 하는 성인들입니다. 요즘 새로이 깨닫고 확인하는 진리가 있습니다.

 

“삶은 반복이다.

삶은 선택이다.

삶은 여정이다.

삶은 훈련이다.

삶은 습관이다.”

 

1989년 사제서품이후 날마다 미사를 봉헌하고 강론을 쓰면서 깨닫는 진리들입니다. 지금도 ‘마리아의 집’ 피정집에는 34년전 첫미사때 앉은뱅이 제대가 있어 피정자들을 위해 미사를 집전할 때마다 새로운 감회에 젖곤 합니다. 

 

삶은 반복입니다. 그러나 단조로운 따분한 반복이 아니라 늘 새로운 반복, 거룩한 반복입니다. 반복뿐 아니라 선택도 여정도 훈련도 습관도 똑같습니다. 늘 새로운 선택에 거룩한 선택입니다. 늘 새로운 여정에 거룩한 여정입니다. 결코 똑같은 날은 없습니다. 코헬렛 말씀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있던 것은 다시 있을 것이고,

이루어진 것은 다시 이루어질 것이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코헬1,9)

 

하루하루 날마다 강론을 써오면서 제목이나 내용을 봐도 새로운 것이 없는 반복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강론 제목은 “떠남의 여정-늘 새로운 시작-”입니다. 아마 이 강론 제목도 수차례 반복되었을 것입니다. 9년전 2014년 안식년때 산티아고 순례 여정은 저에게는 획기적 전기가 되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 여정중 하루하루 날마다 가장 기다렸던, 또 기뻤던 때는 강론쓰고 미사후 새벽 떠날 때였습니다. 늘 설렘의 기쁨중에 새벽길을 떠났던 추억을 잊지 못합니다. 그러나 산티아고 순례 여정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수도원 정주의 삶이 제자리에서 하늘 본향을 향해 형제들과 더불어 하루하루 날마다 내적 순례 여정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참 많이 사용했던 주제가 ‘여정’입니다. 지상에서의 삶의 여정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참 많이 나눴던 삶의 여정에 대한 조언이 생각납니다. 삶의 여정을 일일일생 하루로 압축하면 어느 시점에 있겠는가? 일년사계로 압축하면 어느 계절에 위치해 있겠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제 경우 하루로 하면 넉넉잡고 오후 4시, 일년사계로 하면 초겨울쯤 되지 않나 싶습니다.

 

이런 확인이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선물인지 깨닫게 합니다. 환상이나 거품이, 허영이 걷힌 본질적 깊이의 진실과 겸손, 찬미와 감사의 삶을 살게 합니다. 하루하루가 떠남의 여정중의 삶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말씀의 이해도 확연해 집니다. 

 

제1독서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의 떠남이 얼마나 장엄합니까? 좌절함이 없이 아브라함을 통해 새로운 구원 역사를 펼치시는 하느님의 노력이 눈물겨울 정도로 신선한 감격이요 고맙습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힘이 됩니다. 아브람을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이 될 것이다. 아브람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

 

흡사 하루하루 떠남의 내적 여정에 충실하라는 우리를 향한 말씀처럼 들립니다. 12장 4절 앞부분으로 끝나는데 4절 후반부까지 인용됐으면 좋을뻔 했습니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 그의 나이는 일흔 다섯이었다’, 나이 75세이면 저와 같은 나이입니다. 

 

새삼 젊음은 나이에 있는게 아니라 열정에 있음을 봅니다. 나이 75에 복된 존재로 떠남의 여정에 오른 영원한 청춘 아브람이 우리에게는 신선한 도전이자 충격이 됩니다. 죽는 그날까지 떠남의 여정에 항구하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물도 고이면 썩습니다. 끊임없이 흘러야 맑은 물입니다. 더불어 떠남의 내적 여정에 항구할 때 안주가 아닌 진짜 정주의 삶이겠습니다. 바로 이런 소망과 결의가 담긴 고백시입니다. 아마 아브람의 내적 심정도 이와같았을 것입니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한결같이 깨어,

하느님 바다를 향해 흐르는 강이 되어 살았습니다.

때로는 좁은 폭으로, 또 넓은 폭으로

때로는 완만하게, 또 격류로 흐르기도 하면서

결코 끊어지지 않고 계속 흐르는 ‘하느님 사랑의 강’이 되어 살았습니다.”

 

떠남의 여정에 롤모델이 바로 아브람입니다. 아브람뿐 아니라 예수님 역시 떠남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오늘 복음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의 지상 삶을 마감하는 고별기도에 속합니다. 지상 삶을 떠나기에 앞서 하느님께 드리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기도로 끝맺는 마지막 떠남의 여정은 얼마나 아름답고 장엄한지요! 흡사 하루가 끝나는 저녁 일몰 분위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17장 고별기도의 순서는 “자신을 위한 기도”에 이어 “제자들을 위한 기도”, 그리고 오늘 ‘믿는 이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혼신의 힘을 다해 믿는 이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간청의 기도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저에 주신 영광을 저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 덕분에 하나의 일치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우리 교회공동체, 수도공동체 형제들입니다. 아브람, 예수님 모두가 떠남의 여정에 충실했던 우리의 영원한 롤모델입니다. 여기 떠남의 여정에 빛나는 모범이 있으니 우리의 자랑스러운 사부 성 베네딕도입니다. 

 

오늘 성인의 별세축일, 지상 삶에서 천상 삶으로의 떠남이 얼마나 장엄하고 아름다운지요! 아마도 성인은 “날마다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는 제자들에 대한 충고를 마음에 새기고 살았음이 분명합니다. 하루하루 일상에서 떠남의 여정에 충실했을 때 마지막 거룩하고 아름다운 죽음의 떠남입니다. 그레고리오 대 교황의 ‘베네딕도 전기’ 마지막 37장은 성인의 거룩한 죽음에 대한 기록입니다. 감동적인 37장 2절 전문을 인용합니다. 

 

‘그분은 임종하시기 엿새 전에 당신을 위해 무덤을 열어 두라고 명하셨다. 곧이어 그분은 열병에 걸리셨고 심한 열로 쇠약해지기 시작하셨다. 병세는 날로 심해져서 엿새째 되던 날 제자들에게 당신을 성당으로 옮겨 달라고 하셨다. 그분은 거기서 주님의 성체와 성혈을 영하심으로써 당신의 임종을 준비하시고, 쇠약해진 몸을 제자들의 손에 의지한 채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 기도를 하는 가운데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참으로 거룩하고 아름다운 마지막 떠남인 죽음의 장면입니다. 후대의 제자 수도승들에게 사부의 이런 거룩하고 아름다운 죽음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을 것입니다. 죽음은 삶의 반영이자 결과입니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이었기에 이런 거룩하고 아름다운 죽음입니다. 주님의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루하루 날마다 한결같은 떠남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주님, 저희가 당신께 바라는 그대로, 당신 자애를 저희에게 베푸소서.”(시편33,2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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