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7.20.연중 제15주간 목요일 탈출3,13-20 마태11,28-30
주님은 ‘영원한 안식처’이시다
-정주와 환대-
“주님, 당신께서는 대대로
저희에게 안식처가 되셨습니다.”(시편90,1)
바티칸에서 일하는 분들의 자녀들중 5세에서부터 13세까지 250명 아이들을 위한 여름 캠프에서 교황님과 아이들이 주고 받은 대화들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세대를 초월하여 80대 후반의 할아버지 교황님이 10대 전후반 아이들과의 기탄없는 대화가 참 경이로웠습니다.
“교황님의 슈퍼 영웅(superheroes)은 누구입니까?”
한 아이의 질문에 대한 교황님의 답입니다.
“조부모가 나의 슈퍼영웅이다. 나는 그분들의 지혜를 생각한다. 그분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참으로 중요했다.”
어렸을 때, 어른들의 좋은 영향력은 아이들의 밑거름이 되어 노년에까지 큰 성장 동력이 됨을 봅니다. 노인은 많은데 어른이 없다는 세상에 참 어른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열정의 교황님입니다. 어른하면 생각나는 바 든든한 배경의 산같은 분입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가슴 활짝 열고
모두를 반가이 맞이하는
아버지 산앞에 서면
저절로
경건 겸허해져 모자를 벗는다
있음자체만으로
넉넉하고 편안한
산의 품으로 살 수는 없을까
바라보고 지켜보는
사랑만으로
늘 행복할 수는 없을까
산처럼!”-2000.11.17.
여기서 산은 제가 35년 동안 정주하면서 하루에도 수없이 바라다 본 수도원 배경의 불암산입니다. 불암산은 제 정주와 환대의 스승인 주님을 상징합니다. 요셉 수도원의 정주영성과 직결된 환대영성입니다. 어제 수도원을 방문하여 면담성사를 본 착한 자매와의 주고 받은 카톡 메시지의 청담淸談도 향기처럼 남아있습니다.
“늘 멋지고 품위있게 사세요! 사랑하는 자매님! 마가렛꽃 축복인사 받으시고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꽃말은 ‘진실한 사랑’이라네요.”
“항상 감사합니다. 신부님, 계시는 존재만으로도 너무 기쁘고 참 좋습니다. 꽃말이 너무 이쁩니다.”
“단아端雅하기가 자매님을 닮은 마가렛꽃같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이런 향기로운 청담은 주고 받는 모두에게 사랑의 자양분이 됩니다. 어제 산책중 처음 발견한 마가렛꽃이 참 반가웠습니다. 꼭 1년을 기다렸다가 아무도 돌보지 않았는데 거기 그 자리에 다시 피어난 정주와 환대의 청초한 보라색 마가렛꽃을 보니 수차례 인용했던 ‘환대는 꽃처럼’이란 시도 생각납니다.
“환대는 꽃처럼 하는 것이다
단 한 번이라도 찌프린 적이 있더냐
하루 이틀 몇날이든
언제나
활짝 핀 환한 얼굴로
오가는 이들
반가이 맞이하고 떠나 보내는
주차장 옆 코스모스꽃 무리들
피곤한 모습 전혀 없구나
볼 때 마다 환해지는 마음이다
환대는 꽃처럼 하는 것이다.”-2000.9.27.
무려 23년전 여기 요셉수도원에서의 시입니다. 수도원 배경의 불암산과 꽃들이 상징하는 바 정주와 환대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삶의 중심 자리에 정주하시면서 마음 활짝 열고 모두를 환대하시는 주님입니다. 이래서 주님의 집인 정주의 요셉 수도원은 환대의 집이 되고, 수도자들은 환대의 사람이 됩니다.
환대의 사랑, 환대의 기쁨, 환대의 축복, 환대의 아름다움등 끝이 없습니다. 사랑의 초대에 이어 사랑의 환대입니다. 반면 무시와 냉대의 아픔은 얼마나 길게 지속되는 지요! 주님이야말로 끝없이 가슴 활짝 열고 모두를 사랑으로 초대하시며 환대하시는 분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의 초대와 환대를 그대로 반영하는 예수님의 초대요 환대입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오늘 복음은 짧지만 강렬합니다. 제가 고백성사 보속시 참 많이 써드리는 처방전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차별없이 모두에게 활짝 열려 있는 안식의 품입니다. 바로 이런 주님의 환대를 그대로 반영하는 요셉 수도원입니다. 대부분 무거운 짐을 지고 고단하게 살아가는, 생존에 허덕이는 광야 여정중의 참 측은하고 가엾은, 영육으로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짐은 가볍다.”
그러나 값싼 은총은, 안식은 없습니다. 부단한 선택과 훈련, 습관화없이는 은총도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참된 안식도 없습니다. 평생 배움의 여정중에 있는 평생학인인 우리들입니다. 우리 인생은 사랑의 학교입니다. 졸업이 없는, 죽어야 졸업인 평생학인이기에 평생공부는 필수입니다. 무슨 공부입니까? 주님의 온유와 겸손의 사랑을 배우고 훈련하여 습관화하는 것입니다.
날로 주님의 온유와 겸손의 사랑의 멍에를 메고 배움의 여정에 충실할 때 주님을 닮아 온유와 겸손의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불편한 내 멍에는 주님의 편한 멍에로, 무거운 내 짐은 주님의 가벼운 짐으로 변합니다. 값싼 은총, 값싼 평화, 값싼 자유, 값싼 안식은 결코 없습니다. 100% 주님 손에 달린 듯이 기도하고 100% 내 손에 달린 듯이 노력하라 했습니다.
참으로 평생학인이 되어 부단히 치열히 온유를, 겸손을 배우고 훈련하여 습관화하여 주님을 닮아갈 때 비로소 참된 안식에 참된 평화에 참된 자유입니다. 이래야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가 되고 내적 힘의 원천이 됩니다. 탈출기의 모세와 복음의 예수님이 너무 닮았습니다. 어제 봤다 시피 두분의 하느님 아버지와의 친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독보적입니다. 예수님의 예표로 손색이 없는 참 매력적인 인물이 모세입니다.
광야여정의 수련중 단련되어 황금같이 단단하고 순수로 빛나는 모세를 찾아 오신 하느님을 환대하여 긴밀한 기도의 대화를 나누는 참으로 진지하고 침착하며 열정많은 모세입니다. 모세를 환대하는 주님이요 주님을 환대하는 모세입니다.
하느님은 모세에게 자신의 정체를 알려주시고 흉금을 열고 자신의 계획을 소상히 밝히십니다. 얼마나 모세를 신뢰하고 사랑하는 주님이신지요! 주님과의 이런 깊은 친교의 만남이 주님과 관계를 한없이 깊이 했을 것이며 모세에겐 내적 힘과 안식의 원천이 되었을 것입니다. 누구보다 주님을 닮아 겸손과 지혜, 신뢰와 자비의 사람이 되었을 모세입니다.
바로 여기서 계시되는 “나는 있는 나다.” “있는 나”로 계시되는 하느님이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모세의 하느님, 그리고 우리의 하느님이 되시는 분입니다.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I AM sent me to you)
영어로 쓰면 분명히 드러나는 “I AM(있는 나)” 하느님 이름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있는 하느님(I AM with us)”, “우리를 위해 있는 하느님(I AM for us)”임을 깨닫게 됩니다. 얼마나 은혜로운 하느님 이름인지요! 바로 이런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으니 바로 늘 우리와 함께 계신, 늘 우리를 위해 계신,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인 예수님이십니다. 바로 이런 주님을 우리 삶의 중심에 모시는 이 거룩하고 복된 미사시간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