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라라.” -홀로와 더불어, 따름의 여정-2023.9.21.목요일 성 마태오 사도 복음 사가 축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Sep 21, 202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23.9.21.목요일 성 마태오 사도 복음 사가 축일 

에페4,1-7.11-13 마태9,9-13

 

 

“나를 따라라.”

-홀로와 더불어, 따름의 여정-

 

 

모든 종교에 기도가 필수이지만 가톨릭 교회야 말로 기도의 보고寶庫입니다. “가톨릭 기도서”에 순서대로의 네 기도문이 기도의 기초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성호경,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입니다. 집무실에 들어와 “만세육창” 기도를 바치기전 우선 순서대로 바치는 네 기도문입니다. 사실 가톨릭교회 신자로서의 정체성을 견고히 하는데 십자성호를 그으며 바치는 성호경보다 더 짧고 좋은 기도는 없을 것입니다. 새벽 휴게실에 들렸다 신간서적의 표지 그림과 글자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땅이 주는 치유의 선물, 맨발로 걸어라, 돈이 안 들고 부작용이 없는 최고의 자연치유요법, 일상의 감기부터 암, 심혈관, 뇌질환, 고혈압, 당뇨, 아토피, 치매, 코로나19 등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지금 당장 맨발걷기를 시작하라!”

 

정말 바람직한 맨발걷기 운동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에 반드시 하나 추가하고 싶습니다. “주님과 함께, 주님을 따라 맨발로 걸어라.” 이렇게 의식하면서 걷든다면 걷기는 그대로 기도가 되고 최고의 의사이자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치유해주실 것입니다. 

 

오늘은 성 마태오 복음 사가 축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오를 부르는 과정이 극적입니다. 마태오에게는 주님과의 극적인 만남이자 은총의 만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길을 가시다가 세관에 앉아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길이신 주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길이신 주님을 기다리는 마태오의 간절한 눈빛을 보셨음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앞서 마태오의 주님을 찾는 갈망이 우선했음을 봅니다. 주님을 찾는 갈망이 없으면 주님 찾아오시지도 않고 찾아 오셔도 모릅니다. 마태오의 갈망의 눈빛을 일별하자마자 즉시 마태오를 부르십니다.

 

“나를 따라라.”

 

 마태오는 즉시 일어나 주님을 따랐습니다. “나를 믿어라”, “나를 사랑하라” 말씀하시지 않고 “나를 따라라” 하십니다. 그동안 얼마나 기다렸던 주님이시겠는지요! 부질없는 질문이지만 만약 마태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지 못했다면, 또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지 못했다면 그 삶은 어떠했을런지요? 그러니 주님의 부르심은 크나큰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누구나 마음 깊이에서는 길을, 빛을, 희망을 찾는 갈망이 있습니다. 살아있다하여 다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참길이자 참빛이자 참희망인 주님을 만나 따를 때 참으로 살아 있다 할 것입니다. 도대체 주님이 아니곤 누구를 따르겠는지요?

 

“나를 따라라.”

 

주님은 누구도 무시하거나 차별하지 않으시며 있는 그대로의 갈망을 보시고 부르십니다. 참으로 무시받고 사람 대접 못받던 마태오에 대한 일체의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의 그의 갈망을 보고 부르십니다. 평생 날마다 주님을 따라 나서는, “따름의 여정”중인 우리들입니다. 각자 홀로 또 더불어의 따름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을 따라 나선 마태오를 당신 제자 공동체에 합류시키는 주님이십니다. 이제 홀로와 더불어, 주님을 따르는 여정에 오른 마태오입니다. 세리와 죄인들이 어울린 제자공동체를 보자 바리사이들은 즉시 제자들에게 이의를 제기합니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인 밥을 함께 나누는 식탁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의 답변이 명쾌하여 복음적 제자 공동체, 교회 공동체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그대로 하느님 마음이, 하느님 사랑이 반영된 제자공동체입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예나 이제나 예수님의 제자공동체, 교회공동체, 수도공동체, 가정공동체는 엘리트 의인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죄인들의 공동체, 병자들의 공동체, 참으로 주님의 자비를 필요로 하는 부족한 이들의 공동체임을 깨닫습니다. 회개할 것 없는 의인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회개한 죄인들의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죄가 없어서, 병이 없어서 부름받기로 한다면 세상에 부름 받을 사람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도대체 세상에 죄없는 사람, 병없는 사람 어디있겠는지요? 죄를 용서받고 병을 치유받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우리들입니다. 사실 길이자 빛이자 희망이신 주님을 잃으면, 잊으면 누구나에게 뒤따르는 죄요 병입니다.

 

오늘 제1독서 에페소서는 제자들의 교회공동체의 특징과 삶의 원리를 분명히 밝혀줍니다. 우선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라 말씀하시며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기본적 덕목 지침을 명시합니다.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서로 참아 주며,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정말 필요한 덕목이 겸손, 온유, 인내심, 평화, 일치요 이 또한 성령의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이어 하나 중심의 공동체의 특성을 밝힙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요,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한 분 하느님 아버지를 일치의 중심에 두고 더불어 주님을 따르는 순례 여정중의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공동체 성원의 내적성장에 관한 말씀도 은혜롭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 이 사실은 공동체 형제들이라면 누구나 깨닫는 진리입니다. 저마다 받은 고유의 은총들이 상호보완되면서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의 성장이요 각자의 성장임을 참으로 아름답게 묘사하는 바오로입니다.

 

“성도들인 공동체의 형제들은 각자 직무를 수행함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게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러니 날로 주님을 따르는 따름의 여정에 충실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이르는 것이 우리 공동체의 궁극의 목표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의 일치와 성숙, 충만한 경지에 이르는데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아멘.

 

 


Articles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