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안(開眼)의 여정 -날로 좋아지고 지혜로워지는 삶-2023.11.20.연중 제33주간 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Nov 2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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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0.연중 제33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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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안(開眼)의 여정

-날로 좋아지고 지혜로워지는 삶-

 

 

“이 몸과 이 마음 다한다 하여도,

 내 마음의 바위, 나의 몫은 항상 하느님.”(시편73,26)

 

오늘 따라 만추의 밤하늘의 별들이 초롱초롱합니다. 부질없는 상상이지만 오늘 복음의 예리코의 눈먼 걸인이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또 우리가 주님을 만나 세례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새삼 우연은 없고 모두가 주님의 구원 은총의 섭리안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런 깨달음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하느님 찬미와 감사입니다. 밤하늘의 별하면 그립게 떠오르는 두편의 시입니다.

 

“삶은 

 외로움을 견뎌내는 것

 외로움중에도

 묵묵히 꽃들 피어내는 것

 하늘이 

 별들 피어내듯

 땅이

 꽃들 피어내듯”-2001.8.17.

 

“땅의

 행복은 

 밤마다 누워

 하늘 바라보며

 별들 가득 담아 두었다가

 꽃들로 

 피어내는 것이다”-2001.8.20

 

이런 이들이 좋고 지혜로운 분들입니다. 좋고 지혜로운 분들과의 만남의 뒷맛의 여운이 향기처럼 남아있습니다. 어제는 참 좋고 지혜로운 여러분들을 만났고 메시지도 주고 받았습니다. 좋은 분 주변에는 좋은 분들이 두루 연결되어 있음을 봅니다. 날로 좋아지고 지혜로워지는 느낌의 따뜻한 분들의 모습은 감동적입니다.

 

“어제 고등학교 반 친구들 모임(반창회)가 있었어요. 저의 환갑 축하겸 이른 송년회, 반장이었던 친구가 요절하여, 부반장인 제가 25년 정도 계속 모임 대표를 맡았네요. 어제 받은 행운의 열쇠 선물에 쓰인 문구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좀 쑥스럽긴 하지만 신부님께 보여 드리고 싶어서...

<치양, 그대의 선한 에너지가 우리 모두에게 왔다 3반 일동>”

 

25년 동안 계속되는 우정의 모임이 참 놀랍고 아름답습니다. 말그대로 “우정의 여정”중인 도반들입니다. 많은 좋은 분들과 좋은 관계의 사랑속에 행복하게, 결코 외롭지 않게 살아가는 지혜롭고 멋진 도반의 메시지입니다.

 

어제 방문했던 옛 교대 동문들과의 좋은 만남도 향기처럼 여운으로 남아있습니다. 네분 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고 한부부는 독실한 불교 신자인데도 수도원 주일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함께 수도원에서 찍은 사진도 참 맘에 들었고 메시지도 나눴습니다.

 

“좋은 분들, 멋진 사진 감사합니다! 오늘은 ‘주님의 참 좋은 분들의 수도원 방문 축일’이었습니다. 내일 모든 분들위해 생미사봉헌합니다.”

 

한동안 제주도에 머물던 좋은 영적도반도 수도원에서 하루 머물며 고백성사를 보고 미사후 떠났으며, 올해 전반기 6개월 동안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재활훈련후 기적적으로 회복하여 2학기부터 대학 강의를 하고 있는 분의 예화도 감동스러웠습니다. 힘겹게 온힘을 다해 강의후 수강생들 수십명이 우렁찬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중에서 최선을 다하는 교수의 모습이 마음 짠한 감동을 줬음이 분명합니다. 역시 주님의 은총중에 최선을 다해 날로 좋아지고 지혜로워지는 여정을 살아가는 분입니다. 

 

또 열두명의 제 가족 친지들이 제부(弟夫) 칠순 축하모임후 수도원을 방문했습니다. 얼마나 밝고 좋고 유쾌한 분위기였는지 역시 향기처럼 남아있습니다. 선(善)한 사람들의 선(善)한 향기입니다. 새삼 우리의 삶은 결코 혼자가 아닌 “더불어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2014년 산티아고 순례 여정후 깊이 각인된 여정에 대한 기억입니다.

 

개안(開眼)의 여정, 바로 오늘 강론 제목입니다. 오늘 복음은 영적 상징들로 가득하며 “소복음서”라할만큼 참 의미들이 풍요롭습니다. 참으로 영적 삶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삶은 노화의 여정이 아니라 성화의 여정이요, 날로 너그러워지고 지혜로워지는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주님과의 계속된 만남이 이런 개안의 여정에 결정적입니다. ‘길가에 앉아 구걸하는 눈먼이’가 상징하는바 무지에 눈먼 가난한 인간 실존입니다. 그가 눈뜨고 싶은 갈망이 얼마나 컸던지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에 전광석화, 본능적 으로 반응합니다. 갈망중에 늘 깨어 있었던 영혼임이 분명합니다. 참으로 한결같은 갈망으로 주님을 찾을 때 주님은 오십니다.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 유명한 자비송 기도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바칠 단 하나의 기도를 꼽는다면 자비송 하나일 것입니다. 우리 삶의 내적 여정에 끊임없이 바쳐야 할 참 좋은 기도가 자비송입니다. 주변의 만류에도 거듭 도움을 청하는 갈망의 사람, 눈먼 걸인에 대한 주님의 응답입니다. 

 

다음 주님과의 문답은 우리 모두의 깊은 갈망을 대변합니다. 소망이 절실하니 주고 받는 말마디 역시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예전 선사(禪師)를 찾았던, 사막수도교부를 찾았던 제자들과의 문답을 연상케 하는 예수님과 눈먼 걸인과의 대화입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참으로 주님을 찾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보편적 화두와 같은 물음입니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참으로 주님을 찾는 영적인간이라면 답은 이것 하나뿐입니다. 좀더 심안이, 영안이 열려 잘 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을, 혜안을 지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러자 그는 즉시 눈이 열려 다시 보게 됩니다. 개안의 여정은 주님과 만남의 여정, 믿음의 여정과 함께 감을 봅니다. 한두번 주님과 만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그날까지 평생 만남의 여정중에 날로 마음의 눈도 밝아져 더욱 주님을 닮아 자비롭고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보게 된 눈먼 걸인은 하느님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르니, 이제 그의 여정은 찬양의 여정, 따름의 여정으로 변합니다.

 

주님을 만남으로 얼마나 풍요로워진 내적 여정의 삶인지요! 주님과 더불어, 만남의 여정, 개안의 여정, 믿음의 여정, 찬양의 여정, 따름의 여정등 얼마나 아름답고 향기로운 삶인지요! 이래야 진짜 사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주님을 보라 있는 눈이요, 주님을 찬양하라 있는 입이며, 주님의 말씀을 들으라 있는 귀요, 주님을 따르라 있는 발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두요 존재이유라는 것입니다.

 

이래야 세상에 동화되어 속화되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성화하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유다인들이 이민족의 문화에 접함으로 처절한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는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일부 유다인들은 이민족들의 풍습에 따라 예루살렘에 경기장을 세우고, 할례받은 흔적을 없애고, 거룩한 계약을 저버림으로 동화에 박차를 가하니 정체성 상실 위기가 풍전등화입니다.

 

반면 순교적 열정의 치열함으로 이스라엘에는 부정한 것을 먹지 않기로 굳게 결심한 이들도 많았고, 이들은 음식으로 더럽혀지거나 거룩한 계약을 모독하느니 차라리 죽어가는 순교를 택합니다. 오늘날 우리 신앙의 정체성의 위기는 무엇입니까? 누군가는 오늘날 지옥은 텅비어 있다 말합니다. 악마들이 해방되어 활개치며 준동하는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세속주의, 물질만능주의, 대량 소비주의, 인명경시주의, 광신의 믿음과 이념갈등, 생존경쟁, 약육강식, 승자독식, 각자도생, 차별과 혐오등 “야만의 시대”(?)에, 무수한 악마들과 우상들이 우리의 내면을 세속화와 폐허화로 이끌어 감으로 방심하면 어느새 괴물이 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끊임없이 깨어 기도하며 살아가야 할 때요, 날로 심안이, 영안이 밝아져 가는 개안의 여정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래야 눈밝은 분별의 지혜로 악마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새삼 좋고 지혜로운 도반들과 더불어 사랑으로 연대하여, 개안의 여정에 충실해야 함을 봅니다. 혼자의 여정이 아니라 주님과 더불어 좋고 지혜로운 도반들과의 개안의 여정이라는 것입니다.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더불어 개안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다음 같이 고백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쓰는 강론입니다.

 

“하느님 곁에 있는 것이 내게는 행복,

 이 몸 둘 곳 하느님, 나는 좋으니

 하신 일들 낱낱이 이야기하오리다.”(시편73,2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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