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5.연중 제26주간 목요일 느헤8,1-4ㄱ.5-6.7ㄴ-12 루카10,1-12
주님 중심의 말씀의 전례 교회 공동체
-친교와 파견-
어제 제 영명축일에는 참 많은 분들로부터 카톡을 통해 축하 메시지를 받고 즉시 감사와 축복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또 새벽 멀리 네팔에서 8월초부터 3개월쯤 머물고 있는 자매로부터 반가운 메시지를 발견했습니다. 거의 10여년 이상을 매일 제 강론을 수백분에게 발송해주는 복음 선포의 일꾼입니다. 자매님의 시종여일 한결같은 삶에 주님의 축복을 비는 마음입니다.
“신부님, 영명축일을 축하드립니다. 저희 곁에서 주님의 말씀을 전달해 주시는 신부님께 늘 감사드립니다. 저는 네팔 포카라에서 새벽 4시에 일어나 신부님의 묵상글을 보내면서 행복해 합니다. 신부님이 이른 새벽에 저희들을 위하여 묵상글을 준비하시는 것을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건강하게 잘 지내시길 기도드립니다.”
어제에 이어 답신 내용은 동일했습니다. 수도원 십자로 중앙에 위치해 있는 예수님 성심상을 배경으로 서서 찍은 제 사진에다 축복기도 바치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정성 가득 담아 보낸 대동소이한 메시지입니다. 위 네팔의 자매에게는 다음과 같은 답글을 보냈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자매님, 여전히 언제 어디에서나 말씀의 봉사자로 최선을 다하시네요. 수도원 예수님과 프란치스코 신부의 축복인사 받으시고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그러고 보니 세상 신자분들에게 널리 퍼지고 있는 제 강론글들을 통해 예수님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교회 공동체가 형성됨을 봅니다. 그러니 우리는 알게 모르게 주님 중심의 교회 공동체에 몸담고 생명의 말씀을 섭취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보이지 않는 교회 공동체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보이는 가시적 교회 전례 공동체에 참여할 때 비로소 온전한 신앙생활이겠습니다.
전례중의 전례가 미사전례와 시편 시간경 전례입니다. 이 두 공동전례가 교회 수도공동체를 이루어줍니다. 수도원 피정온 분들이나 방문한 분들도 전례기도에 함께 참여함으로 주님 중심의 전례 공동체에 속함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이 전례기도의 은총으로 주님 중심의 온전한 일치 공동체를 이루게 됩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가 그 회당전례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격에 벅차 거행하는 말씀의 전례입니다. 에즈라가 위대하신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모세의 율법서를 펴자 온 백성은 손을 들고 “아멘, 아멘!”하고 응답합니다. 그 다음 무릎을 꿇고 주님께 경배합니다.
느헤미야 총독과 율법학자며 사제인 에즈라와 백성을 가르치던 레위인들은 말씀을 들으면서 감격에 벅차 우는 온 백성을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참 아름다운 전례 공동체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오늘은 주 여러분의 하느님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도 울지도 마십시오.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십시오. 오늘은 우리 주님께 거룩한 날이니, 미쳐 마련하지 못한 이에게는 그의 몫을 보내 주십시오.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쁨이 바로 여러분의 힘이니 서러워하지들 마십시오. 오늘은 거룩한 날이니, 조용히 하고 서러워하지 마십시오.”
그대로 미사때 마다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여도 참 은혜롭겠습니다. 이런 공동전례가 아니곤 어디서 공동체 일치의 은혜로운 체험이 가능하겠는지요? 전례의 은총과 힘은 그대로 하느님의 은총과 힘입니다. 참으로 허무하고 무의미한 광야 인생, 괴물이나 폐인이 되지 않고 온전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음은 이런 전례은총임을 깨닫습니다. 온 백성은 선포된 말씀을 알아듣고 함께 먹고 마시며 크게 기뻐했다 합니다.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쁨이 여러분의 힘이다.”
라는 말씀이 참 은혜롭습니다. 공동전례를 통해, 말씀을 통해 주님을 만날 때 선사되는 기쁨이 바로 우리의 힘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기쁨의 힘으로 광야인생 살아갈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이래서 바오로 사도는 항상 기뻐하라 하십니다. 그러니 결코 자기만족, 자기폐쇠의 전례 공동체가 아닙니다. 곧이어 파견이 뒤따를 때 온전한 공동체의 실현입니다. 친교와 파견은, 복음 선포자로서의 파견은 공동체 생명의 리듬입니다. 파견의 선교가 없는 교회 공동체는 죽은 공동체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께서도 당신 제자공동체의 친교의 일치를 위해 나름대로 말씀의 전례를 거행했음이 분명합니다. 마치 주님은 일치의 중심이자 공동체의 총사령관처럼 당신에 앞서 일흔 두명을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둘씩 보내십니다. 마치 당신의 일꾼을, 당신 복음의 전사를 파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일꾼이자 주님의 전사로 파견되는 이치는 예나 이제나 똑같습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여전히 오늘날 주님의 일꾼으로, 주님의 전사로 세상에 파견되는 우리에게 주시는 가르침을 구체적으로 나눕니다.
첫째, 예나 이제나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습니다. 그러니 수확할 세상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주십사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니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 청하기에 앞서 나부터 주님의 성실한 일꾼이, 주님의 용감한 전사가 되어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로 사는 것입니다.
둘째, 이리떼 세상에 무방비의 양들로 파견되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명심하며 사는 것입니다.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말그대로 자기를 비운 비폭력적 삶의 모습입니다. 소유가 아닌 존재의 삶을, 본질적 무욕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소유의 힘이 아닌 존재의 힘, 하느님의 힘으로 살아가는 파견받은 복음 선포자의 신분입니다. 이리떼 가득한 세상에서 이보다 더 좋은 대책은 없습니다. 참으로 온전히 비울 때 주님의 성령이, 주님의 능력이 빈자리를 채울 것이니 바로 텅빈충만의 기쁨과 행복이요, 주님 친히 방패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이 우리의 힘임을 체험할 것입니다.
셋째, 주님 평화의 일꾼, 평화의 전사로 사는 것입니다. 참 좋은 최고의 선물이 주님의 평화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를 만나든 속으로든 겉으로든 진심으로 “평화를 빕니다.” 축복의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아니 우리 존재 전체 자체가 주님의 평화가 되어 사는 것입니다. 참 좋은 기도는 주님의 평화를 달라고 청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평화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평화를 받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마음을 활짝 열고 주님 평화의 선물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평화임을 깨닫습니다.
넷째, 환대에 감사하면서 번잡하거나 가볍게 처신하지 말고 이런저런 좋은 자리를 찾아 다니는 욕심을 내지 않는 것입니다.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니 주어지는 접대에 자족하면서 일정한 자리에 정주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오늘의 선교사들에게도 참고할 내용입니다. 이런 무욕과 겸손, 분별과 절제, 예의의 선교사들에게 선사되는 주님의 축복입니다.
다섯째, 언제 어디에 자리하던 병자를 치유해주고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님뿐 아니라 우리 믿는 이들의 영원한 꿈이자 비전입니다. 요즘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죄도 병도 아픔도 많습니다. 대부분 영육으로 치유받고 구원받아야 할 병자들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전하기 전 내 존재 자체가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나라가 되어 사는 것입니다.
주님과 일치가 깊어질수록 하느님 나라의 현존이 되어 살 때 우리를 만나는 이들은 저절로 치유될 것입니다. 얼마전 하늘병원에 진료차 갔을 때 젊은 착한 간호원 둘이 자발적으로 강복을 청해 주었습니다. 강복을 청하는 그 마음이 하늘나라의 실현이요 동시에 영육의 힐링도 일어날 것입니다.
여섯째, 분별력의 지혜를 발휘하는 것입니다. 냉대와 박대로 아니다 싶을 때는 지체없이 단호히, 결연히 떠나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고을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까지 여러분에게 털어버리고 갑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주님의 이어지는 말씀이 충격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에는 소돔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완고한 무지의 사람들에게 주는 좀 과장된 충격요법의 경고입니다. 참으로 이런 심판은 주님이 아닌 무지로 인해 스스로 자초한 불행이요 재앙임을 봅니다. 이어지는 복음을 보면 파견받는 일흔 두 제자들은그들이 속한 제자공동체의 주님께 돌아가 그 성과를 보고합니다. 새삼 파견자들과 복음 선포자들이 지쳐 고갈된 자신들의 영육을 충전시켜야 할 중심자리이자 정주처, 안식처는 그들이 속한 공동체임을 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친교 공동체 안에서는 “당신의 제자”로, 세상에서는 하늘나라의 전사이자 일꾼인 “평화의 사도”로 살게 하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