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4.9.주님 부활 대축일 사도10,34ㄱ.37ㄴ-43 콜로3,1-4 요한20,1-9
파스카의 기쁨, 신록의 기쁨
-사랑, 믿음, 희망-
우리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죽기까지,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한 아드님을 하느님께서 살리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우리도 부활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 덕분에 우리는 평생 매일 새롭게 폈다지는 ‘주님 파스카의 꽃’으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하신 파스카 예수님 덕분에 살맛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저절로 터져나오는 하느님 찬미입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더불어 방금 부른 화답송 시편 가사와 곡은 얼마나 흥겨웠는지요.
“이날이 주께서 마련하신날 이날을 기뻐하자 춤들을 추자”
비단 부활대축일뿐 아니라 평생 매일 불러도 좋겠습니다. 참으로 믿는 이들에게는 매일의 오늘이 이날이요 부활 대축일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부활 성야미사시 ‘파스카 찬송’에 이어 오늘 복음전 부속가는 또 얼마나 흥겨웠는지요! 수십년동안 마르코 수사님이 불러오다가 이번 부터는 라우렌시오 수사님이 부르게 된 것도 각별한 느낌입니다. 다음 부분이 더욱 파스카의 기쁨을 더하고 있습니다.
“살아계신 그리스도 그의 무덤을 부활하신 분의 영광을
목격자 천사들을 수건과 옷을 내보았노라.
내 희망 그리스도 살아계시니
그 제자들 앞에서 갈릴래아로 가시리라.”
우리 각자 삶의 현장을 상징하는 갈릴래아가 바로 살아계신, 부활하신 파스카 주님을 만나야 할 자리임을 깨닫습니다. 부활하신 파스카 주님의 기쁨이 온누리에 가득합니다. 만발했던 봄꽃들이 봄비에 지자마자 꽃보다 아름다운 신록의 나뭇잎들이 꿈꾸듯 펼쳐집니다. 파스카의 기쁨, 파스카의 꿈이 신록의 기쁨, 신록의 꿈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얼마전의 깨달음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참 좋은 분이 선물로 딸기를 사왔는데 순간 집무실을 딸기 열매 향기로 가득 채웠고 저절로 나온 사랑의 덕담입니다.
“어, 꽃만 향기가 있는게 아니라 열매도 향기가 있네요! 꽃보다 아름다운 신록의 나뭇잎처럼, 꽃 향기보다 더 좋은 열매 향기가 자매님 사랑의 향기같습니다. 파스카 주님을 닮아 익어 갈수록 아름다운 삶의 열매 향기이겠습니다.”
어제 면담고백성사를 드린 수녀님과 나눈 사랑의 덕담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참으로 이런 진정성 가득한 사랑의 덕담이 서로를 자유롭게하고 행복하게하고 향상시킵니다.
“신부님, 필요한 것이 있으십니까?”
“수녀님이 필요합니다!”
흡사 선문답같습니다. 달리 필요한 것이 없어 즉각 솟아 나온 답변입니다. 사실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혼자서는 살 수 없습니다. 아주 예전 어느 수녀님과의 문답도 생각납니다.
“신부님, 무엇을 좋아하십니까?”
“수녀님을 좋아합니다!”
달리 먹고 싶은 것도, 필요한 것도, 좋아하는 것도 없기에 얼떨결 대답했고 만족했습니다. 수녀님이 상징하는바 파스카의 주님입니다. 주님이 무엇을 원하느냐 묻는다면 두말할 것 없이 주님 당신 하나뿐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정말 믿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좋아하는 것은, 단하나 영적 배고픔과 목마름을 일거에 해결해 주실 파스카의 주님뿐일 것입니다. 바로 저는 이것을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배웠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파스카의 주님과 토마스 아퀴나스와의 대화입니다.
“토마스, 너는 나에 대해 참 잘 말했다. 너는 무슨 상급을 받기를 원하느냐?
(You have spoken well of me, Thomas. What is your reward to be?)
“오직 당신뿐입니다. 주님!”
(Nothing but youself, Lord!)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답변이 정말 멋집니다. 이 대답 말고 무엇이 있겠는지요. 어제 어느 좋은 분이 수도원에 있는 모든 분들에게 초콜렛 작은 것 한갑씩 나눠주라 선물했고 둥그런 작은 종이에 영어 한마디, “For you(너희를 위하여)”가 한눈에 들어 왔고 즉시 모세에게 계시된 하느님의 이름, “I AM”(나는 있다)”라는 불완전한 하느님 이름이 생각났습니다.
여기에 “For you(너희를 위하여)”를 붙여
“I AM For you”(나는 너희를 위해 있다),
또 하나 “With you(너희와 함께)”를 붙여,
“I AM With you(나는 너희와 함께 있다)”
를 붙여야 온전한 하느님의 이름이겠습니다. 우리와 함께, 우리를 위해 있는 임마누엘 하느님은 바로 파스카 예수님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파스카 예수님을 만날 자리는 예수님이 묻혔던 무덤이 아니라 각자 몸담고 살아가는 삶의 자리 갈릴래아입니다. 어떻게 하면 파스카의 주님을 만나 파스카의 신비를, 파스카의 기쁨, 신록의 기쁨을 살아갈수 있을까요? 그 답을 알려드립니다.
첫째 사랑입니다.
사랑밖에 길이, 답이 없습니다. 사랑할 때 주님을 만납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예수님의 빈무덤 소식을 듣고 쏜살같이 달려간 제자는 수제자 베드로와 애제자 요한이었습니다. 여기 나온 세분 모두가 예수님 사랑에는 막상막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단연코 돋보이는 인물은 애제자 요한입니다. 저는 익명의 애제자를 요한이라 부르겠습니다. 그의 주님 사랑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빈무덤에까지 달릴 때 수제자 베드로보다 앞섰고, 도착한후 수제자 베드로 뒤에 따라 들어감으로 겸양의 사랑이 빛납니다. 다음 한마디가 애제자의 주님 사랑이 얼마나 탁월했는지 입증합니다.
‘그제야 무덤에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전광석화, 빈무덤을 보는 순간 사랑의 눈이 활짝 열려 주님의 부활을 직감한 애제자 요한입니다. 기원전 47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폰토스 왕국 국왕 파르나케스 2세를 젤라 전투에서 간단히 이기고 나서 원로원에게 보낸 편지의 전문,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란 말마디가 생각납니다. 여기 애제자의 경우는 “왔노라, 보았노라, 알았노라”가 적절하겠습니다.
둘째, 믿음입니다.
부활하신 파스카 예수님께 대한 믿음의 증언이요 믿음의 선포입니다. 바로 사도행전의 베드로가 그 모범입니다. 예전의 유약했던 배반자 베드로가 아닙니다. 부활하신 파스카의 주님을 만난후 수제자의 위상을 완전히 회복한 베드로의 모습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베드로가 고르넬리오의 집에서 한 설교로 베드로의 설교들 가운데 백미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 사건이 잘 요약되어 있고 루가의 신학이 완벽하게 정리되어 나타납니다. 베드로의 확신에 넘친 고백이 그의 믿음을 반영합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하신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만에 일으키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미리 증인으로 선택하신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이 예수님을 두고 모든 예언자가 증언합니다. 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용사가 된 베드로요 우리의 믿음에도 신선한 자극이 됩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여 만났다면 믿음의 선포로 귀결되기 마련입니다. 이래야 파스카의 신비를, 파스카의 기쁨을 살 수 있겠습니다.
셋째 희망입니다.
희망의 샘에서 샘솟는 사랑이자 믿음입니다. 희망이 죽으면 사랑도 믿음도 죽습니다. 파스카의 주님께 희망을 둘 때 주님 사랑에, 주님 믿음에 항구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살되 세상에 매이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자유롭게 초연하게 살 수 있습니다. 바로 우리 삶은 천상 희망을 향한 순례여정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주인공인 애제자 요한이, 제1독서 사도행전의 주인공인 베드로가 주님을 증언했다면, 오늘 제2독서에서는 바오로가 파스카 주님께 희망을 둘 것을 강력히 권고합니다.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계신 파스카 예수님이 바로 우리 의 궁극의 희망이자 미래입니다. 바오로의 강론이 어느 하나 생략할 수 없어 전문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세상것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땅의 현실에 최선을 다하되 집착하지 말고 초연하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파스카 예수님께 희망을 둘 때 가능합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참 깊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속에 나타나실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 얼마나 놀랍고 새로운 충격적 고백인지요. 우리의 희망이자 우리의 생명이신 파스카 그리스도 예수님이 바로 우리 생명의 열쇠이자 행복의 열쇠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이신 파스카 주님과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날로 깊어질수록 파스카의 생명과 기쁨 충만한 삶임을 깨닫습니다. 다시 한번 고백하고 싶은 파스카 주님께 대한 사랑의 고백입니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기쁨, 저의 희망,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당신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파스카 예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과 믿음, 희망을 날로 깊이해 주십니다. 부활하신 파스카 주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빕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