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중심의 공동체 삶 -중심, 질서, 균형-2023.9.28.연중 제25주간 목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Sep 2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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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9.28.연중 제25주간 목요일                                                                     하까1,1-8 루카9,7-9

 

하느님 중심의 공동체 삶

-중심, 질서, 균형-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시고,

 가난한 이들을 구원하여 높이신다.”(시편127.4)

 

-“역사가 없는 나라”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상을 초월하는 야만적 행태들을 보면서 다시 역사를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망각한 나라가 아니라, 아예 역사가 없는 나라이다. 이 나라엔 역사의식도, 역사청산도, 역사교육도 없다.-

 

어제 읽은 칼럼 기사 일부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올바른 역사 교육이 빠지 교육은 얼빠진 교육입니다. 공동체 중심을 확고히 해주는데 올바른 역사 교육은 필수입니다. 역사가 없는 나라는 미래가 없습니다. 이는 나라뿐 아니라 모든 공동체와 개인에도 해당됩니다. 또 하나 인터넷에서 읽은 기사입니다.

 

-“내 새끼 지상주의를 넘어야 한다”

모두가 존중받는 공동체형 학교를 지향해야 한다. 광화문 1차 집회에서 한 선생님은 이렇게 외쳤다.

“교육은 사랑입니다. 아이들을 사랑할 기회를 주십시오!”

이제 우리 모두 공동체적 학교를 향한 여정을 시작하자. 모두가 사랑하기 위해서이다. 이 새로운 과제를 위해 우리 모두가 지혜를 모으자. 정답이 없는 이 여정 위에서 말이다.”-

 

사랑이 답입니다. 사랑밖엔 길이 없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입니다. 하느님이 답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이 답입니다. 공동체든 개인이든 똑같습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질서와 균형도 이뤄집니다. 바로 우리 믿는 이들의 고백입니다. 그동안 강론에서 삶의 중심에 대해 얼마나 많이 강조했는지 모릅니다. 중심부재, 중심상실에서 기인하는 온갖 재앙이요 불행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가톨릭 기도서 맨처음에 나오는 십자성호를 그으며 바치는 성호경은 하느님이 삶의 중심임을 전존재에 각인시켜주는 기도입니다. 개인기도든 공동기도든 하느님 중심을 확고히 해주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여기 열세명의 수도형제들이 늘 거기 그 자리 요셉 수도원에서 정주의 삶을 살 수 있음도 이런 한결같은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기인합니다. 오늘 독서와 말씀을 묵상하면서 떠오는 시편 127장 전반부 내용입니다.

 

“주님께서 집을 아니 지어 주시면,

 그 짓는 자들 수고가 헛되리로다.

 주님께서 도성을 아니 지켜 주시면,

 그 지키는 자들 파수가 헛되리로다.

 이른 새벽 일어나 늦게 자리에 드는 것도,

 수고의 빵을 먹는 것도 헛되리니,

 주님은 사랑하시는 자에게, 

 그 잘 때에 은혜를 베푸심이로다.”(시편127,1-2)

 

하느님 중심을 잃은 삶에서 저절로 터져 나오는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코헬렛 첫절의 탄식입니다. 오늘 제1독서 하까이서도 하느님 중심 부재의 삶이 얼마나 헛된 노고인지 잘 드러납니다.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아라. 씨앗을 많이 뿌려도 얼마 거두지 못하고, 입어도 따뜻하지 않으며, 품팔이꾼이 품삯을 받아도, 구멍난 주머니에 넣는 꼴이다.”

 

이래서 주님은 하까이 예언자의 입을 통해 시급히 주님의 집을 지어 공동체의 중심을 확고히 하라 명령하십니다.

 

“주님의 집이 무너져 있는데, 너희가 지금, 판벽으로 된 집에서 살 때냐?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아라.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집을 지어라. 그러면 나는 그 집을 기꺼이 여기고, 그것으로 영광을 받으리라.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우선적인 것이 공동체든 개인이든 하느님 중심의 가시적 표지인 주님의 집을 삶의 중심에 놓으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가시적 중심인 주님의 집인 성전에서 끊임없이 거행되는 시간전례 및 미사전례등 교회전례에의 참여가 하느님 중심의 삶을 견고히 해줍니다.

 

오늘 복음의 헤로데는 이런 삶의 중심이 없기에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에 몹시 당황하여 안정과 평화를 잃고 불안과 두려움으로 전전긍긍, 갈팡질팡, 우왕좌앙 내적 혼란에 휩싸입니다. 참으로 하느님 중심을 잃을 때 세상 것들에 중독 마비되어 괴물이, 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요한이, 더러는 엘리야가, 또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는 말을 듣자 헤로데는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물으면서 헤로데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합니다. 

 

믿는 이들 모두 다 롤모델이자 삶의 중심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분, 예수님 “이 사람은 누구인가?”평생 화두로 삼아 묻고 따라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살아가는 예닮의 여정. 하닮의 여정중에 내적 안정과 평화에 영원한 생명의 구원입니다. 마침 어제 어느 자매님이 전해 준 감동적 메시지가 마음에 깊이 남아있습니다. 

 

“저는 요양원에서 지난 주에 남편 모셔와 꼼짝않고 곁에서 케어하고 있습니다. 저는 몹시 힘든데 남편이 좋아 죽으니, 그저 된걸요. ‘예닮, 하닮의 여정’ 참으로 지금의 저에겐 의미 깊숙이 다가옵니다.”

 

주님의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전례 은총이 우리 모두 “일치의 중심”인 주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누리며 살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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