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21.화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즈카2,14-17 마태12,46-50
예수님의 참가족, 한가족이 된 우리들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함께”
-성모님 예찬-
요즘 만추의 새벽 밤하늘 한복판에 맑고 밝게 빛나는 북두칠성을 바라볼 때 마다 마음이 상쾌합니다. 우리 영혼 역시 초롱초롱 빛나는 만추의 별들처럼 깨어 기도하며 살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내 주여, 내 기쁨은 당신 뜻을 따름이오니,
내 맘속에 당신의 법이 새겨져 있나이다.”(시편40,9)
시편 말씀대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할 때 참기쁨이요 참행복입니다. 우리 마음 깊이에 하느님의 법이, 가르침이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교황님의 11월19일 주일 베드로 광장에서 삼종기도후 강론은 성모님의 전구로 끝맺습니다. 이날뿐 아니라 삼종기도후 강론은 언제나 성모님의 전구로 끝맺습니다. 성모님의 전구가 으뜸이기 때문입니다.
“복되신 마리아께 무서움을 극복하도록-결코 하느님을 무서워하지 않고! 경외하도록-, 그리고 주님을 신뢰하도록 도움을 청합시다.”
강론후 주일미사처럼 세계 곳곳에서 시급한 도움이 필요한 곳들을 언급하며 청원기도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끝에는 다음의 말마디가 꼭 뒤따릅니다. 아마도 매번 반복되는 끝맺음의 내용일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복된 주일이 되기를 빕니다. 꼭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잊지 않도록, 점심 잘 드시고 목적지에 잘 도착하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성모님의 전구와 이웃의 기도를 청하는 교황님입니다. 아마도 교황님처럼 기도의 도움을 많이 받는 분도 없을 것입니다. 저 또한 기상후 집무실에 들어서면 만세육창시 꼭 “성모님 만세!” 기도합니다. 육신의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어도 내 영신의 어머니신 성모님은 언제나 함께 계셔서 전구하시며 돌보신다는 믿음에 산책시 자주 “어머니 은혜”대신 “성모님 은혜”로 바꿔 기도 노래로 바치기도 합니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성모님 은혜, 푸른하늘 저보다도 높은 것 같애.”
살아 있는, 죽는 그날까지 여전히 영적으로 우리를 여전히 낳으시고 기르시는 성모님 은혜임을 믿습니다. 이어지는 2절입니다.
“넓고 넓은 바다라고 말들하지만, 나는 나는 넓은 게 또 하나있지.
사람되라 이르시는 성모님 은혜, 푸른하늘 저보다도 높은 것 같애.”
평생 공부가 사람되는 공부, 하느님의 사람되는 공부요 부단히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며 사람되라 이르시는 성모님을 묵상하면 힘이 납니다. 성모님의 마음은 예수님 마음이며 하느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길, 제13처에서의 주님의 시신을 품에 안으신 성모님 모습은 미칼렌젤로의 “피에타의 성모님”을 연상케 하며 늘 감동하게 됩니다. 여기 나오는 기도문도 참 좋습니다.
“구세주 예수님,
주님의 시신을 십자가에 내려 품에 안으신
성모님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도 성모님 품 안에서
효성스러운 자녀로 살다가
마침내 그 품 안에서 죽게 하소서.”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입니다. 복음서에 언급되지 않고 2세기의 위경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내용인즉 성모 마리아의 부모, 요아킴과 안나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세 살된 아기 마리아를 하느님께 봉헌한 사실과 함께, 마리아께서 당신 자신을 스스로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고, 모든 그리스도인들 역시 봉헌의 삶으로 초대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날입니다. 성모님의 봉헌과 더불어 우리의 봉헌된 삶을 깊이 묵상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런 성모님의 효성스러운 자녀로 살 때 참행복입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성모 마리아의 봉헌을 기념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543년 11월21일 축성하였다 전해 집니다. 동방에서 시작된 이 축일은 서방에도 전래되어 마침내 1585년 식스토 5세 교황이 축일을 전 교회의 축일로 재 제정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축일의 역사가 얼마나 깊은지요!
교황 바오로 6세는 ‘사도적 권고’에서 “외경적인 요소는 차치하더라도, 탁월하고 모범적인 가치를 보이고 있는 이 축일은 특히 동방에서 기원하여 유서 깊은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마리아 공경, 8항) 가르칩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예수님 잉태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아드님의 시신을 직접 당신 품으로 안으실 때까지, 온갖 고난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절대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역시 미사를 드릴 때 마다 끊임없이 자신을 새로이 봉헌할 때마다 마리아처럼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위해 온갖 노력을 다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해야 하겠습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모님은 이런 분입니다. 이런 사실을 전제로 하여 오늘 복음에 접근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가르치고 계실 때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주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다는 전갈을 들었을 때 주님의 반응입니다.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 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주님은 즉시 반문하시고 참 답을 주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주님은 당신을 에워싸고 있는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십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예수님을 중심한 하느님의 참가족의 정체를 알려줍니다. 혈연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들이 바로 예수님의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라는, 예수님의 참가족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가 예수님을 중심한 하느님의 한가족임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깨닫는 진리입니다.
바로 이런 예수님의 참가족 중심에 예수님과 더불어 성모님이 계십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데 성모님을 능가할분은 없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중에 으뜸가는 제자가 바로 어머니이자 제자인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모님입니다. 모전자전 예수님 역시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모님께로부터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법을 평생 보고 배웠음이 분명합니다.
어머니는 가정 공동체의 중심입니다. 성모님처럼 신심 깊은 어머니들은 또 하나의 성모님들이요 이 어머니들을 통해 그대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함을 배우는 자녀들입니다. 예수님 곁에서 늘 함께 계시며 전구하고 계시는 성모님은 바로 우리 믿음의 영원한 모범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함으로 예수님의 참가족이 된 분들인 성모님을 비롯한 우리 하나하나가, 제1독서 즈카르야 예언자가 말하는 딸 시온입니다.
“딸 시온아,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모든 인간은 주님 앞에서 조용히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의 거룩한 처소에서 일어나셨다.”
딸 시온이 상징하는바 성모님이요 하느님의 뜻을 기쁘게 자발적으로 실행하는 모든 이들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처소에서 일어나시어 우리에게 온갖 필요한 은총을 주시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을 모시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함으로 예수님의 참가족, 한가족이 되어 성모님과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생활하게 하십니다.
“행복하여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루카11,28). 아멘.